[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제주 펜션에서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의 신상정보가 공개되면서 신상공개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신상공개가 대중적 호기심만을 채울 뿐 재범방지 등의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과 함께 언론이 흉악범죄에 대한 대중들의 공포와 호기심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주지방경찰청은 지난 5일 신상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어 고 씨의 실명과 얼굴, 나이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경찰은 2010년부터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을 근거로 중대 사건의 피의자 신상을 선별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6일 고 씨의 얼굴이 공개되었으나 고개를 숙이고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면서 신상공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비판 여론이 터져 나왔다. 결국 7일 고 씨가 경찰서 유치장에서 진술녹화실로 이동하는 과정이 노출되면서 언론을 통해 고 씨의 얼굴이 공개됐다.

제주 펜션에서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 씨의 얼굴은 7일 고 씨가 경찰서 유치장에서 진술녹화실로 이동하는 과정이 노출되면서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사진=연합뉴스)

신상공개 기준은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일 것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상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 등 총 4가지다. 신상공개 심의위원회는 경찰과 외부전문가 등 7명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 같은 흉악범죄 사건 피의자 신상공개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10일 cpbc라디오 '열린세상 오늘'과의 통화에서 "(고 씨의)얼굴을 본 다음 우리 사회가 얻은 소득이나 교훈이 하나라도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대중들이 호기심을 충족한 것 말고, 굳이 얻은 게 있다면 '아, 흉악범도 저렇게 평범한 얼굴이구나' 정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오 사무국장은 "이 사건의 경우만 보면 피의자 신상공개를 통해 다른 범죄를 더 캐낼 수 있다든지, 재범을 막을 수 있다든지 하는 소득이 전혀 없었다"며 "아무런 실효성도 없는데 경찰의 판단만으로 어떤 사람의 신상은 공개하고, 어떤 사람은 공개하지 않으면서 일관성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지적했다.

오 사무국장은 신상공개제도와 강력범죄 발생율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강력범죄 검거율이 세계적으로 월등히 높고 그중에서도 살인사건 범인 검거율이 높다는 점은 신상공개제도와는 무관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강력범죄에 대해 공포와 불안을 느끼고, 피의자 신상에 호기심을 갖는 이유는 살인사건 보도에 치중하는 언론 때문이라는 게 오 사무국장의 분석이다.

오 사무국장은 "2017년 대한민국에서 살인사건으로 희생당한 시민들의 숫자는 5100만 중 287명이다. 하루에 0.8건 정도 일어난다"며 "그런데 같은 해 극단적 선택을 해서 돌아가시는 분들이 1만 2400여 명이다. 자살과 타살을 비교하면 무려 43배 차이인데 언론은 극단적 선택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고, 살인사건에 대해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사건은 한 건인데 보도는 넘쳐나고 있다. 신상공개제도 도입 이후 피의자 신상공개는 한 해 최대 3건을 넘지 않았다.

오 사무국장은 "(경찰이)정확한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언론이 부추긴다. 제주 사건 같은 게 나면 대중의 호기심은 커지고, 경찰은 대중의 관심이나 여론의 질타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그러면서 어느 때에는 올해처럼 3명이나 공개하고, 어떤 때는 한 명도 없고 이렇게 들쑥날쑥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고 씨의 신상공개 이후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을 중심으로 고 씨와 피해자, 그 주변인물들에 대한 신상이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등의 2차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제주지방경찰청은 지난 8일 '고유정 사건'과 관련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인터넷 포털 등에 게시중단과 검색차단 등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제주지방경찰청 페이스북을 통해 "피의자나 피의자 가족의 신상정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범행 수법 등을 게시하거나 유포할 경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으니, SNS 등에 관련 정보를 게시·유포하는 것을 삼가시기 바란다"고 공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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