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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으면 또 산 나오는 패스트트랙여야4당 가까스로 합의 추인, 여전히 공은 바른미래당에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9.04.24 09:05

국회의 패스트트랙 논의를 보며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합의가 됐다는 점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또 한편으론 선거제도와 검찰개혁에 동의하는 사람으로서 참 처량한 신세라는 생각을 했다. 이게 이렇게 산을 넘고 또 넘어 다시 장애물을 맞닥뜨리면 또 머리를 맞대는 방식으로 처리할 일인가?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울분이 차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여야4당 원내지도부가 패스트트랙 합의를 이뤘지만 바른미래당 문제가 남아있다. 23일 패스트트랙 합의안을 추인하는 각 당 의원총회의 하이라이트도 바른미래당이었다. 바른미래당은 12대 11의 운명의 장난 같은 표결로 가까스로 패스트트랙 합의안을 추인했다. 손학규 지도부가 패스트트랙 합의안 추인에 반대하는 이언주 의원의 당원권을 미리 제한한 것을 ‘큰 그림’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해도 해외출장을 간 박주선 의원을 어떻게든 표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을 거라는 시각도 있다.

이날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서 최대 쟁점은 패스트트랙 합의안 추인을 당론으로 볼 것이냐 여부였다. 바른미래당 당헌 당규 상에 당론은 3분의 2 표결로 결정하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결국 과반 표결을 했기 때문에 김관영 원내대표는 ‘당론’이란 표현 대신 ‘당의 입장’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당론’과 ‘당의 입장’의 차이를 가르는 핵심 요인은 표결의 강제성 여부다. 예를 들어 당론일 경우 국회의원이 소신을 앞세워 이에 어긋나는 표결을 하기 어렵다. 그러나 ‘당의 입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국회법 상 패스트트랙은 본회의 또는 해당 상임위에서 5분의 3 이상 표결을 요구한다. 바른미래당이 당론표결을 강제할 수 있다면 본회의 의석에서 패스트트랙 찬성파가 의결정족수를 가까스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론’이 아닌 ‘당의 입장’으로는 형식적으로 자유투표가 될 뿐이다.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이 패스트트랙에 반대하는 상황에선 본회의에서의 패스트트랙 절차는 어렵다. 따라서 상임위에서 결정해야 한다.

패스트트랙의 핵심인 선거법과 공수처법은 정개특위와 사개특위에서 다뤄야 한다. 정개특위는 바른미래당의 김동철, 김성식 의원이 선거법 개정에 호의적인 입장이라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사개특위의 경우 바른미래당의 권은희, 오신환 의원이 공수처법에 부정적인 걸로 알려져 있다. 권은희 의원은 그나마 국민의당 출신이니 결국 핵심키는 오신환 의원이 쥐고 있는 상황이 됐다.

23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패스트트랙 저지 및 의회주의 파괴 규탄 관련 기자회견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오신환 의원은 패스트트랙 합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도 핵심은 패스트트랙 합의안 추인이 당론이냐 아니냐다. 입장을 뒤집기 위해서는 당론이 결정될 필요가 있는데 그런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소신을 바꿀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게 오신환 의원의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바른미래당 지도부가 ’당의 입장’을 관철시키려면 오신환 의원을 사개특위에서 교체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해법에 대해서는 바른정당 출신들이 이미 대항논리를 만들어 놨다. 당론이 결정된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의 입장’을 이유로 사개특위원을 사보임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승민 하태경 의원 등은 김관영 원내대표가 사보임은 없다는 약속을 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보임이 이뤄진다면 바른정당계의 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일부 언론은 이언주 의원의 탈당 선언을 기점으로 해서 ’도미노 탈당’ 등이 이뤄질 가능성도 점친다. 유승민 의원이 본인의 진로가 아니라 “당의 진로”를 고민하겠다고 했다는 점에서 당장 일어날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 “당의 진로”란 결국 당내 권력투쟁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일단은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면서 6월 예정된 원내대표 선거를 준비하겠다는 얘긴데, 바른정당 출신들이 ’당 지도부의 일방적 결정’이라는 명분을 쥔 상황에선 안철수계 일부가 이에 동조하는 현상도 가속화 될 수 있다.

손학규 대표는 퇴진론에 대해 추석까지 당 지지율 10%를 넘기지 않으면 퇴진하겠다고 한 바 있는데, 바른미래당 지지율 10%는 지금으로선 어떤 시점을 가정해도 불가능해보인다는 걸 감안하면 9월이나 10월 경 안철수 전 의원의 정계 복귀가 가능해질 때까지는 버티겠다는 의사 표현으로 읽힌다. 그러나 안철수 전 의원이 “이태규 의원과 상의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하는데, 정작 이태규 의원은 지도부 퇴진을 주장하고 있어서 손학규 대표가 마냥 버티는 것도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바른미래당이 계속 이런 식이면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패스트트랙의 동력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 될 수 있다. 그렇잖아도 최장 330일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절차적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330일은 상임위 180일, 법사위 90일, 본회의 60일 이내에 심사를 하도록 돼있다는 것을 말하는데 본희의 60일 부분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재량을 발휘한다고 해도 나머지 270일은 거의 꽉 채우게 될 거라는 게 여의도 주변의 분석이다. 특히 대화가 거의 불가능한 법사위의 경우는 말 그대로 100%이다.

대충 270일로 계산해도 내년 2월이다. 이때까지 선거법 개정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로 각 당이 공천 등의 선거를 대비한 절차를 마무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결국 공중분해 직전인 바른미래당의 운명까지 좌우할 수 있는 자유한국당이 협력하는 수밖엔 없다. 지금이야 좌파독재니 뭐니 하지만 결국 ‘룰’의 문제라는 점에서 자유한국당이 마냥 외면만 하고 있진 않을 거라는 시각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국회의원들 각자의 운명이 갈릴 수 있는 문제를 여야가 주고받기식 협상으로 풀 수 있을 거라는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때는 국민여론이 자유한국당에 압력이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정공법이다. 물론 개혁 과제가 좌초되고 집권여당이 방어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는 역시 이게 어려울 것이다. 의석 수는 적지만 어쨌든 명분에 호소할 수 있는 진보정당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발휘하는 것도 해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려면 선거법 개혁의 최대 수혜자는 정의당이라는 ‘밥그릇’ 논리와 정면승부해야 한다. 선거법 개정에만 매달리는 인상을 주기보다는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꿔나가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국민을 대상으로 알려가고 설득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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