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협약 비준 절차에 착수하고 관련 법 개정을 동시에 추진하기로 했다. EU가 한국의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 미흡을 이유로 FTA 분쟁해결절차를 밟았다는 이유에서다. 박화진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ILO 협약 취지도 반영하고 우리나라 현실도 반영하는 균형 잡힌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22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ILO 핵심협약 4개 중 3개의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재갑 장관은 “FTA에서 노동권 보장 문제가 강조되는 추세”라면서 “특히 EU는 한국의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FTA 사상 최초로 분쟁해결절차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1991년 ILO에 가입했지만, 핵심협약은 비준하지 않았다.

▲기자회견하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비준을 추진하는 조항은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87호와 98호, 강제 노동 금지 조항인 29호다. 정부가 87호와 98호 협약을 비준하면 5급 이상 공무원, 해고자·실직자의 노조 가입이 가능해진다. 국회가 교원 노조법을 개정해서 해직자 가입을 허용하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법의 테두리에 들어오게 된다. 또 택배기사,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 설립이 가능해진다. 29조 협약은 군사적 성격의 작업을 제외한 모든 강제 근로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화진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2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노사 간 이견이 있어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태이지만, 다시 한번 논의를 시도해 보고 있다”고 밝혔다. 박화진 실장은 “(한국이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하지 않아) EU 측의 압박이 있었다”면서 “EU는 중국과 분쟁이 있을 때 ILO 핵심협약 미 비준을 이유로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박화진 실장은 협약 비준을 위해 국내법 개정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화진 실장은 “(전교조를 합법화하기 위해선)교원 노조법을 개정해서 해직자 가입을 허용해야 한다”면서 “(법을 개정하고 ILO 협약을 비준하면) 전교조는 다시 설립 신고를 해 합법화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고 말했다.

경영계는 ILO 협약에 대해 ‘해고·퇴직 직원이 노조원이 돼서 파업에 참여하면 경영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박화진 실장은 “현재 노동조합은 금속노조·공공노조처럼 산업별로 조직돼 있다”면서 “개별 기업은 노사 관계 운영하면서 실업자가 포함된 노조와 교섭하거나 협의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언론에서는 군사적 성격의 작업을 제외한 모든 강제 근로를 금지한 29조 협약을 두고 “대체 복무 요원도 군대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박화진 실장은 “비군사적인 일에 복무한다고 해서 모두 강제 노동이 되는 건 아니다”라면서 “개인에게 유리하거나 개인에게 선택할 기회가 있으면 그건 오히려 특혜”라고 말했다.

박화진 실장은 “(입대 예정자에게)현역복무와 복지 기관 복무 선택권을 준다면 개인에게 유리한 제도이고, 협약 위반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서 “손흥민 선수 같은 경우에 이건 국가에 일정한 공적이 있는 체육 선수들에게 주는 혜택이다. 지금 당장 협약을 비준한다고 해도 군대에 입대하는 건 전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박화진 실장은 “비준 동의안을 9월에 제출할 수 있도록 절차에 착수하면서 경사노위에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면서 “ILO 협약 취지도 반영하고 우리나라 현실도 반영하는 균형 잡힌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은 ILO 협약 비준에 반발하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강성 귀족노조의 국내 경제 발목 잡기를 극복하기도 힘든 상황에 노조의 단결권만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른매래당은 “정부의 방침은 결국 민주노총, 전교조 등의 촛불 영수증에 떠밀려 무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ILO 핵심협약 비준에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비준은 국회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 아니다. 협약을 먼저 비준하고, 이후에 국내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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