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중앙일보가 외신 기사 내용을 출처 표기 없이 '베껴쓰기'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중앙일보 칼럼에 등장하는 사례들이 영국 데일리 메일, 미국 퓨처리즘 기사에 나온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앞서 심재우 중앙일보 뉴욕특파원은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을 표절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 2일 29면에 김성탁 런던특파원의 <AI 판사에게 재판받는 시대가 왔다> 칼럼을 게재했다. 칼럼은 유럽 에스토니아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로봇 판사를 만들 예정이며, 에스토니아 정부는 일찍이 디지털화에 힘써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칼럼 말미에는 일론 머스크의 말을 인용해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2일 중앙일보 <AI 판사에게 재판받는 시대가 왔다> 칼럼. 가독성이 좋게 칼럼을 가로에서 세로로 편집했습니다.

중앙일보의 칼럼은 지난달 26일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사 데일리 메일이 작성한 기사와 내용·서술방식이 유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데일리 메일 기사는 에스토니아에 로봇 판사가 도입될 예정이고, 로봇 판사는 7000유로 이하의 재판을 주재할 것이라는 내용에서 시작한다. 데일리 메일은 ▲로봇 판사로 인해 인간은 더 큰 사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된다 ▲로봇 판사의 판결은 구속력이 있지만, 인간 판사에게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출시 날짜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5월 관련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중앙일보 칼럼 역시 같은 내용, 유사한 순서로 서술된다. 중앙일보는 “7000유로(약 890만 원) 이하의 소액 재판을 받게 됐는데, 법정에 나오라는 연락이 오지 않는다. 판사의 얼굴을 볼 일도 없다. 판결 날짜가 잡히더니 휴대전화로 결과가 전해졌다. 북유럽 소국 에스토니아에서 몇 년 후 나타날 장면이다. 법무부가 정부의 데이터 담당 책임자에게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로봇 판사’를 설계해달라고 공식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에스토니아가 개발 중인 AI 판사는 법률 문서와 관련 정보를 분석해 소액 사건의 판결을 내리게 된다. 그 자체로 법적 효력이 인정된다”, “재판 결과에 불만이 있으면 ‘인간 판사’에게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소액 사건을 AI에 맡겨 판사의 업무량을 덜어주면서 더 큰 규모나 중요한 재판에 집중하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한다. 초기 개발 단계이지만 5월께 프로젝트의 윤곽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기술했다. 중앙일보 칼럼의 도입부와 데일리 메일의 기사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어지는 내용은 미국의 독립 미디어 퓨처리즘(Futurism) 기사와 유사하다. 퓨처리즘은 25일 에스토니아의 로봇 판사와 AI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퓨처리즘 기사에는 ▲인구 140만 명 미만의 작은 북유럽 국가 에스토니아는 정부 기능을 디지털화하는 발전을 이뤘다 ▲에스토니아는 외국인을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이 정부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전자시민권"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에스토니아는 보조금이 지급된 농가들이 정부 규칙을 따르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위성사진을 이용한 알고리즘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에스토니아는 AI 알고리즘을 이용해 해고된 근로자들의 이력서를 스캔하고 일자리를 찾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중앙일보 칼럼 역시 대동소이하다. 중앙일보는 “인구가 140만 명에 불과한 에스토니아는 정부 기능을 디지털화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2002년 전자신분증을 도입했고, 외국인도 원격으로 신분증을 만들 수 있다”면서 “이미 정부 서비스 중 AI가 맡는 일도 많다. 농업보조금을 지원받는 농가들이 정부 보조 규정에 맞게 경작을 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AI가 위성 이미지를 스캔해 적합 여부를 판별한다. 노동 분야에서 AI는 정리해고된 이들의 이력서를 파악해 적당한 직업을 찾아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앙일보 칼럼의 마지막 내용은 데일리 메일과 유사하다. 데일리 메일은 ▲2016년 YouGov 조사에 따르면, 60% 이상의 사람들이 로봇이 향후 10년 안에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AI가 불량이 날 수 있고, 과학자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AI는 보행자 쪽으로 차 방향을 바꾸거나, 차벽을 들이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역시 “AI의 발전은 두려움도 안겨 준다. 2016년 글로벌 조사에서 응답자의 60% 이상이 로봇이 향후 10년간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고 우려했다”면서 “AI가 불량이 나거나 과학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지면 실패를 예측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자율주행 차가 갑자기 보행자를 향해 핸들을 꺾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본인의 페이스북에 “이 사건을 외국인이 볼까 두렵다”고 지적했다. 감동근 교수는 중앙일보 심재우 특파원의 표절 논란을 밝혀낸 바 있다. 감동근 교수는 중앙일보 칼럼이 데일리 메일·퓨처리즘 기사와 유사하다고 지적하며 “(심재우 특파원 표절 이후) 다른 칼럼들은 멀쩡할까 싶어 두 번째 살펴본 것(김성탁 런던특파원)도 표절이었다”면서 “이런 칼럼들은 또 영어로 번역돼 영문판(Joongang Daily)에 게재된다. 이 아사리판을 혹시 외국인이 볼까 두렵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김성탁 특파원 기사는 내부 조사 결과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다만 이외에도 모든 기사에 대해 내부 검열을 위한 조치를 준비 중”이라는 입장이다. 중앙그룹 관계자는 “데일리 메일과 퓨처리즘의 기사는 ‘와이어드’라는 외신 통신사의 기사에 기반하고 있다. 통신사 기사를 참조해 작성된 기사들”이라면서 “그 기사 자체는 원 콘텐츠가 아니고, 그 기사에서 일부 내용을 참고해 쓴 기사다. 하나의 기사를 그대로 표절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이전의 사건과는 결이 다르다”고 밝혔다.

앞서 심재우 중앙일보 뉴욕특파원은 월스트리트저널의 칼럼을 출처 없이 인용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심재우 특파원이 작성한 칼럼은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과 대동소이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일보는 “(심재우 특파원의 칼럼이)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외신의 상당 부분을 인용한 사실이 확인돼 디지털에서 해당 기사를 삭제했다. 독자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중앙일보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내부 검증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관련기사 ▶ 중앙일보, 월스트리트저널 사설 '베껴쓰기' 했나?)

(관련기사 ▶ 데일리 메일 AI-powered JUDGE created in Estonia will settle small court claims of up to £6,000 to free up professionals to work on bigger and more important ca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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