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 드라마. 자이언트가 드디어 마지막 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총 방영횟수 60회. 5월에 첫 방송을 시작했으니 장장 7개월의 대장정이었죠. 시작하자마자 동이의 위세에 눌렸고, 기세를 타기 전에 SBS의 월드컵 독점 중계로 원치 않은 휴식을 거쳐 결국은 월화 드라마의 왕좌에 등극한 이 작품의 행보야말로 그야말로 극적인 역전 드라마입니다. 특정 정당, 특정 인물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냐는, 한국 현대사를 조명하는 드라마가 늘상 받기 쉬운 의심과 불만에서 출발했었지만 결국 한국의 전후시대부터 80년대를 망라한 선이 굵은 복수극이 주는 매력이 마지막에 와서 시청자들의 선택을 쟁취한 것이죠.

그만큼 볼거리가 많은, 흡입력이 있는 장점이 많은 드라마였습니다. 대립하는 두 진영 사이에서 서로 주고받는 권모술수의 격돌. 그 치열한 공방전이 2~3회를 넘기지 않게 짧고 빠르게 반복됩니다. 이 격돌을 거치면 거칠수록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이강모 남매들의 능력과 위치는 점점 더 상승하고, 적인 줄로만 알았던 이들도 하나둘씩 포섭하여 세를 부풀리며 절대악 조필연과의 격차를 점점 더 줄여나가죠. 갈등이 심해지고 판이 커지면서 사람은 성장하고 활동 분야는 넓어지면서 그때 그 당시의 어두웠던 권력의 일면, 부와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졌었는지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자이언트. 거인이라는 제목은 어떤 개인이 거대화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자체. 너무나 거대해서 꼼짝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짊어져야 했던 무거움이었어요.

그렇기에 이 드라마의 진정한 주인공, 가장 거대하고 압도적이었던 거인은 성장하고 단결하고 변해온 이강모 남매들이 아니라 그들이 극복하고 복수하고자 했던 대상. 희대의 악당 조필연 그 자체입니다. 인격도, 애정도, 관계도 모두 뛰어넘으며 피보다 진한 것이 욕망이라는 말을 태연하게 말하는 존재. 언제나 권력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었고, 경제계를 좌지우지하며 오로지 탐욕 만으로만 살아가는 이 악마는 그들이 살았던 세상을 설명하는 모든 것이었죠. 이 남매들이 복수하고자했던 대상은 단순히 조필연이라는 한 개인이 아니라 그 시대. 더럽고 추악한 욕망이 모든 것을 지배했던 그 암울했던 한국 사회였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복수극은 그다지 통쾌하지도, 깔끔하지도 않습니다. 국무총리라는 권력의 정점을 눈앞에 두고 끝내 무너져버릴 조필연의 파멸이 다가오고 있지만, 많은 이들을 피눈물하게 만들었던 만보그룹도 힘을 잃어버릴 겁니다. 매번 엇갈리기만 했던 이들의 러브라인도 어떻게든 마무리되어 결실을 맺겠죠. 하지만 출연진들의 예고처럼 어느 한 사람이 죽음으로 끝을 본다고 해도, 어떤 충격적인 반전이 뒤통수를 때린다고 해도 자이언트가 남긴 잔상은 결코 가볍지 않아요. 해피엔딩이란 이 드라마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는 마지막이기 때문입니다.

정의의 편처럼 그려지는 조필연을 증오하며 그 인간의 추악한 죄상을 폭로하고 정죄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하지만, 그들 역시도 이 격돌을 거치며 손을 더럽히고 영혼을 추락시킵니다. 건실한 기업인처럼, 민주화를 염원하는 정치인처럼, 화려한 은박의 스타처럼 외양을 두르고 있지만 이들 역시도 상대방을 누르기 위해 조필연의 악행과 다를 바 없는 문제들에 얼마간의 손을 담그고 있는 이들입니다. 누구를 일방적으로 손가락질하기에는 모두가 폭력, 고문, 정경유착, 사채, 담합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쩌면 조필연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인생을 걸었던 이 남매들처럼, 이강모의 과거에 앙심을 품고 복수를 원하는 또 다른 이가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2010년 최고의 히트 상품인 제빵왕 김탁구가 근래 가장 비슷한 선과 악의 대립을 그려냈고, 그 방식은 자이언트보다 훨씬 더 막장스러운 요소들을 품고 있었지만 끝끝내 주인공 김탁구를 답답하고 우직할 정도로 정직하고 올곧게 그려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을 겁니다. 김탁구의 승리는 아무런 잡음도 불만도 제기할 수 없는 착한 해피엔딩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이언트는 다릅니다. 누가 이긴다 해도 찜찜하고 답답한 현실. 결코 행복한 결말을 기대할 수 없는 진흙탕 싸움. 어쩌면 그렇기에 이 드라마는 우리가 살아왔던, 그리고 지금도 살고 있는 지금의 답답한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이라 해야겠네요. 이 드라마 속사람들은 여전히 우리의 머리 위에서 권력과 부를 누리며 살아가는 잘난 분들이니까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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