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역시 ‘양비’가 움직이니 풍파가 인다. 양정철 민주정책연구원장이 서훈 국정원장과 만나 식사를 한 사실이 정치권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측근 정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다시 한 번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됐다.

양정철 민주정책연구원장과 서훈 국정원장의 만남은 당시 회동에 동석한 김현경 MBC 기자의 말처럼 개인적 친분에 의한 사적인 자리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양정철 원장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장기간 한국을 떠나 있었던 만큼 그간 정치사업을 함께해왔던 사람들을 두루 만나는 일이 여러모로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정치권 현안이 돼버렸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바른미래당은 정보위 소집을 요구하고 있다. 국정원장과 대통령의 최측근이 사실상 ‘독대’했다는 의혹이 있으므로 국회 정보위를 소집해 상황을 물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권에 대한 어떤 공격의 맥락에 있지만 사실 여당 입장에서는 나쁘지만은 않은 제안이다. 정보위 소집을 구실로 자유한국당의 원내 복귀를 유도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국회 내에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 서훈 국정원장을 국정원법 위반으로 대검찰청에 고발하는 방법을 택했다. 자유한국당은 두 사람의 만남을 “부정선거 공작용 신 북풍”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서훈 국정원장이 정권 실세를 만나 어떤 공작을 모의한 것이므로 이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은 행위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북풍’이란 북한에 일부러 위기를 조성하게 해 정치적 이득을 얻는 일을 뜻한다. 만일 이 정권이 북한에 위협적 행위를 할 것을 요구한다면 이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는 것은 오히려 보수세력일 것이다. 위협적 행위가 아니라 평화 분위기를 연출해달라는 요구를 할 경우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대가를 줘서 평화를 얻어낼 수 있는 국면이라면 북미대화와 남북관계가 지금과 같은 상태로 교착 국면에 빠지지도 않았을 거다.

더불어민주당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28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서울 여의도에 있는 당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이 이런 억지를 펴는 것은 원내 복귀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명분은 패스트트랙 지정에 대한 사과 등이지만 실제로는 보수세력 내외의 복잡한 사정이 작용할 것으로 추정된다. 여야 간의 강한 대립구도가 형성된 시점이기 때문에 쉽게 복귀의 명분을 찾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게 강효상 의원 사례이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화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외교관 모씨가 귀국하면서 논란은 계속 커져가고 있다. 이 외교관은 자신이 대화 내용을 유출한 것은 맞지만 국회의원에게 상황의 적절한 맥락을 제공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고, 자신이 전달한 내용을 왜곡해 강효상 의원이 ‘굴욕외교’의 논리를 만들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 해명에 대해서도 진실공방이 오가고 있지만 자유한국당 입장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강효상 의원의 처벌 가능성이다. 외교부는 이 외교관과 강효상 의원을 형사고발 하기로 한 상태다.

그래서 어떤 대립의 지도로만 보면 양정철 원장 문제와 강효상 의원 의혹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양쪽에서 각각 끌어 당기는 요인처럼 보인다. 그렇더라도 정치는 서로 협상이 되지 않는 것마저도 협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므로 강효상 의원에 대한 압박과 양정철 원장 등의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든 다뤄지면 교착 국면을 타개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언급할만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3개 차관급 인사를 단행했다는 사실이다. 청와대는 그간 인사검증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돼왔던 조현옥 인사수석을 김외숙 현 법제처장으로 교체했다. 김외숙 신임 수석은 문재인 대통령과 거의 30년에 가까운 인연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심이 돼서 만든 법무법인 부산 출신이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한 이유를 문재인 당시 변호사 때문이었다고 설명을 할 정도이다.

청와대 인사수석에 대통령의 지인이나 마찬가지인 인사를 앉혔다는 점은 비판을 받을 소지가 없지 않다. 김외숙 신임 수석의 뒤를 이어 새로 법제처장이 된 김형연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경우도 뒷말이 나오는 것은 마찬가지다. 김현연 전 비서관은 판사 출신으로 애초에 청와대로 갈 때부터 논란에 휩싸였던 인물이다. 청와대에서 검증 업무를 담당했던 인사가 법령을 유권해석하는 법제처장에 앉은 것 역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러다 보니 보수야당들은 또 코드 인사니 회전문 인사니 하는 어휘를 동원해 청와대를 비판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이 인사를 할 때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인물을 선호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수세력이 이를 ‘끼리끼리 문화’로 규정하고 공격해왔다는 점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양정철 원장 문제부터 차관급 인사에 이르기까지의 사건들은 바로 이런 프레임을 강화할 것이다.

지금으로서 가장 좋은 방법은 당이 나서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양정철 원장의 위상을 명확히 정리하고 청와대에 공개적으로 대안적인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 등을 모색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언론을 통해 보면 더불어민주당은 민주정책연구원이 아닌 총선기획단이 선거 지휘를 할 거라는 논리로 양정철 원장의 개입 의혹을 차단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민주정책연구원은 보고서를 내거나 연구과제를 선정하는 등 어떤 형태로든 선거 전략에 관여할 수 있다.

실제 당 내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이 걱정하는 것은 양정철 원장이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권력 강화를 위해 공천에 개입할 가능성이다. 사실 이번에 양정철 원장과 서훈 국정원장의 동선이 언론에 노출된 것도 이런 맥락이 있기 때문 아니냐는 추정이 제기된 바 있다.

만일 그런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우리는 ‘진박감별사’ 문제와 ‘옥새 들고 나르샤’ 사건의 민주정부 버전을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 뒤집어 말하면 이전 정권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당 내에서 나오는 우려는 해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당은 주요 요직에 권력의 측근이 있는 것은 사실이더라도 그러한 이유 때문에 어떤 부조리가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해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국회 정상화까지 이룰 수 있다면 일석이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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