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시대의 언론 윤리 2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기간 내내 보수와 진보언론을 막론하고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때로는 무모하게, 때로는 당당하게, 때로는 안타까웠던 그의 임기 5년 동안의 대 언론관계가 끝내는 실패로 귀결되는 듯하다. 도대체 지난 5년 동안 대통령과 언론은 어떤 불편한 진실 공방 속에 있었던 것일까?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시절 백악관 공보실장(director of communication)을 맡았던 데이비드 거건은 “성공적인 정부가 되려면 정부가 의제를 설정해야 한다. 언론이 정부를 위해 의제를 설정하도록 용인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 전설적인 전략 홍보가의 활약에 힘입어 레이건 대통령은 레이거노믹스라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도 불구하고 재임기간 내내 언론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강경한 외교정책과 각종 복지제도의 축소 등으로 상당한 국민적 저항이 예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통해 묘사된 레이건은 ‘위대한 전달자(the Great Communicator)’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탁월한 선전·선동가였다.

▲ 참여정부 청와대브리핑 웹사이트
지난 5년 동안 우리나라 언론을 통해 묘사된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은 늘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토론의 달인’에서 ‘안하무인의 독설가’ 사이의 어디쯤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을 통해서는 잘 전달되지 않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경제력은 국민소득 2만불, 경제규모로는 세계 11위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그의 재임기간 동안 남북간, 북미간 관계 개선도 상당한 정도로 진전되었다. 그리고, 대부분 그 결말이 당황스럽거나 참혹한 정도이지만, 한미FTA 체결과 행정수도 이전, 비정규직법 · 사학법 · 국민연금법 개정 등 중요한 국가정책과제들 또한 그의 재임기간 동안 간단없이 추진되었다.

이 두 대통령의 사례를 대비시켜 놓고 보니 마치 이 글이 성공적인 언론정책을 위한 고민으로 비쳐지는 듯 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글의 목표는 저널리즘의 위기를 맞고 있는 언론산업의 현실과 붕괴되고 있는 언론윤리에 대해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사회의 다양한 여론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기업화된 언론의 폐해이다.

미국, 언론기업의 진실과 언론의 위기

레이건 대통령 시기부터 미국언론은 극단적으로 상업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신문과 방송의 겸영 허용(일부 제한)뿐 아니라 방송사 간의 인수·합병, 제작과 배급의 결합을 노린 헐리우드 자본의 방송진출 등 미디어 산업이 극단적으로 수직적 계열화되어 버렸다. 이러한 결과, 미국의 언론 상황은 미국의 언론인들조차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미국의 뉴스는 대부분 오락쇼나 마찬가지에요. 조직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국민들에게 정보를 주는 시간이 아니죠. 뉴스라고 할 수 없어요. 오락을 제공하고 시청자들을 구경꾼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뉴스는 모두 쇼로 변해버렸고, 다들 흥미로운 뉴스꺼리를 포착해서 연속극으로 둔갑시켜 버리죠. 미국 국민 전체가 연속극의 주인공에 대해 잘 알게 만든 후 그 연속극에 열중해서 매 시간 눈을 떼지 않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게 만들죠. 요즘은 안나 니콜 스미스에 대한 연속극이 한창 진행중이에요."
(EBS <다큐 10> “미디어의 황제 루퍼트 머독”편, 제프 코헨 인터뷰 중)

미국 언론학자들은 이런 언론인들의 푸념보다 더 심각하고 실제적인 사례를 통해 미국언론의 위기를 진단한다. 커뮤니케이션 학자 덕 언더우드는 그의 책 <MBA가 편집국(보도국)을 지배할 때>에서, 경영학 석사들이 뉴스 편집국에서 득세할 경우 뉴스 인원 감축과 국내외 지사 폐쇄 등 조치가 취해지며 광고가 붙는 잡지성 보도가 크게 늘어났다는 것을 실례를 통해 보여주었다.

▲ 주요 미디어 기업들의 수직적 통합과 수익 (2003년 현재)

또한 정치학자 토머스 패터슨은 ‘저널리즘과 뉴스 다양성의 상관성’ 연구에서 미국 언론인들은 유럽 언론인들에 비해 보도 제한의 폭을 가장 적게 느꼈으면서도 실제 보도에 있어서는 가장 좁은 폭의 보도를 하고 있었다는 결과를 발표하여 시장 중심적이며 상업적인 언론이 주도하고 있는 미국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정치커뮤니케이션 학자인 랜스 베넷 교수는 이러한 미국 언론의 극단적 상업화가 뉴스 내용의 균질화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결국 정치에 의해 언론이 통제되고 장악될 수 있음을 다음과 같은 사례를 통해 경계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뉴스 통제(News Control)’를 시도하는 3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완전히 통제되는 뉴스 상황’, 이렇게 연출되는 뉴스상황을 ‘유사 사건(pseudo-event)’이라고 한다. 예컨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69년 산타 바버라 해협에 원유 유출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부 해역만을 청소한 뒤 모든 사건이 해결된 것처럼 보도하도록 유도했다. 둘째, ‘부분적으로 통제되는 뉴스 상황’이 있다. 이는 고의적으로 필요한 정보만을 유출(leak)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엄청난 재정적자가 발생하자 이에 대한 보도를 줄이기 위해 홍보 전략가 데이비드 거건은 주말에 고의로 적자예산 장부를 유출해 언론의 집중적인 비판보도를 모면했다. 관례대로 주초에 보도자료를 내면 언론의 집중타를 맞기 때문이다. 셋째, ‘통제되지 않는 뉴스 상황’이 있다. 대니얼 엘즈버그가 속칭 ‘펜터곤 페이퍼스’를 비밀리에 뉴욕 타임스 등에 유출해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과정을 폭로하도록 한 것이 사례다. 이것은 정치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다. 정치인들은 실제 언론인을 직접 협박하기도 한다. 1980년대 뉴욕타임스의 특파원 레이 보너는 엘살바도르 내전 중 반군 측이 국민의 지지를 받은 반면 미국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은 여러 차례 테러를 자행했다고 보도하다 미국으로 소환 당했다. 이것은 미국의 외교정책에 반하는 보도를 하다 저지 당한 사례다.”
(랜스 베넷, 『News: Politics of Illusion』, 1996 중 재구성)

정치인들이 시도하는 뉴스통제와 함께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언론통제에 자연스럽게 순응해가는 언론인들이다. 베넷은 언론인들이 특종기사를 얻기 위해 영향력 있는 인물에게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이 때문에 정책결정자나 정치인들과 ‘협조해야 할 압력’을 가지게 되고 이것이 비판적 보도를 어렵게 하며 또한, 언론인들은 낙종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동일 취재영역에 속하는 다른 기자들과 비슷한 내용의 보도를 하도록 ‘표준화의 압력’에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리언 시걸(Leon Sigal)의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를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최고의 언론이라 할만한 이들 두 신문의 기사들도 4분의 3 가량이 미국 정부의 보도자료, 기자회견 등 공식 정보에 의존하고 있으며, 두 신문에서 미국 사회 중 ‘주류에 속하지 않는 소식통’에게서 취재한 보도는 전체 보도량의 6분의 1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결과는 언론이 권력이나 정부에 대해 일상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면 보도내용에 신뢰를 주는 공식적(권위있는) 근거를 상실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미 국방부를 포함하여 미국 정부는 그들의 정책에 대한 우호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매년 수십 억 달러를 사용하며 이렇게 이미지 개선을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 홍보 활동은 ‘전략적 커뮤니케이션(strategic communication)’이라고 장려된다.

공영방송, 기업화된 언론으로부터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키는 보루

기업화되어버린 미국 언론산업의 폐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언론이 오히려 미국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진단한다. 이는 미국의 언론사들이 극단적으로 상업화의 길을 걷고 있으며 정치권력에 의해 교묘하게 뉴스가 통제되고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 언론계가 그나마 객관성과 공정성과 같은 기본적인 언론 윤리를 고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믿음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노골적으로 언론통제를 시도하고 있으며 미디어를 장악한 자본이 편집권의 독립을 위협하고 있어도 적어도 미국의 언론인들은 객관적 뉴스보도를 가장한 채 정치권력을 비호하지는 않으며 우리나라의 일부 신문사들처럼 사주와 기업의 이해관계를 노골적으로 기사화하는 파렴치한 행태는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은 그들의 수정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대로 언론의 자유는 공익을 위해서만 행사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나름의 신념체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 KBS, MBC 사옥ⓒ미디어스
지난 몇 년 간 우리나라의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회복하기 힘든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다. 그 이유는 언론이 공익 보다는 특정 정치세력과 언론사 사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사례를 대중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거대 보수신문의 신뢰도는 불과 10년 사이에 절반 이하로 추락해 버렸다. 보수신문보다 그 추락의 정도는 덜하지만 진보적인 신문 또한 신뢰도 추락을 비켜가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보수신문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은 공영방송과 대안적인 인터넷 언론에 대한 우려 섞인 기대감으로 드러나고 있다. 보수신문들의 신뢰도가 추락하는 동안 이들 언론의 신뢰도가 급상승한 것은 그 예다. 그러나, 인터넷 언론매체의 경우 지난 두 번의 대통령 선거를 통해 극단적인 영향력의 변화를 겪으며 저널리즘 매체로서 실효성이 다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지탱하고 있는 마지막 보루가 공영방송 체제임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공영방송 체제가 현재와 같은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있게 된 기반은 물론 1987년 6월 시민대항쟁이다. 폭력적이고 비도덕적인 군부독재의 종식시키며 정치 민주화를 일궈낸 국민들이 과거의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안전판으로 공영방송 체제를 선택한 것이다. 공영방송 종사자들 또한 이러한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여 내부적으로 치열한 민주화 투쟁을 전개하며 언론보도의 객관성과 공정성의 새로운 기준을 정립해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시민사회와 공영방송 내부 종사자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 체제의 제도적 기반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지배구조의 개편과 재원구조의 안정화는 공영방송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집권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되거나 그 논의가 축소되기 일쑤였다. 언론학자들과 시민사회는 공영방송 체제의 안정화를 위한 실질적 해법을 내놓기 보다는 집권세력의 공영방송 길들이기에 대한 비판을 주로 하며 공영방송 체제의 기본적인 이념틀마저 위협하곤 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공영방송 체제는 디지털 전환과 방송과 통신의 융합과 같은 급격한 방송환경의 변화 등에 내몰리며 시장논리로 재편될 위기에 처해 버렸다. 실용주의를 앞세운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에서는 끊임없이 공영방송의 민영화 논의를 흘리고 있고, 통신의 방송진출도 모자라 이미 신문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보수신문들의 방송산업 진출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공영방송은 그 소유와 운영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시민사회가 떠맡음으로써 정치권력에 의한 언론통제를 차단하고 자본권력에 의한 저널리즘의 왜곡을 막기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이다. 이는 최근 삼성광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기업화된 언론들이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에 대한 책임을 꼼꼼이 따져보는 탐사보도를 생산하지 못하고, 이명박 인수위가 내놓고 있는 각종 검증되지 않는 국가정책에 대한 합리적인 분석기사 보도를 찾아보기 힘든 현실을 비추어 보면 더욱 그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실용주의를 앞세운 새로운 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언론정책을 펴 나갈지 아직 누구도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적어도 우리는 저널리즘의 복원을 바라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적어도 공영방송 종사자들이 다음의 세가지 문제틀을 가져 줄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새 정부가 현재 우리나라 언론의 모순상을 그대로 유지한 채 공영방송 체제마저 뒤흔들어 미국의 상업주의 언론상황보다 더 교묘한 언론통제 상황을 만들 경우 우리가 저항할 명분이자 토대가 될 것들이다.

첫째, 정치와 자본권력에 대한 견제를 강화할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둘째, 시민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셋째, 공영방송의 공익적 활동에 대한 평가틀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만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대학시절의 고민을 놓치 못한 채 공영방송에 입사했지만, 공영방송에서 조차 이 고민을 다 담지 못하고 이제 두 딸아이의 미래를 위한 나름의 헌신과 실천을 고민하는 생태주의자 ‘고니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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