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재벌이 동시다발 인수합병을 추진 중입니다. 통신이 방송을 장악하려 합니다. 세상에 세 종류의 리모컨만 있다면, 그 리모컨을 통신재벌들이 만든다면, 그 방송과 통신은 얼마나 다양하고 공공적일까요? 절대 아닐 겁니다. 티브로드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조합원들은 ‘나쁜 인수’에 반대하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방송, 통신 가입자인 여러분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함께해주십시오. 이 싸움 이길 때까지 ‘철농성’은 계속됩니다. /글쓴이주

①편 <티브로드, CJ헬로, 딜라이브가 사라진다>를 잇습니다.

나는 가수다. 노래하는 노동자 ‘티브라더’ 멤버다. 나와 짝꿍은 보통 지붕 없는 공연장, 바로 투쟁 현장에서 노래를 부른다. 일하면서 노조 활동도 하고, 노래 만들고 연습하고 공연까지 해야 해서 생방송 사고를 자주 내지만 나는 노래하는 게 너무 즐겁다.

혹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에 참석한 분들은 아시려나. “최저임금 1만원”이 바로 우리 티브라더 노래다. “투쟁승리가”도 최애 노래 중 하나다. 이 판에서는 나름 메가히트곡이다.

그런데 고백할 게 있다. 사실 난 노래를 잘 하지 못한다. 그리고 짝꿍과 함께여야 한다. 내 짝꿍은 내가 속한 지회의 지회장이고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이다. 솔직히 우리는 명색이 ‘가수’이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의 실력을 못 따라간다.

이런데도 우리는 ‘티브라더’라는 팀을 만들었다. 뜻은 ‘티브로드에 있는 형제’ 뭐, 이런 뜻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응원하고, 정부 재벌 자본의 부당한 것에 맞서 싸우는 일선에 서기 위하여…” 만든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집회할 때 조금이나마 덜 지루하기 위해 시작했다.

독자 여러분은 혹시 길바닥에서 딴 짓 못하고 두 시간이나 앉아서 일정을 소화해본 적 있을까. 분위기는 진지하고 엄숙해서 스마트폰 게임도 못하고, 퀴퀴한 자동차 매연이 덮치고, 왜 집회만 했다면 뙤약볕 아니면 악천후인지… 지루하고 따분하고 힘들다. 하지만 멍 때리는 것조차 할 수 없다.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고 구호를 외쳐야 하고 사전에 이야기도 않고 발언을 시키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날마다 두 시간 이상 집회. 나는 이 짓을 거의 넉 달 했다. 감히 단언컨대 사람이 할 짓은 아니다. 앞사람이 자본에 맞서 싸우자고 말하면, 뒷사람은 노동 인권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뒷사람도 강한 어조의 투쟁 발언, 그리고 그 뒷사람과 그 뒷사람… 지루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이 이상하다. 아무튼 그래서 ‘티브라더’를 시작했다.

물론 이따금 공연비를 받는다. 그리고 여느 선배 가수분들처럼 곡에 투자도 하고, 또는 가끔 맛있는 것도 사먹는다. 당연히 모든 공연을 유료로 하는 것은 아닌데 희망연대노동조합 동지지부들, 장기투쟁사업장, 청소년운동단체가 주최한 집회나 행사가 그렇다.

그중 한곳이 세종호텔이다. 이곳은 장기투쟁사업장이고 세종호텔노조는 우리 노조와 ‘철천지동지’ 관계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인가 이런 일이 있었다. 한번은 내가 짝꿍 없이 혼자 세종호텔 집회에서 공연을 했다(복선이다). 그런데 어떤 행인이 반쯤 혼잣말, 반쯤 또렷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닌가. “노래도 잘 못하는 ○○가 왜 길거리에서 저 ○○이야? 시끄러워 죽겠네.” 무대를 위해 어떻게든 삼켜내려 했는데 무대가 끝나니 그게 안 됐다.

그때부터 나의 멘탈은 유리, 아니 쿠크다스, 아니 연두부가 돼 버렸다. 다른 것은 다 차치하고 나는 창피했다. 나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 중 그 행인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으니까. 지금도 그때 그 사람이 떠오르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다행인 것은 숨막히는 일정 때문에 그때를 돌이킬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가열차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마음을 다잡았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는가. 아무리 김범수의 실력, 임재범의 톤, 하현우의 음역대, 박효신의 성량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노래하지 않는다면 아무 가치가 없다. 나와 짝꿍은 우리 이야기, 비정규직 이야기, 최저임금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를 비정규직을 최저임금을 움직이려고 한다. 노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투쟁이고 연대다.

나는 오늘도 노래할 거다. 오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SK그룹과 태광그룹이 짝짜꿍하고 주식을 거래하고 회사를 합병하는데 나와 동료들의 일자리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안 하기 때문이다. 케이블방송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전부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는데 정부는 나몰라라하기 때문이다. 지루하고 무서운 투쟁이지만 노래를 불러서 비조합원 동료들을 조직해낼 거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투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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