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바른미래당이 의원총회에서 선거제 개편안, 공수처법 등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서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이 추인되면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추진하는 선거제도 개편, 사법개혁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바른미래당 내부에서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추가적인 난항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23일 바른미래당은 의원총회를 열고 선거제 개편안,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안건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쟁점은 공수처법이었다. 지난달 20일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서 패스트트랙 지정에 대한 반대가 극심하자,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은 물밑 협상을 통해 공수처법에 대한 논의를 벌였다.

▲23일 오후 바른미래당 의원총회 결과 브리핑하는 김관영 원내대표(가운데). 왼쪽은 임재훈 의원, 오른쪽은 김수민 의원. (연합뉴스)

당초 바른미래당은 공수처에 기소권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쳐왔고, 민주당은 사정기관을 비롯해 국회의원, 장관 등 고위공직자 일반에 대해서까지 공수처의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은 공수처에 검사, 판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을 수사할 때에만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의견을 좁혔다.

그러나 의원총회 초반부터 바른정당계 의원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지상욱 의원은 김관영 원내대표를 향해 "공수처 설치 관련 바른미래당 안을 내다 버리고 민주당 안을 받아왔다"며 "원내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지 의원 외에도 바른정당계 의원 대부분이 반대논리를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바른정당계 의원들의 반대에도 바른미래당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 추인은 극적으로 타결됐다. 이날 재적 의원 23명 중 12명의 의원이 패스트트랙 지정에 찬성했고, 11명이 반대했다. 단 한 표 차이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합의안에 대해서 최종 의사 결정을 단순다수결로 할지, 당론 의사결정 방식으로 할지 여부에 대해서도 오랜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23명 의원의 의사를 물어서 비밀투표를 하기로 했고, 과반수 방식으로 표결하는 것으로 방식이 정해졌고, 다시 추인 여부를 묻는 투표를 했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오늘 추인한 여야 4당 합의문에 따라서 앞으로 정개특위와 사개특위에서 합의문의 취지를 반영하겠다"고 강조했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바른미래당이 정치개혁을 위한 첫 발을 내딛은 큰 획을 그었다고 생각하고 대한민국 정치발전과 민주주의 발전, 사법제도 개혁에 바른미래당이 개혁정당으로서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다만 김관영 원내대표는 '당론'이라는 표현은 피했다. 앞서 이날 의원총회 안건 표결 방식을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바른미래당 당헌 제53조 의결규정 제1항은 "의원총회의 의결은 거수 혹은 기립을 원칙으로 하며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돼 있는 반면, 제54조 제1항은 "주요 정책·법안 등에 대하여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당의 입장을 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김 원내대표는 "당론이라는 표현은 안 썼다"며 "당의 입장이 정해졌다고 표현하겠다"고 밝혔다.

▲23일 오후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장을 나서는 유승민 의원. 왼쪽부터 이혜훈, 유의동, 유승민, 지상욱 의원. (연합뉴스)

바른미래당이 표결을 통해 패스트트랙 지정을 당의 입장으로 추인했지만 넘어야 할 산은 더 있다. 이날 의원총회 표결 방식과 결과에 대해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바른정당계 좌장격인 유승민 의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논의 과정에서 2/3가 아닌 것은 당론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며 "이번 패스트트랙 문제에 대해서는 당론 없는 당이 돼 버렸다"고 비판했다.

유승민 의원은 "오늘 이런 식으로 당의 의사가 결정된 것에 대해 저는 굉장히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며 "선거법은 다수의 힘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당의 의사결정까지 한 표 차이로 표결해야 한다는 현실에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유승민 의원은 거취의 변동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유 의원은 "굉장한 자괴감을 느끼며 당의 진로에 대해 동지들과 심각하게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탈당을 의미하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유 의원은 "여기까지만 하겠다"고 답변을 하지 않았다.

바른미래당 사개특위 간사인 오신환 의원이 바른정당계다. 오 의원은 공수처에 기소권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오기도 했다. 바른미래당이 사개특위와 정개특위 위원들에 대한 사보임을 진행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오 의원의 행보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대해 김관영 원내대표는 "평소에 개인적으로 공수처안에 대해 오신환 의원의 소신도 있었고, 수사·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을 주장해 온 것도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원내대표가 최종 합의한 안이 오늘 바른미래당에서 추인됐으니 오 의원도 그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 사개특위에 임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자유한국당은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지정 추진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의원총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 법안이 패스트트랙에 태워지는 순간 민주주의 생명은 270일 시한부가 된다"며 "의회 민주주의 사망선고이고, 삼권분립이 해체되는 것"이라고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한국당이 비례대표를 폐지하고 의원정수를 270석으로 줄이는 안을 내놨는데 왜 논의를 하지 않나"라고 토로하며 "이유는 딱 하나다. 좌파연합세력이 내년 선거에서 절대 과반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3월 8일 패스트트랙 지정과 관련해 "이렇게 야당을 무시하고 멋대로 맘대로 하는 여당의 태도에 대해 저희는 거듭 경고한다"며 "이제 의원직 총사퇴도 불사할 것"이란 뜻도 밝힌 바 있다. 한국당은 이날 오후 3시 패스트트랙 지정 추진을 규탄하는 의원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