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OBS 팀·국장이 최근 영안모자 역사기록실을 견학한 것으로 확인됐다.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OBS이사회 의장)은 팀·국장들의 견학이 끝난 후 OBS의 적정인력을 언급하는 등 구조조정을 암시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보도 기능을 갖춘 OBS의 방송독립성을 훼손하는 대주주의 부적절한 행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4일 OBS 팀·국장 간부들은 영안모자 역사기록실을 견학했다. 이날 역사기록실 견학은 팀장 이상 주요간부들이 참여하는 확대간부회의를 마친 직후 이뤄졌다.

영안모자 홈페이지에 따르면 '영안모자 역사기록실'은 2009년 5월 5일 회사 창립 50주년을 맞아 개관한 시설로 영안모자 설립부터 현재까지의 기록을 총 정리한 장소다.

영안 홈페이지는 역사기록실을 '영안의 역사 정신', '후손들에게 바른 역사관을 남기는 중요한 사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어 "영안의 창업자 백성학 회장은 창업 이후 현재까지 최초의 사업자 등록증(감찰증), 회계장부, 납세증명은 물론 해외출장 시의 여권과 비행기 티켓까지 모두 미래를 위해 기록하고 보존해 왔기에, 지난 반세기의 역사가 고스란히 복원되고 현 세대에게 전해질 수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OBS 사옥 (사진=OBS)

또한 백 회장은 이날 견학이 끝난 후 강당에서 팀·국장들에게 OBS의 적정인력을 언급하는 등 구조조정을 암시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OBS 사측에 사실관계를 묻자, OBS 사측 관계자는 10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영안모자가 60주년이 됐다. 역사관을 재단장했다고 하길래 경영국에서 '그러면 우리 국팀장들이 최대주주 회사는 어떤지, 이런 것을 좀 보고 배워야 하지 않겠나'라고 해서 역사관을 견학간 것"이라고 답했다. 백 회장의 지시나 제안이 아닌 경영국 자체 판단으로 견학을 가게 됐다는 설명이다.

백 회장이 그 자리에서 OBS의 구조조정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계획된 건 아니었는데 본인(백 회장)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서 강당에서 얘기한 게 '아름답게 살아라', '인생 이모작을 준비해야 한다'라고 덕담 비슷하게 한 것이지 구조조정을 언급 적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백성학 회장은)경영하는 입장에서 적정 TO가 얼마인지 이런 것들을 확인한다. OBS는 매년 (적정 TO를)업데이트 하는데, 비정규직 포함 180명 정도를 왔다갔다 한다"며 "지금 200명 정도 된다. 그러니까 '적정 TO가 정확하게 얼마가 되는지 다시 한 번 경영국은 고민해 봐라', '이 TO로 수익을 내고 회사가 발전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하지 않느냐'는 차원의 발언으로 그것을 구조조정으로 연결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했다.

OBS 주요 간부들의 영안 역사기록실 견학과 백 회장의 발언이 방송사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소유·경영 분리 원칙을 훼손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 관계자는 "대주주 기업이니까 기업탐방은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백성학 회장은 (역사기록실을)잘 만들어놨다고 자랑했다. 언제 한 번 와서 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면서 "그래서 경영국은 '회사 바로 옆이고 하니 가서 구경하면 되겠네'라고 해서 간 것"이라고 답했다.

▲영안모자 역사기록실 내부 (사진=영안모자 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OBS 사측 해명과 달리 학계·시민사회 관계자는 방송독립성 침해 소지가 있는 대주주의 부적절한 행보라고 비판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방송법상 방송 제작과 편성에 관여하면 안되도록 규정돼 있는 상태에서 회사 주요 간부들이 대주주의 업적을 기리는 역사관에 가 훈시를 듣고, 견학한 자체가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심대하게 해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OBS와 영안모자는 업무 관련성이 없을 뿐더러 백 회장의 적정인력 발언은 방송제작 당사자인 직원들 위축시키는 행보로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방송유관 기관이나 방송 제작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을 방문했다면 이해하겠다. 그런데 영안모자라고 하는 곳은 언론사 업무와 전혀 관련이 없는 곳"이라며 "단순히 대주주가 이 회사 소유주라는 이유로 방문한 것으로 OBS가 대주주의 눈치를 봤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최 교수는 백 회장 발언에 대해 "대주주 입장에서 회사 인원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직원들이 들으면 '대주주에게 잘 보여야겠다', '내가 정리해고 대상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나"라며 "이런 위험성이 생기면 어떻게 독자적으로 대주주의 의지에 반하는 보도나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겠나. 결국 방송 공정성과 제작 자율성을 심대하게 침해하는 요소가 포함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역시 "민영방송사라고 해도 소유·경영 분리원칙은 너무 당연하고, 특히 보도기능을 갖춘 지상파 방송사라는 점에서 이는 부적절하다"며 "대주주가 방송사를 사적 경영의 대상으로 생각한 것으로, 대주주에게 내부 종사자들이 언론인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라고 평가했다.

김 사무처장은 "적정인력에 대한 언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제대로 된 근거와 절차를 가지고 해야 하는 말이지 그렇게 툭 내뱉는 식은 아니다"라며 "회사의 주요 간부들이 다 갔던 상황에서 심리적 압박을 주는 발언이다.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회장의 발언을 함부로 반대할 수 없다. 방송사 사주가 할 행태라고 보여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 사무처장은 "방송은 신규사업자의 시장진입이 어렵고, 한 번 만들어지면 사업권 자체가 독점에 가깝게 되는 특성이 있다. 영향력이 크고 특혜가 있는 사업인 만큼 공적 책임이 있는 게 방송사업자"라며 "OBS는 재허가 당시 어려울 때 공적역할을 강조해서, 많은 시민들이 힘을 보태서 살아남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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