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양정철 민주연구원 원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지난 21일 저녁 서울 강남의 모 한정식집에서 만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기획을 담당할 양 원장과 정부의 정보를 총괄하는 서 원장이 만났다는 것 자체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만났다는 것 외에 다른 사실관계가 전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극적 단어를 사용한 무리한 추측성 보도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한 연예인 사생활 캐기식의 취재 행태가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27일자 더팩트 보도. (사진=더팩트 홈페이지 캡처)

27일 오전 <더팩트>는 <[단독] '文의 남자' 양정철, 서훈 국정원장과 한정식집 '밀담'> 기사를 게재했다. 지난 21일 서울의 한 한정식집에서 양 원장과 서 원장이 '비밀 회동'을 했다는 내용이다. 더팩트는 "야인 생활을 하던 양 원장이 2년 만에 여의도 정치권으로 복귀한 지 꼭 일주일만으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며 "특히 양 원장은 16일 문희상 국회의장을 독대한 데 이어 5일 만에 다시 국정원장을 독대할 정도로 광폭 행보를 이어가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더팩트는 비슷한 시각 <[단독영상] '4시간 밀담'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서훈 국정원장> 기사를 게재했다. 더팩트는 "양 원장과 서 국정원장은 이날 서울 강남구 모처의 한정식 식당에서 오후 6시 20분께부터 10시 45분께까지 4시간 이상 식사했다"며 "이후 식당에서 나온 양 원장과 서 국정원장이 여전히 할 말이 남은 듯 서서 약 2분가량 추가로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더팩트는 27일 오후에는 <[단독] '국정원장 밀담' 양정철 택시비, 식당 주인이 대납…"백수인 줄 알고"> 기사도 게재했다. 더팩트는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자 '실세'로 알려진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장시간 비공개 미팅을 가진 뒤 귀가하는 과정에서 택시비는 식당 주인이 대납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양정철 원장과 서훈 원장의 만남 사실이 알려지자, 복수의 매체는 더팩트 보도를 기반으로 의혹제기에 나섰다. 야당을 중심으로 총선 개입 의혹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왔고, 이를 근거로 한 기사들이 쏟아져나왔다.

이에 대해 양정철 원장은 "서훈 원장께서 모처럼 문자로 귀국인사를 드렸고, 서 원장께서 원래 잡혀있었고 저도 잘 아는 일행과 모임에 같이 하자고 해 잡힌 약속"이라며 "사적인 지인 모임이어서 특별히 민감한 얘기가 오갈 자리도 아니었고 그런 대화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양정철 원장은 "국정원장과 몰래 만날 이유도 없지만 남들 눈을 피해 비밀회동을 하려고 했으면 강남의 식당에서 모이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국정원장이 비밀 얘기 할 장소가 없어 다 드러난 식당에서 누군가를 만났다는 가정 자체가, 정치를 전혀 모르는 매체의 허황된 프레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양정철 원장은 택시비 대납 보도에 대해서는 "식당 사장은 제가 일반 택시를 좀 불러달라고 했는데 모범 택시를 부른 게 미안하기도 하고 귀국해 오랜만에 식당을 찾은 제가 반갑고 (여전히 놀고 있는 줄 알고) 짠하다며 5만 원을 택시기사분에게 내줬다"며 "모처럼 귀국해 옛 지인들을 만나고 인사를 하고 밥을 먹고 음식값을 낸 것에서 택시비 5만원 깎아준 일이 다섯시간 미행과 촬영과 파파라치에 노출된 것이 전부다. 아무 생각 없이 폭로를 전문으로 하는 매체야 그렇다쳐도 숱한 매체들이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의혹 재생산에 부화뇌동 한다면 서글픈 일"이라고 말했다.

양정철 원장은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장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서훈 국정원장을 독대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면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당 핵심관계자가 국정원장을 만난 것은 부적절하단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참여연대는 "총선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정보기구의 수장인 국정원장이 여당의 총선을 기획하는 싱크탱크 원장과 만나는 것은 사적인 만남이라해도 적절하지 않다"며 "국정원이 다시 선거와 정치에 불법적으로 개입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양정철 원장과 서훈 원장이 나눈 대화의 내용도 없이, 만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밀담'이란 식의 자극적 단어를 사용하며 추측성 보도를 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특히 더팩트의 보도는 국회의사당에서부터 양 원장의 뒤를 밟아 만들어진 보도로, 연예인 사생활 캐기식 보도의 전형이다. 양 원장이 "여의도 당사에서부터 지하철, 식당까지 저를 미행하고 식당 근처에 차를 세워둔 채 블랙박스로 영상을 촬영한 것으로 안다"며 "미행과 촬영에 급급해 헤어지는 장면 하나를 포착해 이를 바탕으로 근거없는 폭로를 재생하고 있다"고 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기자가 어떤 범죄행위나 부정적 행위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밀착취재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그러나 만났다는 사실만을 단초로 의심하는 것이 맞는 얘기인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서중 교수는 "물론 민주사회에서 양정철 원장과 서훈 원장이 민감한 위치에 있으니 만남을 자제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부정적 행위에 연루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는 사람끼리 만나는 것 자체가 부정적으로 비춰져서는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정원장은 국정원 일반과 다르게 공개돼 있는 인물이고, 만난 장소도 공개된 장소"라며 "(더팩트가) 비밀회동이라고 한 것은 자신들이 취재를 몰래 하니 비밀회동으로 본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부 교수는 "실제로 만나서 정보를 교환하거나 그런 게 있다면 모르겠지만, 만남 자체를 가지고 뭔가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며 "대통령의 복심이라고 하니 의도적으로 흠집을 내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인권침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영향력 있는 공인이 문제적 행동을 할 때 그걸 감시하는 건 언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면서도 "언론이 스토킹하듯 접근하는 것은 파파라치에 가까운 행태다. 이게 과연 국민의 알 권리 측면에 부합하는 보도 태도인지 모르겠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더팩트가 '밀담', '비밀회동', '백수' 등의 자극적 단어를 사용한 것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양정철 원장과 서훈 원장이) 만난 것이 보기에 따라 논란이 될 수는 있다"면서 "그러나 자극적인 단어와 제목을 사용해 클릭을 유도하려고 하는 행위는 저널리즘의 가치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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