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2014년 7세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던 13세 하은이(가명)는 엄마가 외출한 사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다 액정을 깨뜨렸다. 엄마에게 혼이 날까봐 두려웠던 하은이는 가출을 했다. 가출 직후 갈 곳이 없던 하은이는 스마트폰 채팅 어플을 통해 자신을 재워 줄 사람을 찾았다. 가출 일주일 만에 성인 남성 6명이 하은이에게 접촉했다. 이들은 숙박비와 음식 등을 제공한 뒤 하은이를 성폭행했다.

그러나 하은이는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라 '대상청소년'으로 분류됐다. 이른바 '아청법'에 의거, 하은이가 자발적으로 채팅 어플을 설치했다는 점과 남성들로부터 치킨·떡볶이 등을 얻어먹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떡볶이 화대'로 국민적 공분을 산 '하은이 사건'의 전말이다.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상의 '대상아동·청소년'이라는 표현이 성매매 피해를 입은 아동·청소년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보호처분'과 같은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되어 더 큰 범죄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지 7년째다. 국회에는 아청법상 '대상아동·청소년'이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개정안이 발의돼 있으나 법무부 반대의견 등으로 1년째 국회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아청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국회에 모였다. 스마트폰을 통한 성매매 알선 등 IT 기술의 발전으로 성 착취 환경에 놓인 거의 모든 아동·청소년들이 대상아동·청소년으로 규정될 수 있는 상황에서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하루빨리 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성매매 유입 아동·청소년 보호를 위한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 간담회'가 열렸다. 아청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을 비롯, 국회 법사위 소속 백혜련·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전국 370개 시민단체가 모인 '아청법 개정 공동대책위원회'가 공동주최했다. (사진=미디어스)

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성매매 유입 아동·청소년 보호를 위한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 간담회'가 열렸다. 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을 비롯, 국회 법사위 소속 백혜련·표창원 민주당 의원과 전국 370개 시민단체가 모인 '아청법 개정 공동대책위원회'가 공동주최했다.

이 자리에서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아청법의 본래 입법취지는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 성매매를 조장하는 온갖 형태의 중간매개행위 및 청소년에 대한 성폭력행위를 하는 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하고, 아동·청소년을 보호·구제하는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청소년의 인권을 보장해 상업적 청소년 성 착취 근절대책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개정안에 대한 법무부의 의견이 아청법의 본래 취지에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현재 법무부는 해당 아청법 개정안에 대해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나 대상아동·청소년의 성매매 재유입을 방지함에 있어 보호처분을 폐지하는 방안이 상당한지, 대안이나 보완 방안은 없는지 등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법무부의 입장은 여전히 아동·청소년을 성매매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로 보는 것이라는 게 조 대표의 지적이다.

또 조 대표는 "현재 스마트폰을 통한 성매매 알선 등 IT 산업의 발전과 결합된 상업화된 성 착취 환경에서는 거의 모든 아동·청소년을 자발적으로 성매매 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아동청소년 본인도 처벌(보호처분)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성 매수자 및 알선자를 신고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너도 처벌 받는다'는 협박을 통해 성 매수나 알선자의 지배가 더욱 심각해짐은 그간 수년간 드러났던 수많은 피해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가 스마트폰 어플 등 성매매 착취 환경을 조성하는 인터넷 기반 플랫폼의 역할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4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의뢰해 분석·발표한 '2017년도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 발생추세와 동향분석 결과'에 따르면, 아동·청소년대상 성매매 알선의 경우 메신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마트폰 어플 등을 이용한 비율이 2016년 77.3%, 2017년 89.1%로 나타나 범행경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이에 대해 책임 연구자인 김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스마트폰 채팅 어플 등을 이용한 범죄의 비중이 계속 높게 나타나고 있어, 사이버 성매매 환경에 대한 적극적인 단속과 사이버 경로 차단방안이 요구된다"고 제언한 바 있다.

소년원 송치 조치를 포함하는 '보호처분'의 실효성도 의문을 낳는다. 남인순 의원실이 법무부에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아청법상 '대상아동·청소년'으로 보호처분이 부과된 사건의 수, 보호처분을 받은 경우 동종범죄 재범률 등을 문의한 결과 2017년 6건을 제외하고는 보호처분 건수가 없었으며, 동종범죄로 인한 재범 사실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6건의 사건은 특정 지역에서 집단·반복적으로 성매매를 시도한 전력으로 인해 송치된 사건이며, 그 중 1건은 공동폭행 사건과 병합된 사례였다.

법무부가 아청법상 대상아동·청소년의 전력 관리를 해오지 않았거나, 혹은 전력을 살펴보더라도 대상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처분을 극히 제한적으로 부과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즉, 관련법의 실제 적용률은 매우 낮지만 법조문에 명시되어 있어 성매매 범죄자들의 협박에 쓰이거나, 피해 아동·청소년들이 도움을 청하지 못하게 하는 부정적 효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가능한 대목이다.

지난 1월 28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열린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 공동대책위원회 법무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에 대해 양종윤 여가부 아동청소년성보호과 과장은 "대상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처분은 실효성이 낮게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보호처분은 소년원 송치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보호처분을 형사처벌로 인식하는 경우는 50%에 다다른다. 성 매수자들은 이를 지속적 성매매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고, 대상아동 청소년은 보호의 기회를 놓쳐 반복적인 성매매 상황에 남겨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 발표한 '아동·청소년 성매매 환경 및 인권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매매에 이용된 아동·청소년들의 46.6%가 보호처분이 '처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경찰대 교수 출신인 표창원 의원은 "이 문제의 가장 핵심은 성매매 피해 청소년들이 자신도 범죄자로 잡히고 불이익 받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성인들에 의해 협박을 당하고, 이후 더 강한 범죄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라며 "(아청법 개정에 대해)법무부나 수사당국 현장에서는 '꽃뱀'으로 지칭되는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될까 우려를 가지고 있지만, 이 우려는 현재의 형법과 특별법으로 얼마든지 처벌되고 있으며 대단히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한 법무부의 전향적 입장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경화 법무부 형사법제과 검사는 "법무부는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검토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면서 "기존 법무부 입장에서 조금의 상황변화가 있었다. (법무부는)대안이나 보완방안이 없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최근 대안에 대한 아웃라인을 정해서 여가부에 검토를 제안 드렸다"고 했다. 다만 이 검사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부처 간 협의 중에 있는 사안을 공개하기는 어렵다며 관련 내용에 대한 말을 아꼈다.

그러나 아청법상 대상아동·청소년을 피해아동·청소년으로 봐야 하며 보호처분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는 여가부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양 과장은 "여가부의 공식 입장은 법사위에 계류된 내용과 동일하다"며 "아직 법무부와 여가부, 양 부처 간 합의가 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오늘 이후 법무부에서 다시 요청이 오면 협의를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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