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주말을 지내고 이제 다시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이다. 잠시 소강상태가 됐지만 ’동물국회’를 향한 길이 다시 열리는 것일까?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뭔가에 합의했다는 소식은 없고 오히려 서로 고발을 계속하겠다는 분위기니 그럴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여전히 ‘키’는 바른미래당이 쥐고 있다. 이에 관해 주말을 거치면서 두 가지 주목할만한 움직임이 있었다. 첫째는 김관영 원내대표의 행보가 로우키로 전환된 것이다. 오신환 의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권은희 의원을 임재훈 의원으로 사보임한 것에 대한 당내 반발이 예상보다 큰 게 이유이다. 이 상황은 26일 국회 정개특위 일정에까지 영향을 준 걸로 해석된다. 정개특위의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소극적 태도로 돌아선 것이다.

둘째는 유승민 의원의 입장 표명이다. 오신환 의원이 사개특위에서 교체된 이후 바른정당 출신 의원의 이후 행보에 언론의 관심이 쏠렸다. 일부 보도에선 거의 ‘분당’이 확정된 것처럼 묘사되었다. 주말 예정된 유승민 의원의 공개 일정이 분수령이 될 거라는 전망이었다.

하지만 유승민 의원은 자유한국당 복당 등에 대해 “편한 길은 가지 않겠다”고 했고 오신환 권은희 의원에 대한 조치를 철회할 것을 문희상 국회의장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에게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28일 열었다. 당분간 당내 투쟁에 집중하겠다는 방향 제시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당 내의 무게추가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이 원하는 쪽으로 다소 기운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 입장에선 다음 총선에서 ‘보수대통합’ 시나리오에 시동이 걸리더라도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당대당 통합 등을 모색하는 게 훨씬 낫다.

유승민 의원의 입장 표명엔 아직 ‘제3지대 정당’이라는 바른미래당의 정체성을 포기할 때가 아니라는 판단도 실린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 의원은 사보임 관련 조치의 철회를 촉구하면서도 자유한국당에 ‘진정성 있는 선거법 개정안’을 내놓고 정개특위와 사개특위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패스트트랙의 애초 명분이 자유한국당이 제대로 선거법 개정 논의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한 일종의 결자해지를 요구한 것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의원들이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STOP(멈춤), 국민이 심판합니다!'에서 청운효자동주민센터를 지나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승민 의원의 주장이 관철될 수 있을까? 두 가지 면에서 역시 어렵다고 본다. 첫 번째는 오신환 권은희 의원에 대한 사보임의 불법성 여부를 가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과 자유한국당의 주장은 국회법 48조 6항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 문제는 국회 사무처가 이미 밝힌 대로 그간 국회 운영의 관행을 볼 때 해당 법 조항을 이들의 주장대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입장에서 자신이 어느 상임위에 배치될 것인지는 이해관계가 늘 엇갈리는 문제이다. 어느 의원을 어느 상임위에 배치할 것인지는 원구성을 할 때마다 각 당 원내지도부가 골머리를 앓는 문제이다.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이런 저런 협의 끝에 의원이 스스로 원하지 않는 상임위에 배정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만일 이때마다 개별 의원의 불만 여부를 국회의장이 확인해 특정 의원의 상임위 배정을 거부해야 한다면 국회 운영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사임 대상이 되는 의원이 동의 없는 원내지도부의 결정을 국회의장이 받아들이는 것은 늘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문제가 되는 국회법의 해당 조항은 임시회의 경우 “회기중”을, 정기회의 경우는 “선임 또는 개선 후 30일 이내”라는 조건을 병렬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기국회의 회기는 100일이고 임시국회의 회기는 30일 이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임위원을 선임 또는 개선한 후 대략 30일 정도는 유지하라는 게 이 법 조항의 취지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불법이 아니라고 해서 원내지도부의 모든 결정이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보임 결정을 법 위반으로 볼지 ‘당내문제’로 볼지에 따라 무게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김관영 원내대표로서는 사보임 결정이 치명적인 불법성을 내재하고 있는 게 아닌 한 유승민 의원이 요구하는 “원위치”를 쉽게 결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하나의 문제는 자유한국당이 유승민 의원이 주장하는 대로 국회 정개특위와 사개특위 논의에 성실하게 복귀할 가능성이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27일 광화문 앞에서 또다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좌파독재를 막고 헌법을 지키겠다는 구호가 여러 형태로 제기되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문재인 정부는 좌파가 아니고, 오히려 독재에 준하는 무언가를 할 의지가 없으며 헌법을 바꿀 만한 일도 되도록이면 안 하겠다는 태도이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이 이렇게까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총선을 대비한 사진 찍기와 눈도장 찍기(집회에 어느 당협의 누구라는 이름이 적힌 팻말을 갖고 나온 것을 보라)와 같은 소박한 이유부터 황교안 대표의 대권주자로서의 행보, 반-문재인 전선 형성을 통한 지지층 단결 등의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양당구도의 유지'에 있지 않나 싶다. 이 부분은 조선일보가 패스트트랙에 대한 사설을 쓰면서 몇 차례나 ‘친박신당’을 언급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스스로를 ‘진보’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볼 때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은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자유한국당은 실제 분열에 대한 공포심을 계속해서 안고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미 분열된 상태인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은 그렇다 쳐도, 총선을 앞두고 뭔가 중도층에 어필할 수 있는 공천개혁을 해야 한다는 게 문제다. 그러자면 친박계는 정리가 불가피할 텐데 이게 ‘TK자민련’이란 형태의 분열을 촉발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조선일보의 친박신당 운운은 미래를 예고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런 불안감을 다시 들쑤시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황교안 대표 취임 이후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올라가면서 구심력이 커지는 국면이 온 것이다. 좌파독재 운운하면서 이른바 태극기 세력과는 동질성 회복이 이뤄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동의하고 바른정당 창당을 주도해 분열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 중 하나인 김무성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요구하는 편지를 쓰며 또다른 결자해지(?)에 나서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메시지가 ‘강성’이 되자 막말의 아이콘 홍준표 전 대표까지 무대 위로 오르는 분위기다. 27일 집회에도 홍준표 전 대표와 행보를 같이 해온 MBC 아나운서 출신 배현진 씨가 등장해 화제였다.

지금 여야4당이 패스트트랙에 올리려는 선거법 개정안은 의석수를 늘리지 않고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절반만 적용하고 석패율제 등을 덧붙이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선거법 개정을 외쳐왔던 입장에서 평하자면 불충분한 안이지만 양당구도를 다당구도로 변화시키는 효과는 일부 있을 것이다. 자유한국당 입장에선 양당구도만 유지한다면 언젠가 다시 흐름이 자기네들에게 올 수 있다고 보는데 ‘원심력’을 굳이 키워 분열을 고착화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런 계산이라면 어떤 흥정이나 거래를 통해 자유한국당이 테이블에 복귀해 성실한 논의를 하는 그림은 상상하기 어렵다. 따라서 유승민 의원의 나름 좋은 제안과는 달리 답답한 국면은 이어질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 결정 여부와 관계없이 대치상황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바른미래당은 당내 갈등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상황이 좀 더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에서는 이런 상황에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돌파구가 생기는 일도 종종 있다. 하지만 선거제도 개혁을 바라는 입장에서 이러한 우연과 어떤 연속된 묘수만을 기대해야 하는 처지는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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