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자유한국당이 여야4당이 추진하고 있는 선거제 개편, 공수처법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온몸을 던져 저지하고 있다. 한국당은 각 회의장을 점거하고 회의 개의 자체를 막아서고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여야4당의 '선거법 날치기'라고 각을 잡았다.

25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이 추진하는 패스트트랙 지정을 한국당이 몸으로 막아서면서 격렬한 충돌이 발생했다. 한국당은 사개특위 위원으로 사보임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을 6시간여 감금하는가 하면, 정개특위·사개특위가 열릴 만한 회의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이어갔다. 의사과에 법안을 제출하는 것까지 가로막아 33년 만에 국회의장이 의사과 경호권을 발동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조선일보는 이 같은 상황을 '패스트트랙 막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1면에 <이메일 발의 시도, 경호권 발동…밤까지 '동물 국회'> 기사를 게재한 후, 4면과 5면의 지면 제목을 <패스트트랙 막장>이라고 적었다. 조선일보가 '패스트트랙 막장'이란 제목을 선정한 4면에는 <팩스로 교체, 병상서 결재, 이메일로 법안 제출 '전례없는 작전'>, <與 "한국당 점거 농성, 국회 선진화법 무너뜨렸다">, <설훈 "난 임이자 의원이 남자인 줄 알았다"> 기사가 실렸고, 5면에는 <김관영의 폭주…오전엔 오신환, 오후엔 권은희 특위서 배제>, <유승민·오신환, 손학규·김관영 탄핵 추진 한국당 의원들과 함께 법안제출 육탄 저지>, <새 선거제 땐 수도권 10석 감소…與 의원들 "신경 바짝 쓰여"> 기사가 게재됐다.

▲26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팩스 제출·病床 결재로 선거법 날치기, 군사 정부도 이러진 않았다> 사설에서 여야 4당이 추진하는 패스트트랙이 '날치기'라고 규정했다. 조선일보는 "한국당을 뺀 4당이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처리하기 위해 '작전'을 개시했다"며 "이 법들이 안건으로 지정되면 이르면 10월, 늦어도 내년 3월에는 국회 본회의 표결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제1 야당인 한국당이 반대하는 선거제도로 내년 4월 총선을 치르려는 것"이라며 "기존 선거제도는 소선거구 표 대결로 각 당 의석이 정해지는 반면, 새 제도는 정당 득표율로 각 당 전체 의석을 정한 뒤 그 안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로 배분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선거제도 자체로 한국당 의석이 줄어드는 데다 친박 성향 신당을 촉진할 가능성이 높아 한국당에만 치명적"이라며 "나머지 4당의 의기투합이 이뤄진 이유"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과거에도 날치기 처리는 있었지만 게임의 규칙인 선거제도만은 여야 합의로 정한다는 원칙이 지켜져 왔다"며 "그런데 스스로 '촛불 혁명'으로 태어났다는 정권이 군사 정부도 않던 선거법 날치기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여야 협치는 국민의 명령'이라던 국회의장이 병상 결재라는 편법까지 써가며 이런 무리수에 동참했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같은 조선일보의 보도에는 메워야할 행간이 적지 않다. 여야 4당이 주장하는 안은 50% 연동률을 적용한 준연동제다. 당초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3당은100% 연동률을 적용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했으나, 민주당의 반대로 50% 연동률로 합의됐다. 민주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반대한 이유는 기득권인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로 총 의석수를 정하기 때문에 정치판을 양분해온 민주당과 한국당 입장에서는 의석수 감소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승자독식형 양당제로 시민의 목소리를 담아내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합의된 안이 준연동제다. 국민의 의사를 100% 반영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기존의 소선거구제보다 비례성을 높이는 진전된 안이다.

한국당이 이러한 논의에 수년 간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데 이견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이 한국당은 새누리당 시절이었던 2015년 선거구 획정 논의 과정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반대했다. 당시 정개특위 위원장이었던 새누리당 소속 이병석 전 의원이 현재 민주당 안과 유사한 50% 연동률을 적용한 제도를 제안하기도 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20대 국회 들어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요구하는 시민사회와 야당들의 목소리에 무시로 일관했다.

지난해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선거제도 개혁을 전면에 내세울 때에도 한국당은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한국당은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개헌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뚜렷한 입장이 없었다.

지난해 12월 손학규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단식 투쟁을 벌이자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5당 원내대표는 1월 중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그럼에도 한국당은 1월이 지나고 2월이 지나도 선거제도 당론도 내지 않았다.

결국 지난달 10일 한국당은 의석수를 270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전부 없애겠다는 안을 냈다. 거대정당의 공천권만 더욱 강화해주고 정치의 다양성을 해치는 '퇴행안'으로 평가된다.

조선일보는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모르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12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하는 논조의 칼럼을 수차례 게재한 바 있다. 12월 11일 조선일보 38면에 실린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칼럼은 "기득권을 지키겠다고 정치 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외면하고 있는 두 거대 정당의 모습이 볼썽사납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2월 14일 보수성향 정치학자인 윤평중 한신대 교수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칼럼을 조선일보에 실었다. 당시 조선일보 34면에 실린 칼럼에서 윤 교수는 "현행 선거제도는 양대 정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며 "선거제도 개혁엔 폭넓은 사회적 합의가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전체 국회 의석을 정당득표율 대로 배분하는 방안"이라고 밝혔다.

윤평중 교수는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최대 혜택을 입었지만 역대 선거에서 승자 독식 선거제의 최대 수혜자는 한국당과 그 전신인 새누리당·한나라당"이라며 "결국 민주당과 한국당은 선거제 덕분에 권력을 독과점해온 적대적 공존 관계"라고 비판했다.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를 되새겨볼 필요도 있다. 국회선진화법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지만, 기본 취지는 국회에서 최소한 법안 날치기와 같은 다수당의 횡포는 일어나지 않게 하자는 것이었고, 날치기를 방지하기 위해 패스트트랙이란 제도가 탄생한 것이다. 패스트트랙은 국회 내에서 도저히 협상이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에서 쟁점법안의 숙성기간을 갖고 그 기간 동안 토론을 해보다가 정 안 되면 표결에 붙이자는 취지의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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