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선거제도 개혁 패스트트랙 지정 여부를 두고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가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홍 원내대표가 이날 의원총회의 핵심이었던 민주당 원내지도부와의 공수처법 합의안에 대해 "합의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원내지도부가 공수처법안에 상당부분 합의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18일 바른미래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선거제도 개혁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한 표결을 진행하기로 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50% 연동률을 적용한 선거제도 개편안을 각종 개혁입법안과 연계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3월 20일 바른미래당 긴급 의원총회에서 반대 의견이 제기됐다. 특히 여야 4당이 선거법과 함께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할 예정인 공수처법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당초 바른미래당은 공수처에 기소권을 줘선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에 따르면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원내지도부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물밑협상을 벌였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은 공수처가 검찰과 사법부, 경찰을 수사할 때만 기소권을 갖는다는 내용에 합의했다고 한다.

바른미래당은 이 같은 내용을 의원총회를 통해 당론으로 정하고, 민주당, 민주평화당, 정의당과 함께 선거제 개편안을 포함한 패스트트랙 지정을 추진할 예정이었다. 공수처법 합의안과 의원총회 계획까지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 협의했고, 이 같은 내용은 청와대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김관영 원내대표가 의원총회에서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우리당 공수처 법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연합뉴스)

그러나 바른미래당이 민주당과 합의한 공수처법을 당론으로 추인하기 위해 의원총회를 진행하고 있던 시각, 홍영표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수처와 관련해선 기존 당론이 변화한 게 없다"며 "(바른미래당과) 합의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홍영표 원내대표의 발언은 순식간에 기사화됐으며 바른미래당 바른정당계 의원들에게 곧장 전파됐다.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홍 원내대표의 발언을 기초로 '협상이 뒤집어진 것이냐'며 강하게 반발했고, 의원총회 표결도 무산됐다. 결국 바른미래당은 민주당과 구체적인 합의안에 서명한 후 다시 의원총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조만간 민주당과 최종적으로 공수처법 합의안을 문서로 작성하겠다"고 밝혔다.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에 따르면 홍영표 원내대표의 발언 이후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들과 선거제도 개혁을 지지하는 시민사회 측에서 민주당에 해명을 요구했고, 민주당 측에서 비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는 후문이다. 당장 바른미래당 의원총회가 있었던 18일 아침에 홍 원내대표와 김관영 원내대표가 만나 관련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홍영표 원내대표의 발언에 선거제 개편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반대하는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힘을 얻는 모양새다. 의원총회 후 바른정당계 대표격인 유승민 의원은 "(정당간) 최종 합의됐다는 것은 원내대표간에 서명한 구체적인 (문서로 된) 안이 있어야 된다"며 "(홍 원내대표가 이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바른미래당이 바보같이 의총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에게 막말을 했다가 1년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은 이언주 의원은 "김관영 원내대표와 손학규 대표는 '실질적으로 합의가 됐는데, 홍영표 원내대표 입장에선 합의가 되지 않은 것처럼 말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말했다"며 "바른미래당이 여당 2중대로 전락했다"고 비난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김관영 원내대표가 협상안이라고 의원총회에서 보고할 정도의 상황에서 홍영표 원내대표가 '합의한 적이 없다'는 식으로 얘기한 것은 민주당의 개혁의지를 의심하게 한다"며 "홍 원내대표와 김 원내대표가 하루이틀 의제를 논의하는 관계도 아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하 공동대표는 "바른미래당이 중요한 의원총회를 하는 상황에서 의제와 관련해 홍 원내대표가 그런 식으로 얘기한 것도 정치 도의에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