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에 대한 각종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당초 거론됐던 유력 후보국들 대신에 석유, 에너지 같은 막대한 자원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두 나라, 러시아와 카타르가 각각 2018, 2022년 월드컵 개최국으로 선정됐기 때문입니다. 'FIFA(국제축구연맹)가 돈밖에 모른다' '예상 외의 국가들이 선정돼서 놀랐다'는 반응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두 나라 개최 선정에 대한 후폭풍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유치 신청으로 2022년 월드컵에 관심이 많이 쏠리기는 했지만 함께 발표한 2018년 월드컵 유치 전쟁 역시 대단히 치열했습니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가 다소 앞서 나가는 형국 속에서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이 공개적으로 "공동 개최를 반대한다"고 했음에도 마지막까지 달렸던 네덜란드/벨기에, 스페인/포르투갈, 그리고 상대적으로 처진다고 여겼던 러시아 중에 어떤 후보가 대항마로 나설지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아무래도 유럽 국가들 간의 경쟁이었던 만큼 '축구 종가냐, 공동 개최냐, 이변이냐'에 대한 축구팬들의 관심이 모아졌고, 날이 갈수록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 갔습니다.

그러나 예상 외로 유치 활동 기간 내내 앞서나가는 줄만 알았던 잉글랜드가 1차 투표에서 탈락하고, 러시아가 사상 첫 월드컵 개최권을 따내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윌리엄 왕자, 캐머런 총리, 데이비드 베컴 등이 총출동해 막판 표몰이를 했던 것을 감안하면 잉글랜드의 탈락은 대단히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었던 반면 러시아는 또다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와 '자원 부자' 로만 아브라모비치를 앞세워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해 내며 새로운 스포츠 강국의 위치를 다질 수 있게 됐습니다.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는 이번 월드컵 개최로 동/하계 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 등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를 모두 치른 6번째 나라(이탈리아, 일본, 프랑스, 스웨덴, 독일)가 됐습니다. 구소련 시절이던 1980년 모스크바 하계올림픽을 치른 러시아는 정치적, 경제적인 안정기에 접어든 2000년대 중후반부터 국제 스포츠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는데요. 이미 2013년 모스크바 세계육상선수권을 유치한 데 이어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극적으로 개최권을 따낸 바 있었고, 여기에 최근 소치에 포뮬러원(F1) 개최권을 2014년부터 따내 스포츠 국제 대회 유치에 더욱 탄력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월드컵 개최권까지 획득하며 '스포츠 이벤트 개최 그랜드 슬램'을 이뤘습니다. 2010년대에 치르는 메이저 대회만 무려 4개나 될 만큼 확실한 스포츠 강국의 위치를 다지게 된 큰 의미가 있었던 월드컵 유치였습니다.

당초 잉글랜드에 밀린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러시아는 가즈프롬이라는 거대 에너지 기업의 막대한 자금과 강력한 정부 지원을 앞세워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권에 이어 또 한번 대역전에 성공했습니다. 이미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을 통해서 러시아의 '대반전'을 경험한 바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이번 러시아의 월드컵 유치 성공이 동계올림픽 때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전망을 할 수 있을 텐데요. 당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초고단수 스포츠 외교와 가즈프롬의 로비력으로 아이스링크 하나 없는 소치를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하는 데 엄청난 장점으로 활용한 바 있는 러시아 입장에서는 이번에도 막대한 자금을 쏟고 푸틴 총리를 앞세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활동을 앞세워 FIFA 집행위원들의 마음을 자극시키며 결국 '유치 성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스포츠 이벤트 개최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국토가 넓은 나라로서 구소련의 옛 영광을 재현하고 유럽에서도 자신들의 입지가 막강함을 과시하려는 그들은 기대 이상으로 모든 스포츠 이벤트를 '싹쓸이'하면서 2010년대에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됐습니다.

명문화된 규정은 없지만 대륙별 순환 개최의 관행, 그리고 한 대륙이나 특정 국가에 몰아주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의 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 F1 싹쓸이는 매우 이례적이며 주목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상 첫 개최라는 명분 뿐 아니라 막강한 돈으로 깔끔한 대회를 열 것으로 기대한 유럽파 IOC 위원 또는 FIFA 집행위원들의 입김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게 되는데요. 깨끗하고 건전한 경쟁을 추구하는 올림픽, 월드컵에서 이 같은 '보이지 않는' 로비, 정치력이 스포츠 이벤트 유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조금 개운치 않은 면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사상 첫 개최라는 이유, 그리고 러시아가 아직 확실한 선진국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에 과연 제대로 월드컵을 치러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 비판 여론도 있기는 하지만 일단 개최권을 준 이상 러시아의 능력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러시아도 다양한 스포츠 이벤트 개최를 통해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옛 영광을 되찾고픈 마음이 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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