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제갈창균 한국외식업중앙회장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비례대표 자리를 요구해 논란이다. 이 대표는 제갈 회장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조선일보는 "비례대표의 실상"이라며 지적하고 나섰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비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조선일보가 비례대표 불신의 본질인 '공천'의 문제를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30일자 조선일보 34면 만물상 코너에는 <비례대표 거래>라는 글이 실렸다. 조선일보는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들을 전했다. 2007년 대선 당시 한 대선 후보가 모 직능협회와 간담회를 하는 자리에서 '내년에 몇 번 준대?' 등의 메모가 오갔다는 점을 전하며 "당시 현장을 목격한 기자는 '협회 사람들이 정책 발표는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오로지 비례대표 잿밥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30일자 조선일보 만물상.

조선일보는 "2008년 총선 때 어느 당에서 당 대변인조차 얼굴 한 번 본 적 없다는 인물이 비례대표 1번을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십수억 공천 헌금의 대가였다는 게 드러나 의원직을 사퇴했다. 2012년에는 진보 인터넷 매체 인사가 실세들과 맺은 친분을 앞세워 비례대표 공천 희망자들에게서 40억원을 챙긴 일도 있다. 재외 국민 투표가 허용된 후에는 선거 때마다 비례대표를 미끼로 한 주요 정당들의 러브콜에 교민 사회가 사분오열된다고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비례대표와 관련된 부정적 사례를 나열한 후 제갈창균 회장의 비례대표 요구 발언을 이어 붙였다. 조선일보는 "기자들까지 있는 자리에서 너무나 노골적으로 '한자리' 달라고 하니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민주당 대표도 말문이 막혀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고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이 같은 부적절한 요구가 벌어진 책임을 비례대표 의석수 확대를 추진하는 여야4당에게 전가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은 비례대표 의석수를 확대하고 지역구 의석수를 축소해 50% 연동률을 적용하는 준연동제 선거제 개편안에 합의한 바 있다. 이 안건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상태다. 조선일보는 "이 해프닝은 비례대표의 실상이 어떤지를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며 "비례대표 의석 수가 늘어갈 가능성이 있으니 먼저 한자리 확보하려는 물밑 작업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비판 대상이 온당하지 않아 보인다. 비례대표는 국회 의정활동의 전문성을 높이고 다양한 민의를 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지역구 선거에서 사장되는 민의를 반영해 비례성을 높이는 측면도 있다.

조선일보의 지적대로 비례대표제가 선거 지원의 대가, 정치자금 조달, 논공행상의 통로 역할 등으로 악용된 것이 사실이다. 조선일보는 이를 바탕으로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이 낸 선거제 개편안이 비례대표를 47석에서 75석으로 늘리기 때문에 자칫 비례대표가 일부 단체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비례대표 폐지가 비례대표 문제 해결의 본질일 수 없다. 조선일보의 지적을 되짚어보면 이 문제는 결국 비례대표의 문제가 아닌 국회의원 '공천'의 문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반대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온다. 비례대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높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불신의 핵심은 정당의 불공정한 공천이다. 준연동제가 국회에서 논의되는 만큼 비례대표 공천의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한 때다. 1등 신문 조선일보가 정당 민주화를 통한 공천 투명성 확립에 앞장서 보는 것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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