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군주 영조의 새로운 면모를 그렸던 SBS <해치>는 비록 7%대의 시청률이지만 월화드라마 1위 자리를 수성한 채 마무리를 했다. 그 바통을 이어받은 건 모처럼 개화한 MBC 월화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다. 물 만난 듯한 김동욱의 호연과 <열혈사제>를 잇는 화끈한 '사이다' 서사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뚫어주며 7%의 벽을 넘어섰다. 그렇게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 순풍에 돛단 듯 순항하는 가운데, 그 아성에 도전하는 후발주자 두 편이 있다. 바로 '장르가 박보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tvN의 <어비스>와 SBS <해치>의 후속 드라마 <초면에 사랑합니다>이다.

tvN <어비스-영혼소생구슬>, SBS <초면에 사랑합니다>

박보영이 출연한 <어비스>는 로코인 듯하지만 '빌런'으로서 이성재의 존재감에서 드러나듯 '스릴러' 요소가 생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반면, <초면에 사랑합니다>의 경우 남자 주인공 도민익(김영광 분)이 피습을 당하는 사건으로 시작되며 미스터리하게 열었지만, 막상 내용은 도민익과 그의 비서 정갈희(진기주 분)의 아웅다웅 관계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로코인 듯 스릴러, 스릴러인 듯 로코인 복합장르로서 두 드라마는 비슷한 듯 다르게, 심지어 시청률조차 고만고만하게 (어비스 3.858%, 초면에 사랑합니다 3.6%, 닐슨 코리아 5월6일 기준) 후발주자로서 고전하고 있다.

영혼으로 소생한 현대판 미녀와 야수, <어비스>

20년 지기 친구인 남녀가 있다. 한 명은 절세미녀에 재원으로 잘나가는 검사가 된 고세연, 또 한 명은 반대로 길 가다가도 누구나 한번쯤 돌아볼 덜 생긴 차민. 일편단심 고세연만 바라보던 차민에게 뜻밖에도 운명의 여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결혼 약속까지 했는데 그녀가 사라졌다. 그로 인해 비관하여 자살을 시도하던 차민은 외계인의 운전실수로 말미암아 사망, 20년 지기 절친 고세연 역시 자신의 집에 찾아온 연쇄살인마로 인해 사망. 그렇게 두 절친은 세상을 떴고, 차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외계인이 준 생명소생 구슬 '어비스'로 다행히 환생했다. 단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영혼의 모습인 둘의 모습이 생전과 딴판으로 평범녀와 누가 봐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잘생남으로 바뀌었다는 것.

tvN 월화드라마 <어비스-영혼소생구슬>

그렇게 김사랑과 안세하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삶과 죽음의 기로를 넘기며 박보영과 안효섭이 바통을 이어받았고, 그때부터 우리가 아는 예의 '박보영 표' 드라마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는 <어비스>의 장점이자 단점이 된다. 아직은 너무 풋풋한 안효섭이 이끌었던 초반을 지나 박보영이 등장하는 순간 드라마가 급활기를 띠는 것처럼, 박보영은 그 또록또록한 발성과 똘망똘망한 연기로 대번에 드라마를 휘어잡는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장례 치른다고 엉엉 울던 고세연이, 장면이 바뀌자 허겁지겁 해장국을 먹고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차민의 물건들을 팔아 편의점 순례를 하고, 날짜 지난 상품으로 편의점 알바생을 눙치고, 편의점 앞에서 쏘맥을 말아 수다를 떠는 지점에 이르면, 이 드라마가 <오 나의 귀신님>인지 <힘쎈여자 도봉순>인지 기시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tvN 월화드라마 <어비스-영혼소생구슬>

뜻밖에도 <어비스>가 다시 드라마로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이성재의 본격적인 등장부터이다. 동료 검사도 피해자의 아버지도 모두가 모호하고 의심스러웠던 등장이었지만, 서하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오성철의 존재가, 그의 환생이 분명해지면서부터 드라마는 '스릴러'로서 장르의 묘미를 살려가기 시작한다. 또한 그런 면에서 박보영의 전작 <오 나의 귀신님>과 <힘쎈여자 도봉순> 역시 복합장르 드라마였다는 점이 환기되며, 전작들에서처럼 박보영의 익숙한 연기가 새로운 장르의 서사와 융합하여 신선하게 다가올 가능성을 연다.

즉, 박보영은 그 박보영이지만, 박보영이 녹아든 이야기의 ‘다름’이 시청자들을 설득시키느냐가 <어비스>의 관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오 나의 귀신님>, <힘쎈여자 도봉순>에 이어 이런 박보영의 전략이 또 다시 먹힐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더구나 안효섭은 박보영이 함께했던 그 어떤 남주보다도 '신인', 이성재의 압도적인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박보영의 어깨가 무겁다.

새로운 듯 익숙한, 안면인식 장애 남자의 좌충우돌 해프닝 <초면에 사랑합니다>

T&T 모바일미디어 1본부장 도민익은 남 보기엔 완벽하고, 그래서 완벽한 만큼 까칠한 상사이다. 덕분에 의욕만 앞섰던 비서 정갈희(진기주 분)는 결국 상사의 싸가지 없는 해고통지를 받게 되고 만다. 하지만 회사에서 정갈희가 해고된 그날, 정작 도민익은 괴한에게 습격을 당한다. 겨우 목숨은 구하지만 어릴 적 그가 받았던 뇌수술 과정에 삽입했던 클립이 측두엽에 무리를 줘 안면인식 장애를 일으키고 만다.

SBS 월화드라마 <초면에 사랑합니다>

상대방을 알아보지 못하는 증상이 이토록 흔한 증후군이었던가. MBN <마성의 기쁨>에서 공마성(최진혁 분)은 자고 일어나면 지난날의 기억이 사라져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장애를 보였고, JTBC <뷰티 인사이드>의 서도재는 사고로 안면인식 장애를 안게 되었다. 잘생기고 허우대 멀쩡하고 심지어 직업도 다들 '장'이다. 뇌신경센터 센터장, 항공본부장에, 이제 모바일 미디어 본부장까지. 이 완벽한 조건에 완벽한 '티'가 되는, 그들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증후군에 완벽한 조력자가 있으니, 그녀들이다.

이 '익숙한' 설정을 <초면에 사랑합니다>는 T&T 모바일의 후계구도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어머니와 삼촌 간의 복잡한 집안 관계, 그리고 뜻하지 않은 피습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그 현장에 있었던, 점점 더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도민익이 유일하게 알아보는 단 한 사람 정갈희를 등장시켜, 갑과 을이 사랑하는 사이로 전복되는 과정을 그려낼 것이다. 또한 알아보지 못하는 해프닝을 통해 도민익의 오랜 절친 기대주(구자성 분)와 베로니카 박(김재경 분)과의 사각관계로 풀어갈 예정이다. 피습사건으로 심각하게 시작했던 드라마는 정갈희를 찾아와 상사 면접을 진심으로 받는 도민익으로 풀어내며 '로코'로서의 특색을 강화해 간다.

<너의 결혼식>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영광과 박보영, <퐁당퐁당 러브>에서 함께했던 진기주와 안효섭이 이제 파트너를 바꿔 경쟁자로 만났다. 발군의 박보영과 한층 무르익은 김영광이 이끌고, 신인 진기주와 안효섭이 따르는 이 두 드라마,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의 유제원 피디가 과연 ‘박보영 신드롬’을 불러일으킬지, <이혼변호사는 연애중>의 김아정 작가와 함께 입봉한 이광영 피디가 드라마에서 계속 부진했던 김영광에게 고진감래의 기쁨을 안길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이미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 상승세를 펴고 있는 월화드라마 대전에서 이들 후발 주자들의 입지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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