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아직도 5·18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망언들이, 거리낌 없이 큰 목소리로 외쳐지고 있는 현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에서 '5·18 망언'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며 "광주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바로 자유이고 민주주의였다"고 말했다. 내년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변 의견을 무릅쓰고 문 대통령이 올해 기념식에 참석한 이유는 다름 아닌 '5·18 망언' 때문이었다.

'5·18 망언'은 이른바 '가짜뉴스'에 기반을 둔다. 오늘날 '가짜뉴스'라는 단어의 의미는 여러 혼선을 빚는다. 근래에 들어서야 '허위조작정보'라는 단어로 재정립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허위조작정보와 언론의 오보 따위가 혼합된 '가짜뉴스'라는 말이 별다른 구분 없이 두루 쓰인다.

하지만 '80년 5월 광주'를 살았던 언론인들은 '5·18 망언'은 그야말로 기성언론의 '가짜뉴스'에서 비롯됐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5·18 망언'과 5·18 관련 허위조작정보들에 대해 단호하고 명확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일부 언론들이 '5·18 망언'에 힘을 싣고 있다고 지적한다.

17일 오후 전남대학교 용봉관에서는 5·18기념재단, 자유언론실천재단 등의 주최로 '5·18 관련 보도와 가짜 뉴스 문제 점검 및 대책' 세미나가 개최됐다. (사진=미디어스)

지난 17일 오후 전남대학교 용봉관에서는 5·18기념재단, 자유언론실천재단 등의 주최로 '5·18 관련 보도와 가짜뉴스 문제 점검 및 대책' 세미나가 개최됐다.

이날 발제를 맡은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는 "5·18 가짜뉴스의 진원지는 조선일보"라고 비판했다.

'5·18 북한군 개입설'을 세상으로 끄집어 낸 건 TV조선이다. TV조선은 2013년 <장성민의 시사탱크>에서 탈북자 임천용 씨의 5·18 북한군 개입 주장을 여과없이 내보냈다. 5·18을 전후로 북한 특수부대 1개 대대, 약 600명이 광주에 내려왔다는 허위 주장이 TV조선을 통해 전국 전파를 탔다. 진행자 장성민 씨는 프로그램 말미에 "역사는 반드시 이 부분과 관련된 진실을 밝혀야 하고, 그 진실은 객관적이고 입증할 수 있는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며 "북한의 특수게릴라들이 어디까지 광주민주화운동에 관련되어 있는지 그 실체적 진실은 반드시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TV조선은 이후 해당 방송으로 인해 방송통신심위위원회로부터 경고와 관계자 징계 처분을 받았다. 이후 TV조선 <뉴스쇼 '판'>은 북한군 개입설 관련 6건의 팩트체크성 보도를 내놓아 사실관계를 바로잡았다.

그러나 2017년 월간조선은 '5·18때 북한군 개입설, 사실일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회고록에 적힌 북한군 개입 주장, 탈북자가 자신이 쓴 소설에서 주장한 북한군 개입설을 소개했다. 월간조선은 "'북한군이 5·18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지만 북한군 개입설은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완전한' 5·18 진실규명에 북한군 개입설도 포함될 수 있을까"라고 썼다.

80년 5월은 어땠을까. 5·18을 '간첩'과 연결시키고 광주시민들을 '과격파', '난동자'로, 광주를 '무정부 상태'로 낙인찍은 것은 조선일보였다. 당시 정부의 언론검열로 인해 대다수의 언론들은 광주 상황을 전하지 못했다. 5월 22일부터 중앙 일간지가 광주 기사를 싣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은 계엄사령부의 입장을 받아 적은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조선일보는 1면에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작성한 담화문을 그대로 전했다.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지난 18일 수백명의 대학생들에 의해 재개된 평화적 시위가 오늘의 엄청난 사태로 확산된 것은 상당수의 타 지역 불순인물 및 고첩(고정간첩)들이 사태를 극한적인 상태로 유도하기 위하여 여러분의 고장에 잠입, 터무니없는 악성 유언비어의 유포와 공공시설 파괴 방화, 장비 및 재산 약탈 행위 등을 통해 계획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선동하고 난도행위를 선도한 데 기인된 것"이라고 했고, 조선일보는 이를 그대로 전했다. 세미나 사회자로 참석한 송정민 전 전남대 교수는 "그 때 조선일보만 유일하게 간첩 사건을 깔았다. 북한군 개입설의 처음"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1980년 5월 22일 1면

조선일보는 23일부터 '임시취재반' 이름으로 광주에서 보도를 시작했는데, 이 때부터 광주 시민들의 저항을 '폭동'으로 전했다. "22일 현재 군과 경찰이 전남도청에서 철수한 뒤 광주시는 일부 무장한 폭도에 의해 장악되어 행정은 완전히 마비됐다", "폭도들은 경찰서와 예비군 무기고에서 총기와 탄약을 탈취, 무장하고 광주시청, 전남도청 등 주요 공공건물을 차례로 점검하는 한편, 광주세무서, 광주 KBS, MBC 건물에 방화했다" 등이다.

1980년 5월 25일 조선일보 7면에는 김대중 기자(당시 사회부장, 현 고문)가 쓴 '무정부 상태 광주 1주'라는 르포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서 김 고문은 "그 고개의 내리막길에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고 그 동쪽 너머에 무정부 상태의 광주가 있다. 쓰러진 전주, 각목, 벽돌 등으로 쳐진 바리케이트 뒤에는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한 발 더 나아가 28일 사설 '악몽을 씻고 일어서자'를 통해 계엄군을 찬양하고 5·18을 왜곡했다.

"광주사태를 진정시킨 군의 어려웠던 사정을 우리는 알고 있다. 30년 전 6.25의 국가적 전란 때를 빼고는 가장 난삽했던 사태에 직면한 비상계엄군으로서의 군이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중략) 국군이 선량한 절대다수 광주시민, 곧 국민의 일부를 보호하기 위해 취한 이번 행동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계엄군은 일반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극소화한 희생만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계엄군은 계속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국민의 군대로서의 사명을 다해줄 것을 거듭거듭 당부해마지 않는다"

1980년 5월 20일 전남매일신문 기자 일동이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며 공동사표를 냈던 무렵 나왔던 조선일보의 기사와 사설이다.

이 같은 전례 때문일까. 지난 2월 8일 자유한국당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이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에 극우논객 지만원 씨를 초청해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고, '5‧18 망언'을 한 데 대해 TV조선은 8일과 9일 보도를 하지 않다가 10일과 11일에 각각 1건, 2건의 보도를 내놓는 등 소극적 보도 양상을 보였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당시 분석에 따르면 같은 기간 타 방송사 보도, 자사의 '한국당 전당대회' 보도 등을 놓고 비교했을 때 '유달리 한국당에 불리한 ‘5‧18 망언’ 관련보도가 적고, 오히려 ‘5‧18 망언’보다 ‘전당대회’를 더 중요시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보도내용에 있어서도 TV조선은 '지만원', '북한군 개입설'을 보도에서 다루지 않았다. TV조선은 '5‧18 망언 3인방'에 대한 비판여론을 전하면서도 한국당 의원들이 마련한 자리에 지만원 씨가 초청돼 북한군 개입설이 유포됐다는 점은 짚지 않았다. 다만 신동욱 앵커가 논평을 통해 북한군 개입설과 지만원 씨를 지적한 것이 전부다.

토론자로 나선 최성주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에 대한 심각한 '혐오표현'들이 국회의원들과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확장성을 지니고 반복되고 있다"며 "정치적 목적을 지닌 막말과 사회적 용인의 수준을 넘어선 '혐오표현'들이 표현의 자유라는 우산 아래 생명력을 지니고 확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공동대표는 "사회적 편견이 자리 잡을 수 없는 사회문화적 배경을 조성하는 역할의 중심에 '언론'이 있다. 그러나 몇몇 보수언론은 사회에서 돌아다니는 혐오표현을 살펴보고 그를 해소하려 애쓰기보다 그대로 '받아쓰기'를 하면서 혐오와 차별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 공동대표는 "이런 보수언론과 SNS 등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5‧18 희생자를 모욕하는 가짜뉴스와 광주에 대한 망언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할 의견이 아니다"라며 "명백한 역사왜곡이고 명예훼손 행위이며 처벌받아야 할 혐오표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최 공동대표는 가짜뉴스와 혐오표현에 대한 대책과 관련해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시민의 역할과 '교육'에 방점을 찍었다. 심의와 사후규제, 법적 대응 등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과 이를 지탱하는 교육에 있다는 것이다.

최 공동대표는 "이제 국민들은 역사적으로 친일 언론이 누구였는지, 독재에 아부했던 언론이 어느 언론사인지 잘 알고 있다. 또한 특정 보수언론은 우리사회 규범이 정한 사회적 규제는 거의 받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모든 시민은 자기 수준만큼의 언론을 갖는다'는 말처럼 시민이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에 따라 언론의 태도도 달라진다. 오늘 우리사회의 문제를 직시할 미디어교육을 시작하는 것에서 변화를 위한 첫걸음도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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