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란 스승의 노래가 무색해진 시대이다. 촌지나 선물을 받으면 안 된다고 스승의 날 아예 학교를 가지 않도록 하면서부터였을까. 한편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직업인으로 교사가 꼽히는 것과 달리, 초등학교에서조차 교사에 대한 학생의 폭언, 심지어 성희롱 등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니 직업적 만족도는 해마다 감소하고 있는 형편이다. 선생님이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되지 않는 시대, 그렇다면 이 시대 '선생님의 자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마련된 EBS 특집 다큐 3부작 <우리들의 선생님>은 '흔들리는 교권'의 시대, 스승의 자리를 생각해 본다.

1부. 괜찮아, 선생님이 있잖아

EBS 스승의 날 기념 특집다큐 <우리들의 선생님> 3부작

충남 천안시 동남구 동면, 주변에 보이는 거라곤 온통 논과 밭, 그곳에 전교생 60명의 대안학교 한마음 고등학교가 있다. 한 학급 20명, 김재복 선생님의 역사 수업 시간, 선생님은 칠판 가득 판서를 하며 열심히 설명하는데 그 앞의 학생들 모습이 가관이다.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 핸드폰 삼매경에 빠진 학생 등 제대로 수업을 듣는 학생이 없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누구에게도 야단을 치지 않는다. 지적하지도 않는다. 한마음 고등학교의 흔한 수업 시간 풍경이다.

한편 농업과 환경을 담당하는 장정호 선생님의 오늘 수업은 도랑 정화 활동이다. 장화를 신고 도랑에서 쓰레기를 건져내는 선생님, 하지만 아이들은 태반이 구경을 할 뿐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낙관적이다. 지난주에 두 명이 선생님과 함께했는데, 이번 주에는 무려 그 두 배인 네 명이 참여했단다. 그리고 아마도 다음 주엔 더 많은 학생들이 함께할 거라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장정호 선생님 전공은 국어, 하지만 이 학교로 온 후 선생님은 자청해서 당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그 어디든 달려간다.

그저 기다려주는 것만이 아니다. 학교에 안 온 아이에게 틈틈이 전화를 걸어 혹시나 무슨 일이 있나 챙기고, 전 학교에서 왕따로 상처받았던 학생에게는 면박을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잘 잤니?' '밥 먹었니?' 하며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다가간다. 그래서일까. 마음을 닫았던 아이들이 조금씩 달라진다. 왕따로 상처받았던 아이가 말을 하고, 웃음을 짓고 세상에 다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기존 정규 고등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해서 온 학생들이 많은 한마음 고등학교. 김재복, 장정호 두 선생님이 온 이후로 아이들이 많이 달라져 간다. 자연친화적 교육과 현장 교육을 중시하는 학교의 모토에 따라 아이들은 스스로 농사도 짓고 동물들을 키우기에, 선생님들도 교사인지 농분지 구분이 안 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상관이 없으시단다.

아이들이 딸기를 심고 싶다면, 달려가 모종을 사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선생님. 선생님은 이렇게 아이들과 약속을 지키는 그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덕분에 못생겼다며 친구들에게 구박받던 아이들은 농부의 꿈을 키우고, 식물과 가축들의 보호자가 되어가며, 부모의 이혼으로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던 아이가 이젠 자신보다 어려운 친구의 든든한 멘토로 거듭난다.

2부. 슈퍼맨 아빠와 9남매

EBS 스승의 날 기념 특집다큐 <우리들의 선생님> 3부작

강원도 고성군 흘리 분교. 우리나라 최초로 스키장이 만들어졌던 마을, 그 첫 번째 스키장은 폐장되고 66년 된 흘리 분교도 전교생 4명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제 무려 전교생이 9명에 선생님만 세 분, 그 이유는 3년 전 흘리 분교로 전근 온 ‘슈퍼맨’ 이기도 선생님 때문이다.

흘리의 아침, 복도가 왁자지껄하다. 교실 앞 복도에서 롤러브레이드를 타며 하루를 시작하는 아이들, 그렇게 한바탕 놀고 난 아이들은 저마다의 교실로 들어간다. 이기도 선생님의 3학년 교실엔 단 두 명의 학생들. 하지만 이기도 선생님은 선생님만 세 분에 주무관이 없는 이 학교 모든 일의 시작이자 끝이다.

단 아홉 명의 산골 학교에서만 가능할 수 있는 그런 학교를 만들기 위해 선생님의 낮과 밤은 뜨겁다. 전교생이 1인 1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기저기 '자전거 품'을 판 선생님, 덕분에 막내의 킥보드까지 아이들은 저마다의 '자가용'을 타고 마을 탐방을 달린다. 철에 맞춰 감자 등을 심고, 교무실에서 부화시킨 병아리들이 뛰어 놀 수 있는 사육장을 아이들과 만들며, 한껏 자연친화적인 수업은 당연하다.

표현력은 풍부하지만 아직 한국어가 어눌한 은지를 위해서는 방과 후 수업은 물론, 조부모님과 함께 사는 은지네 집 가정방문까지 일반 학교에서는 언감생심의 혜택들이 넘쳐난다. 눈이 오면 눈이 와서, 꽃이 피면 꽃이 피는 자연이 그대로 수업의 미션이 되는 학교가 되도록, 달리는 선생님. 덕분에 흘리 분교가 좋아서 찾아든 학생들로 아홉 명의 식구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신입생 소식이 들리지 않아 걱정스런 선생님은 9명의 학생들과 3명의 선생님들이 총출동한 '흘리 분교 뮤직비디오'에 기대를 건다. 아이들이 직접 노래 가사를 바꾸고, 콘티로 작성한, 자연 속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흘리로 오세요'라는 뮤직 비디오를 통해 폐교 걱정 없는 흘리 분교의 건강한 내일에 선생님의 열정이 담긴다.

3부. 뜨겁게 그리고 따뜻하게

EBS 스승의 날 기념 특집다큐 <우리들의 선생님> 3부작

아이들이 수포자와 과포자가 되는 건 언제쯤일까? 아마도 대략 중학교 시기가 아닐까? 급격하게 어려워지기 시작하는 수학과 과학. 하지만 인천 부원중학교 송미정 선생님(51)의 과학 수업 시간에는 이 '관례'가 통하지 않는다. 암석에 대해 배우는 수업 시간, 아이들이 어려운 건 수업내용이 아니라, 선생님이 암석을 게임으로 풀어낸 게임 방법이다. 게임으로 풀어낸 암석, 덕분에 아이들은 '할리갈리'처럼 암석을 익혀간다.

'열심히 하자'가 모토인 송미정 선생님. 가르쳐주는 것을 따라오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 교사직 10년이 될 즈음부터 시작된 과학교사모임을 과로로 토해가면서도 빠지지 않고 개근한다. 선생님의 재밌는 수업은 이렇게 오랜 연구와 토론을 통해, 그리고 선생님의 ‘보물창고’라는 선생님이 만든 각종 수업도구를 통해 이루어졌다. 교과서에 나온 내용이라도 좀 더 재밌고 신기하고 색다른 수업을 위해 쉴 틈이 없다신다.

재밌는 수업을 위해 오늘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떴다 홍반장’이 되는 송미정 선생님이 인천에 있다면 당진에는 '엄마' 같은 백운자 선생님이 계신다. 십여 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아이들의 아침 독서토론 수업. 이른 시간 아침을 먹고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은 매일 아침 아이들의 아침을 준비한다. 오늘의 아침 메뉴는 선생님표 수제 샌드위치, 성장기 아이들에게는 아침식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선생님은 매일 아침 아이들의 아침 만들기를 기꺼이 자청하신다.

어디 아침뿐일까. 하루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은 가정형편 때문에 학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방과후 공부방도 책임지신다. 역시 거기에도 빠지지 않는 선생님 표 저녁밥, 오늘의 메뉴는 카레다. 그리고 밤 9시까지 홀로 공부하는 아이들과 함께하다 집이 먼 아이들을 차로 데려다 주시기까지 하면 선생님의 하루 일과가 마무리된다.

EBS 스승의 날 기념 특집다큐 <우리들의 선생님> 3부작

선생님이 천직이라 생각한 백운자 선생님의 옛 제자 김경래 씨. 초임교사 월급이 12만원이던 시절, 가정형편 때문에 진로를 고민하던 경래 씨에게 선생님은 월급의 반 정도가 되는 돈을 기꺼이 전해주고 일단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격려해주셨다며, 덕분에 지금의 자기가 있을 수 있다 감사해한다. 그러나 정년을 앞둔 선생님은 그렇게 제자들에게 해줄 사랑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 불러주는 제자들이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는 백운자 선생님. 하루 종일 뛰고 또 뛰는 열정 파워 우먼 송미정 선생님. 그리고 슈퍼맨이기도 선생님. 선생님인지 잡부인지 농부인지 사감인지 아빠인지 그 무엇이라도 우리 아이들이 어제보다 조금 나은 오늘, 그리고 조금 더 자신을 찾아가는 내일이라면 상관없다는 김재복, 장정호 선생님. 이 선생님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조건을 달라도, 학생들 스스로 보다 재밌고 보다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자신의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 아닐까. 세 편의 다큐에서 선생님들은 다 분주했다. 이들은 이미 나이든 어른들임에도 자신의 입장보다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고, 작은 약속이라도 지키려 했다. 그리고 정해진 수업과 교과서를 넘어 살아있는 교육을 하기 위해 자신들을 던지셨다. 교권의 위기가 논해지는 2019년, 세 편의 다큐는 교사의 자리는 생각보다 거창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데 있지 않을까라고 반문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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