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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박근혜 석방 ‘여성의 몸’ 운운에 대하여[도우리의 미러볼] 정치 공간에서 ‘여성’이란 기표 강조의 의미
도우리 객원기자 | 승인 2019.04.20 10:41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7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기간이 만료된 데 대해 "이렇게 오랫동안 구금된 전직 대통령이 계시지 않고, 몸도 아프시다. 여성의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계신 점을 감안해 국민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발언이 논란이 된 것은 황교안 대표가 국정농단의 주역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주장한 것뿐 아니라, 그 근거로 ‘여성의 몸’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성이라는 점을 앞세워 그 죗값을 물타기 하려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언제나 여성의 몸이었을까? 당연한 말이라 생각되어 이상한 질문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성의 몸은 그냥 여성이라서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번 황교안 대표가 한 것처럼 ‘호명’이 필요하다. 단적인 예로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은 가해자가 여성 일반에 앙심을 품고 여성을 노린 살인이었지만 ‘여성의 몸’을 노린 범죄(여성살해, femicide)였다고 아직까지도 제대로 호명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진주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역시 ‘묻지마 살인’, ‘조현병자의 살인’ 등으로만 명명될 뿐 여성살해라고 분석하는 언론은 소수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래서 ‘여성’이 호명될 때, 특히 ‘여성’ 정치인을 두고 여성이라는 기표가 강조될 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고 의도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황교안 대표가 정말 여성을 보호할 존재로 여겨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여성의 몸을 이야기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여성의 몸’은 ‘석방의 빌미’이면서 황 대표의 권력욕을 실어 나르는 기표다.

박근혜가 사실상 처음 공적 자리에서 여성으로 호명된 것은 대선 후보 때 ‘첫 여성 대통령’을 선전했을 때였다. 이전 정치와 다른, ‘깨끗한 정치’로서의 도덕적 우위를 여성이라는 성별로 확보했으며 이는 그가 ‘비혼 여성(처녀)’이라는 점과 함께 강조됐다. 국정농단 사태 때도 “여성 대통령에게 미용 시술 의혹에 대해 물으면 결례(김기춘 전 비서실장)”,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있다(유영하 대통령 변호인)”이라며 여성임이 강조됐다.

반대 진영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후보 시절 야권에서 “생식기만 여성(황상민 심리학 교수)”처럼 ‘비혼 비출산 여성’이라는 점을 들어 정치적 역량을 깎아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탄핵 정국 때 박 전 대통령의 얼굴을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에 접목시킨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 그룹 DJ DOC의 ‘수취인분명(미스박)’과 래퍼 산이의 ‘나쁜X’,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 대통령이 미용을 위해 2000억 원 이상을 썼다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라고 발언했다가 해명한 것 등이 그랬다.

이렇게 박근혜는 언제나 여성이지 않았다. 남성 정치가 ‘꽃’이라고 불렀을 때 그들에게 ‘꽃’이 되었다.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모두 정치적 전략에 따라 그때그때 여성으로 호명했다는 점에서 정확히는 남성 정치의 이해에 따라 만들어진 여성이었다. 보수진영이 여성을 동원할 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배려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상 그를 동등한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진보진영이 여성을 동원할 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겨냥하는 듯 보이지만, 여성성에만 매몰되어 정치적 역량과 직무수행에 대한 심판을 오히려 흐렸다. 무엇보다 어떤 진영이든 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여성으로 호명하는 방식은 궁극적으로 여성 집단 전체에 대한 비하, 여성혐오로 이어졌다. 박지원 의원의 "100년 내 여성 대통령은 꿈도 꾸지 말라", 송영길 의원의 “박근혜가 실추시킨 여성 리더십” 운운이 대표적이다.

황교안 전 총리(왼쪽)와 박근혜 전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남성 정치인은 여성 정치인과 같은 방식으로 ‘남성’으로 호명되지 않는다. ‘남성 대통령 문재인’, ‘남성 이명박’으로 회자되거나, ‘남성의 몸’이 강조되거나, ‘동정 여부’가 중요한 요소로 거론되거나, 피부과 및 패션 등의 미용 비용이 논란이 되거나, ‘생식기만 남성’이라고 이야기되지 않는다. 남성은 이미 (남성) 정치에 호명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남성 정치 공간에서 여성을 호명함으로써 얻는 가장 큰 효과는 여성을 남성과 다른 타자, 단일한 집단이라는 믿음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여성 간 차이를 드러내기보다 전형적인 여성다움으로 한 데 묶어버림으로써 여성을 효과적으로 정치의 공간에서 분리시켜왔다. 결국 여성/젠더 의제는 그저 여성 정치인 개개인의 사적인 특징으로 탈정치화되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숙명여대에서 5.18망언을 한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 규탄 성명서를 여성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철회한 사태는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특기할 점은 김순례 의원을 기존 남성 정치에서 해왔던 것처럼 ‘여성’으로 호명하기를 거부하는 숙명여대 구성원 내부의 ‘차이’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여성은 호명되기보다 ‘여성들’로 드러나야 한다. 더 많은 여성들이 정치에 진출해 ‘그저 여성’이 아닌, 차이를 경합할 수 있는 진정한 여성 대표성을 갖춰야 한다(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의 도입이 시급하다). 그리고 이제 역으로, 개별자로 여겨져왔던 남성 정치인들의 ‘남성성’을 호명해야 한다. ‘남성의 몸’으로 젠더 의제를 다루기에, 보편 시민을 위한 정치를 하기에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지 않느냐고.

도우리 객원기자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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