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장애인 인권단체들이 강원도 산불 관련 지상파 재난방송에 수어통역과 화면해설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았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신청했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장애벽허물기) 등 7개 시민단체는 9일 인권위에 지상파 수어통역 및 화면해설 의무화와 재난 상황에서의 수어통역 인력풀 마련을 촉구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 대상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송통신위원회, 재난방송 주관방송사 KBS를 비롯한 지상파 3사 등이다.

앞서 강원도 산불이 발생한 지난 4일, 지상파를 비롯한 주요 방송사 어느 곳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을 지원하지 않아 사회적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장애인 인권단체의 요구와 여론의 비판이 지속됐지만 방송사에서는 5일 오전이 되어서야 뒤늦게 수어통역이 지원되기 시작했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장애벽허물기) 등 7개 시민단체는 9일 인권위에 지상파 수어통역 및 화면해설 의무화와 재난 상황에서의 수어통역 인력풀 마련을 촉구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사진=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이들은 수어통역이 빠진 재난방송은 '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인권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주현 장애벽허물기 대표는 "방송사들은 '국민의 생명은 소중히 여긴다'면서 장애인은 국민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앞으로 재난 방송에서 수어 통역을 하지 않는 것이나 화면해설은 필요 없을 것으로 방송사가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행위는 없어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철환 장애벽허물기 활동가는 "이번 KBS 재난방송은 화면 자막만 제공이 되어 농인들의 불만을 터뜨렸다"며 미국 연방재난관리청 홈페이지의 수어 브리핑 사례와 비교하기도 했다.

수어통역 지원과 관련한 KBS의 인식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종합저녁뉴스에 수어통역을 지원해달라는 시민사회 요구에 KBS가 사실상 거부 입장을 보인 것에 유감을 표했다. 권 활동가는 "당장 어렵다면 검토하겠다는 답변이라도 돌아올 줄 알았는데, KBS는 고민도 하지 않고 어렵다는 답변을 했다"며 "지상파에서 구현되지도 않는 스마트 수어 방송을 운운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지난 3월 지상파 3사 메인뉴스에 수어통역이 지원돼야 한다며 인권위와 KBS에 관련 의견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KBS는 'TV 화면 제약', 즉 시청권 침해를 이유로 현재 수어방송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 IPTV 등 유료방송을 통한 스마트 수어방송을 이용하거나, UHD 방송이 안착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취지의 답변을 내놔 시민사회 공분을 샀다.

이날 인권위에 제출된 진정서에는 ▲방송사들의 수어통역·자막방송·화면해설 의무 시행과 제공 기준 마련 ▲재난 상황 발생 시 대응 가능한 수어통역 인력풀 마련 ▲방송통신위원회가 장애인방송 의무 시행을 위한 지침 마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홈페이지 통한 수어 브리핑 제공 등의 요구사항이 담겼다.

한편, 방통위는 오늘(10일) 오후 KBS를 비롯한 지상파 3사 재난방송 관계자를 소집해 강원도 산불 관련 재난방송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논의한다. 조속한 시일 내로 재난방송 관련 매뉴얼과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수어통역 지원과 외국인에 대한 정보제공이 미흡한 점을 비롯해 ▲산불 재난방송과 관련한 주관방송사의 역할과 책임 ▲피해·구조 정보보다 화재 중계에 치중하여 이미 산불이 진화된 상황에서 전일 불타는 장면을 반복 방영하여 진화 상황에 대한 국민의 혼선을 초래한 점 등이 중점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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