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어느 정치분석가가 말했다. "재보궐선거까지 치렀으니 이제 여의도 갈등의 수위를 낮춰야 한다, 극한 대립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피로를 느끼고 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의도는 당분간 여전히 답없는 티격태격을 계속할 것 같다. 국민의 겪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싸움이라면 얼마든지 해도 좋지만 그게 아니라는 게 문제다. 심지어 이제는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조차 불분명해지고 있다.

먼저 ‘문제’가 될 일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국회 청문보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상태에서 8일 강행할 예정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두 후보자를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국정을 포기하는 선언을 하는 것이라며 극한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두 후보자에 대한 임명 반대 입장을 가지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거다. 자유한국당은 김연철 후보자의 경우 북한에 편향적이고 인터넷 공간 등에서 극단적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박영선 후보자의 경우엔 정치자금법 등 이런 저런 의혹이 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이유들로 극단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다.

박영선 후보자의 경우,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성실하게 해명할 필요가 있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와 함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인사청문회가, 언론의 말을 빌자면 ‘결정적 한 방’이 없는 상태로 끝났는데 이후에 이런 저런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 등을 제기하는 것은 장관 임명을 대통령이 포기해야 할 결정적 이유로 비춰지진 않는다는 것이다. 김연철 후보자의 경우는 결국 정책적 노선이 문제라는 것인데 이 또한 장관이 되지 말아야 할 결정적 사유로 보긴 쉽지 않다.

보수세력이 ‘코드인사’를 말하는 것은 이런 이유로는 극단적 행보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이나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이 만든 개념을 요약하면 이렇다. 김연철, 박영선 후보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코드인사’들이며 이들의 임명을 강행하기 위해 ‘코드인사’가 아닌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와 조동호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를 일부러 낙마시켰다는 것이다. 즉, 이런 술수에는 넘어갈 수 없다는 얘기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소속 자유한국당 간사인 이종배 의원이 7일 국회 정론관에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남편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첫째로 ‘코드인사’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코드인사’의 어원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코드’가 맞아야 일을 같이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인데, 임명권자가 자기 권한 활용의 방침을 밝힌 것 뿐이다. 정권의 철학을 잘 관철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할 수도 있고, 의견이 다른 세력의 주장을 수용하기 위한 인사를 하겠다고 말할 수도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도 보수언론은 ‘코드인사’ 네 글자만 가지고 참여정부가 편협한 인식에 빠져 해서는 안 될 인사를 한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다. 그러나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자유한국당의 비대위원장까지 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이런 주장은 다분히 과장된 것이었다.

현재 문재인 정권의 인사도 일부 ‘쏠림’이 있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피플파워’를 말하는 정부의 주요 직책을 맡기에 적합한 것인지 의문인 경우도 많이 있다. 이런 상황을 뭉뚱그려 마치 우리 사회의 모든 주요 포스트에 ‘운동권 코드인사’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사실과 어긋난다.

둘째로 ‘코드인사’가 뭔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김연철, 박영선 후보자를 과연 여기에 들어맞는 인물로 볼 것인지도 의문이다. 정권 초 보수세력은 운동권, 전대협, 86그룹 등의 키워드를 앞의 ‘코드인사’와 같은 용례로 써왔다. 이 기준으로 보면 대북정책이라는 ‘코드’를 분명히 맞추고 있는 김연철 후보자는 그렇다치더라도 박영선 후보자가 과연 ‘코드인사’인지 의문이다. 박영선 후보자는 과거 ‘비문’으로 분류됐고 경제정책에 있어서도 사실상의 중도화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 기준이라면 자유한국당으로선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해야 할 인사가 아닐까?

자유한국당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는 동해안 산불을 대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러한 국가적 재난 사태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며 적극적인 지원 필요성을 나서서 제기하고 당 차원의 이재민 지원책 등을 마련하고 실천했다면 어땠을까? 실제 자유한국당이 보여준 것은 이런 게 아니라 형식적인 보고를 받고, 우리 대표의 지도로 산불이 금방 진화됐노라 자화자찬하며, 그 와중에 존재감 획득을 위해 “촛불정부인 줄 알았더니 산불정부”라는 말이나 만드는 행태이다.

이런 행위에는 보수정권이 세월호 참사 때 그랬던 것처럼 이 정권도 재난에 있어서 무력한 것은 똑같다는 구도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실려 있다. 그런데 이런 구도가 실제로 만드는 정치적 효과는 어떤 것일까?

여의도 주변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바른미래당의 진로에 관한 것이다. 바른미래당은 지난주 손학규 대표를 향해 부적절한 발언 등을 했고 인터넷 방송 등에서 해당행위에 해당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이언주 의원에게 당원권 정지의 중징계를 내렸다. 국민의당 출신들과 바른정당 출신들은 이언주 의원 징계와 손학규 대표 거취, 보궐선거 책임론 등을 둘러싸고 서로 입씨름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깨끗하게 갈라서자”는 말까지 나왔다. 이걸 두고 안철수 전 의원이 6월 경에 복귀해 ‘제2의 국민의당’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 사람도 있다.

이런 정계개편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민주평화당도 분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시 1석을 추가한 정의당과의 공동교섭단체 구성 논의를 놓고 당내 이견을 정리하지 못하는 상태인 것이다. 정동영 대표 등 공동교섭단체에 찬성하는 쪽은 진보적 노선의 필요성과 교섭단체라는 당장의 쓰임새를 중심에 놓고 논리를 세우고 있고 이에 반대하는 쪽은 ‘제3지대’나 “철학이 다르다”는 주장 등을 내놓고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자유한국당의 극한 행보는 어떤 방식으로든 정계개편의 가능성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권과 각을 이루는 야권의 가장 중요한 중심축이라는 포지션을 놓지 않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 미리 ‘영역표시’를 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거다. 이런 계산이라면 자유한국당이 이 정부를 비판하기 위한 온갖 기상천외한 주장을 내놓는 상황은 내년 총선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결국 정권에 대한 찬반구도로 양당제적 원심력 속에서 총선을 치르겠다는 것이다.

이런 ‘찬반구도’의 형성은 자유한국당 뿐만 아니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슬슬 시작되는 분위기인 것 같다. 보궐선거 이후 당청이 균열을 드러낼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탁현민 전 행정관의 더불어민주당 영입설이 나오는 게 이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포지션’의 정치보다는 정치가 해야 할 일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을 이제라도 보여주는 게 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선거는 결국 중도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라고도 하는데, 각자가 대안이라는 점을 이들에게 설득하는 게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에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서로 비판과 견제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너무 큰 바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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