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인천 원정에서 선두 SK를 상대로 2승 1무를 거뒀다. 이 승리가 더욱 값진 이유는 기아를 상징하던 베테랑들이 아닌, 젊은 선수들이 일군 성과이기 때문이다. 기아에게도 세대교체는 당연한 과제가 되었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홍건희의 성숙해진 선발 투구와 한승택 이틀 연속 대포, 이창진 6년 만에 데뷔 홈런

모든 것이 아름다웠던 인천이었다. 금요일 다섯 시간이 넘게 혈투를 벌인 후 승패를 내지 못한 두 팀은 이틀 연속 극적인 상황을 만들며 왜 그들의 경기가 재미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9회 2사 만루 역전 홈런으로 토요일 경기장을 뜨겁게 달군 기아는 다시 한 번 역전 홈런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기아가 오랜 시간 공들이며 기다리고 있는 홍건희가 올 시즌 처음 선발로 나섰다. 분명 좋은 선발 자원이지만 좀처럼 그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던 홍건희는 군 복무도 끝내고 돌아와 호랑이로서 다시 도전을 시작했다. 올 시즌 처음으로 경기에 나선 홍건희의 공은 보다 묵직해졌다.

KIA 타이거즈 투수 홍건희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번 경기에서도 선취점은 SK의 몫이었다. 전날 경기와 마찬가지로 2회 볼넷과 안타에 이은 최항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얻은 SK이지만 거기까지였다.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홍건희는 김성현을 유격수 땅볼로 유도하며 병살로 이닝을 마쳤다. 이 병살 처리가 이번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였다.

첫 실점 후 병살이 아닌 적시타가 이어졌다면 홍건희는 짧은 이닝을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을 것이다. 자신감 하락에 팀 승패까지 좌우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는 점에서 이 병살타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2회 병살타로 추가 실점 없이 넘어가며 안정적인 피칭을 이어갔다.

SK 선발 문승원에 막혀 제대로 공격을 이끌어내지 못하던 기아는 5회 한승택의 홈런 한 방으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홍건희가 2회 1실점 후 안정적인 피칭을 이어가자 이번에는 타자들이 화답했다. 전날 경기에서 9회 2사 상황에서 역전 만루 홈런으로 분위기 반전을 이끌었던 한승택이 이번 경기에서도 변화를 이끌었다.

동점 홈런을 만든 한승택으로 인해 기아 타자들이 다시 깨어났다. 박찬호의 안타에 이어 1사 후 이번 경기의 히어로가 된 이창진이 역전 투런 홈런을 치며 단박에 3-1로 경기를 뒤집었다. 6년 차 선수인 이창진은 데뷔 후 첫 홈런을 가장 극적인 상황으로 만들어냈다.

14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인천 SK 와이번스와 광주 KIA 타이거즈의 경기. 5회초 KIA 공격 무사 상황에서 KIA 한승택이 좌익수 뒤 홈런을 친 뒤 홈으로 들어와 동료 김민우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진은 롯데에서 프로 데뷔를 했다. 하지만 이내 KT로 트레이드가 된 그는 군 문제를 해결한 후 지난 시즌 기아로 다시 트레이드되었다. 전형적인 저니맨 스타일로 떠돌 수밖에 없었던 이창진이 기회를 잡았다.

그동안 그가 선발 라인업에 올린 것은 2015년 3차례와 2018년 7차례가 전부였다. 기아로 옮긴 후 그나마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 이창진에게 기아는 새로운 도전의 장이었던 듯하다. 기대했던 외국인 타자 해즐베이커가 심각한 타격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가자 이창진에게 기회가 왔다. 원래 포지션은 3루수이지만 그곳에는 이범호가 버티고 있다.

이범호의 후계자로 점 찍힌 최원준은 올 시즌 붙박이 3루수로 출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창진은 해즐베이커 자리인 중견수에 출전하며 존재감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다. 4월 5일 키움과 경기부터 주전으로 나선 그는 꾸준하게 안타를 생산하고 있다.

선발로 나서 홈런 포함해 14개의 안타를 만들어냈다. 시간이 지나며 보다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창진의 성공 시대가 열릴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아직 시즌은 많이 남았고, 그를 상대에서 파악하고 경계하기 시작하면 달라질 수도 있다.

14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인천 SK 와이번스와 광주 KIA 타이거즈의 경기. 5회초 KIA 공격 1사 1루 상황에서 KIA 이창진이 좌중간 홈런을 친 뒤 홈으로 들어와 동료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진짜 경쟁력은 이제부터 시작일 수밖에 없지만, 6년 동안 무명으로 살았던 이창진은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기존 선수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날리고 있는 이창진의 맹활약은 그래서 반갑다.

기아 라인업은 최형우와 이범호를 제외하고는 모두 바뀌었다. 부상과 체력 안배 등을 위해 쉰 주전들도 다수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2군 라인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선수들이 최고의 활약을 보이며 선두 SK를 무너트렸다. 최형우는 최악의 부진으로 1할대 타율로 추락했고, 이범호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은 몸으로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김선빈의 자리를 완벽하게 채워내고 있는 박찬호 등 새로운 세대들이 위기의 기아에 희망이 되고 있다. 단순한 희망을 넘어 이를 통해 세대교체가 기아에서도 빠르게 이어져야 한다는 경종으로 다가온다. 이름만 앞세운 선수 구성의 한계는 마운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흐름을 통해 경쟁력 있는 호랑이로 만드는 것은 이제 벤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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