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보면 모든 영화가 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로맨틱 코미디만큼 뻔한 구조를 가진 장르도 드뭅니다. 감독과 배우가 누구든 간에 로맨틱 코미디라 함은 십중팔구 남녀 주인공이 티격태격합니다. 그러다 무언가 계기가 주어져서 서로 화해하거나 사랑을 이루게 되면서 영화는 끝이 나기 마련이지요.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굉장히 광범위한 범위에서 나눈 로맨틱 코미디의 고정된 구조에 지나지 않긴 합니다. 이 역시 다른 장르의 영화가 다 그렇듯이, 로맨틱 코미디도 눈에 훤히 보이는 과정과 결말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차별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건 시나리오와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시나리오는 전에 없던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고, 연출은 그것을 화면에서 십분 살려야 하며, 배우는 앞선 두 가지에 부합하는 연기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죠. <쩨쩨한 로맨스>는 이 세 가지 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세 번째가 보여주는 힘이 가장 두드러지는 영화입니다.

<쩨쩨한 로맨스>의 주인공 두 사람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정말 보잘 것 없는 남녀입니다. 유명한 화가를 아버지로 둔 정배는 만화작가를 하겠다고 나섰으나 아무런 성과를 이루지 못했고, 다림은 친구 덕에 삼류잡지에 섹스 칼럼을 번역하여 기고하지만 그마저도 짤리는 암담한 청춘입니다. 영화는 이들이 손을 잡고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림과 동시에 선남선녀가 한데 어우러졌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의 작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만 보면 <쩨쩨한 로맨스>도 전개가 어떻게 펼쳐질지 눈에 훤합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반전도 없고, 결말 또한 해피엔딩에서 한 치를 어긋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가 이 영화에 차별화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먼저 <쩨쩨한 로맨스>가 관객의 눈길을 조금 더 끌 수 있는 첫 번째 요인은 소재입니다. 정배와 다림은 한 공모전에 응모하기로 하면서 작업을 시작하는데, 그 공모전이 다름 아닌 성인만화입니다. 이 자체로는 큰 메리트가 보이지 않으나 <쩨쩨한 로맨스>는 이들이 작업하는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겨 영화에 삽입하는 재치를 보여줍니다. 덕분에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 안에 또 하나의 소(小)장르를 보유한 셈이라 자칫 늘어질 수 있는 이야기에 시시각각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종종 애니메이션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는 것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쩨쩨한 로맨스>를 돋보이게 하는 두 번째 요인이자 일등공신은 뭐니뭐니해도 최강희입니다.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 익히 진면목을 보았고 영화 또한 재미있었음에도 저는 여전히 영화배우로서의 최강희가 가진 매력이 미지수였습니다. 하지만 <쩨쩨한 로맨스>를 보면서는 그녀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특정 영화에서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보면 "과연 또 누가 저런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건 굳이 명확한 대안을 떠올려보고자 하는 노력이 아닙니다. 그냥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 자체가 해당 배우에게 제가 보낼 수 있는 찬사인데, <쩨쩨한 로맨스>에서 다림을 연기한 최강희를 보면서 그랬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최강희를 4차원이라고 말하죠? 그 4차원이 가진 특이한 매력이 이번 영화에서 눈이 부시다 못해 멀 지경이 될 만큼 빛을 발합니다. 저로서는 <좋지 아니한가>의 황보라에 필적할 만큼 최강희의 연기가 귀엽게 보였습니다.

최강희가 팔딱팔딱 살아 숨쉬는 기운을 부여하며 극을 이끌어갈 때, 정배 역의 이선균은 철저히 보조하는 선에서 자기 몫을 다하고 있습니다. 분명 <쩨쩨한 로맨스>의 중심에는 정배의 에피소드가 놓여있지만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갈 우려가 있어 그것이 주가 되지는 않도록 분배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선균은 전면에 나설 수 있는 처지도 아니긴 했습니다.

이상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중반부까지 효과적으로 이끌어오던 집중력이 갈등을 고조키시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흐트러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엔딩에서는 진부하다 못해 보기 민망한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점도 치명적인 단점입니다. 아울러 제목이 왜 <쩨쩨한 로맨스>인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글로 배운 로맨스>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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