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가해자는 살아남고 피해자는 죽어버린 영화계 현실이 비참하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으나 역으로 '줄소송'을 제기하는 영화감독 김기덕 씨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김 씨의 연이은 역고소와 왕성한 해외활동이 불이익을 감수하고 폭로에 나선 피해자들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는 영화감독김기덕사건공동대책위원회(이하 김기덕공대위) 주최로 '고소남발 김기덕 감독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 씨는 자신의 성폭력 의혹을 폭로한 배우 A씨, 이를 보도한 MBC<PD수첩>, 자신을 비판한 여성단체 등을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했다.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는 영화감독김기덕사건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고소남발 김기덕 감독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미디어스)

김 씨의 연이은 역고소는 자신에 대한 강제추행치상 혐의와 관련해 무혐의 판단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2017년 A씨는 2013년 영화 <뫼비우스> 촬영 당시 김 씨가 연기 지도를 이유로 빰을 때리고, 협의 없이 베드신 촬영을 강요했다고 폭로하며 강제추행치상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폭행 혐의만 인정돼 벌금 500만원의 약식명령이 떨어졌고, 이후 <PD수첩>이 성폭력 의혹을 보도하자 김 씨는 역고소에 나섰다. 김 씨는 A씨를 무고 혐의로, <PD수첩>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또 성폭력 사건을 이유로 자신의 영화제 작품 출품을 비판한 한국여성민우회에 대해 3억원의 손해배상을, A씨와 PD수첩에 대해서는 "허위 주장을 방송에 내보냈다"며 10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김 씨가 <PD수첩>을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소송은 '혐의 없음'으로 결론난 상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홍태화 전국영화산업노조 사무국장은 "가해자는 살아남고 피해자는 죽어버린 영화계의 현실이 너무나 비참하다"고 한탄했다. 영화산업노조는 2017년 해당 사건을 신문고를 통해 처음 접수해 30여차례에 달하는 사실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주변인 진술, 녹취파일 등을 통해 A씨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되었음에도 김 씨의 사과는 없었고, <PD수첩> 방영 이후 줄소송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홍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홍 사무국장은 "가해자는 여배우의 인권을 침해하고, 폭행죄 유죄에도 불구하고 영화제 출품, 심사위원 활동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가해자를 옹호했던 프로듀서는 제작자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라며 "이에 반해 피해자는 영화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역고소와 손해배상 소송으로 수차례 병원 입원을 하는 등 심신이 미약한 상황이 됐다"고 밝혔다.

MBC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 편

박건식 <PD수첩> 책임 프로듀서는 "김 감독이 한국에서 유일하게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인물로서 승승장구 할때마다 여성 피해자들은 더 비참해지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피해자들은 '차라리 그 때 김 감독의 요구를 거부하지 않고 따랐어야 했나'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박 PD는 "지난 1년간 김기덕 편, 장자연 편, 최근에는 김학의 편 등을 방송했는데, 사건의 양상이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여성들이 거대 권력 앞에서 인격을 존중받지 못하고 하나의 물건처럼 도구화됐다. 사건 해결이 안 되고 용기를 내 자신을 드러냈던 분들만 고통받고 있는 이 시간은 정말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성폭력 피해자들은 2차 피해와 가해자의 역고소로 인해 더 큰 고통을 호소하고 있고, 그 수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성폭력 피해자 무료법률 구조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한국성폭력위기센터의 지원 현황에 따르면, 2017년 전체 구조건수 195건 중 22건은 역고소 피해지원이었다. 2018년에는 전체 구조건수 380건 중 81건이 역고소 피해지원이었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미투운동 이후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발언들이 나타나면서 가해자의 실체를 많이 보게 됐다"며 "피해자를 대상으로 무고죄, 위증죄, 손해배상 청구, 심지어는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나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해 진실을 덮어버리려는 시도가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 대표는 "김 감독의 손해배상 청구는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있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면서 "김 감독은 법적 처벌을 피했을지는 몰라도 피해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다.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깊은 성찰을 행해야 할 것이다. 만약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한 역고소라면 더 큰 부끄러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질타했다.

[정정보도문] 영화감독 김기덕 미투 사건 관련 보도를 바로 잡습니다.

해당 정정보도는 영화 ‘뫼비우스’에서 하차한 여배우 A씨측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

본지는 2019년 4월 18일 <“성폭력 가해자 김기덕, 연이은 ‘역고소’로 피해자 위축시켜>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 것을 비롯하여, 약3회에 걸쳐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했으나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가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했다는 내용으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뫼비우스’ 영화에 출연하였다가 중도에 하차한 여배 우는 ‘김기덕이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배우 조재현의 신체 일부를 잡도록 강요하고 뺨을 3회 때렸다는 등’의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을 뿐,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