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숙명여대 총학생회의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 규탄 성명 철회 문제에 대해 몇 명이 의견을 물어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도덕적 검열을 더욱 공고히…”, “숙명여대 내의 여성 네트워크 형성 저해…”와 같은 대목들만 듣고 21세기다운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총학생회가 밝힌 의사결정 과정을 다시 보니 과거 학생운동 내에서 총학생회와 공개학생정치조직 간의 관계를 수십 장짜리 문건을 동원해 가며 논한 것과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도 같다. 촛불대혁명과 함께 열린 새 시대에 구닥다리 같은 얘기를 다시 꺼내긴 좀 그렇고, 현대 정치가 처한 전형적 문제가 다시 반복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적어보기로 했다.

아마 인터넷-호사가들은 숙명여대 학생들을 꾸짖기에 바쁠 것이다. 요즘 소셜미디어를 이용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다들 폐쇄적 구조 안에서 자기 의견을 밝히는 걸 선호하는 추세이니 인터넷-여론 파악을 정확하게 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하여간 평소 정치 뉴스 좀 본다 하는 사람들이 학생들을 꾸짖는 논리는 크게 두 가지일 것 같다. 첫째는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5.18 망언을 한 김순례 의원을 결과적으로 두둔하게 된 것은 오늘날 젊은이들이 갖는 비뚤어진 역사 인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규탄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 사건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여성들의 어떤 미숙함을 역시나 드러내었다는 식의 주장이다. 이 논리를 뒤집는 주장들이 대개 ‘반론’으로 제기되지 않을까 싶다.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따지고 잘못한 이를 꾸짖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또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라는 삶의 원칙을 제기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다. 이런 소중한 제언을 옷깃을 여미며 받아들이는 우리의 겸손한 태도 역시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을 교훈으로 해서 반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열정적인 인터넷-활동들에 더해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느냐를 함께 따져보는 일이 병행되어야 한다.

숙명여대 총학생회의 성명 철회는 615명의 재학생들이 다양한 논리를 들어 총학생회의 성명을 반대한 것에서 시작됐다. 따라서 총학생회는 단과대학별로 자체적인 여론 파악에 나섰고 재학생들의 충분한 찬성을 얻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러 성명을 철회한 것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쟁점은 총학생회의 모든 활동은 반드시 재학생 다수의 동의 여론을 전제로 해야 하느냐는 것인데, 사실 우리는 이 질문 자체보다는 그 배경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것은 요컨대 왜 총학생회가 스스로 이 질문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느냐는 것이다.

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김순례 의원이 두 손을 번쩍 들고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떤 기구나 집단이 자신들이 대표해야 할 이들을 제대로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대 정치의 클리셰이다. 이 속에서 ‘기구’와 ‘집단’이 불성실하게 행동하는 이유는 자기들만을 위한 어떤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구도는 특히 정치를 소재로 한 거의 대다수의 논설에서 드러난다. 이 논설들 속에서 정치인은 끝없이 국민을 배반한다. 정치인을 비판하는 또 다른 정치인은 국민의 뜻을 성실히 대변하는 존재를 자임하지만 권력을 잡으면 ‘내로남불’의 쳇바퀴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지옥에 빠진다.

아니면 이런 주장은 어떤가? 386세대는 젊은 시절 별다른 노력도 없이 학생운동을 한답시고 목소리를 높이고 이런 운동권 경력을 팔아 기성 정치에 진입해 부동산 투자로 배를 불리며 젊은 세대를 향한 꼰대질만 반복하고 있다! 요즘은 좌우를 막론하고 누구나 이런 얘길 한다. 물론 국민의 뜻을 참칭한 어떤 정치인의 ‘내로남불’은 진실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386세대에 대한 전형적 비판 논리도 역시 진실의 일단을 드러낸 것일 수 있다. 가령 이른바 ‘진보 언론’ 출신의 청와대 대변인은 어떻게 했는가? 그러나 그것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문제를 전부 설명할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오늘날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는 정치관은 정치인이 국민의 뜻을 제대로 대변하기만 하면 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이 믿음대로 실제로 국민의 뜻을 ‘제대로’ 대변했을 때 정치가 겪게 되는 난국을 그대로 보여줬다. 국민의 무관심을 성실하게 대변한다면 정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총학생회의 구성원 대다수가 이 점을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 총학생회장이 소셜미디어에 남겼다는 글을 봐도 그렇다. 이 글은 이 사태에 있어서 총학생회가 무엇을 했어야 하는지에 대한 거의 ‘정답’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총학생회장 개인이 아니라) 총학생회가 이를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인이 민중의 뜻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처럼, 총학생회가 학생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울 수 있다는 대중적 경계심을 거스르지 못한 게 아닐까? 즉, “정치로부터 이용당할 수 있다”는 감각이 이미 모두에게 내면화된 상태에서 구조적 자기검열이 작동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는 이야기다. 남에게 강제할 원칙은 자기 자신에게도 강제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진정성이 없는 것이므로 무슨 꼴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란 논리는 냉소주의를 떠받치는 주요한 축의 하나이다.

총학생회가 이 감각 앞에서 무력화되면서 정당성을 얻게 된 것은 자기 이익의 추구, 즉 각자도생의 논리이다. 대의명분은 전부 거짓이니 각자 살아남기라도 하자는 것이다. 앞서 성명 철회를 요구한 615명의 학생들이 내놓은 주장의 핵심이 이것이다. 총학생회가 내세우는 김순례 의원 비판의 대의명분은 “개인의 정치적 행보”를 위한 사익추구에 불과하며, 오히려 이 때문에 학교의 “대외적 명예가 실추”되고 “여성을 향한 도덕적 검열을 공고히” 하며 “여성 네트워크 형성을 저해”함으로써 재학생들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국민을 제대로 대변하지 않는 기성 정치인을 향한 우리 대다수가 갖고 있는 반감과 정확히 일치한다. 앞서 386을 향한 냉소적 논리와 함께 이런 인식은 암호화폐,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부동산 급등, 영어유치원 등의 논란에서 거의 동일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보통사람’을 자처하며 “나 이 사람 믿어주세요”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정치가 스스로의 존재를 대의명분으로 설명하고 증명하며 이를 통해 대중을 설득해나가는 정공법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이 점은 숙명여대 총학생회장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많이 말을 걸고 더 가까이 다가가야겠다”며 “나는 학생대표로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 것인가, 설득의 언어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진다”고 썼다.

우리가 관철해야 할 대의명분을 ‘민주주의’로 본다면 이 사태의 본질에 다다를 수 있다. 정치인 자신이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능력있는 인물이라는 걸 어필하는 것만으로는 답이 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이념대로 세계를 만들고 통제할 권한을 더 많은 사람들의 손에 맡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세상만사를 국민의 직접투표로 해결하자거나,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 설치를 통해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 표출이 가능하게 하자는 도식적인 해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드는 대의를 자기 자신의 일로 여기도록 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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