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재난방송주관방송사인 KBS가 강원도 산불 관련 특보체제 전환에 늦었다는 내부 비판이 나온다. 아울러 이번 재난보도에서 수어방송 등 장애인 방송을 외면한 방송사들에 시민사회 비판이 제기된다. KBS를 비롯한 방송사들의 재난보도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내·외부 목소리가 높다.

"재난방송주관방송사 KBS, 또 한발 늦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지난 5일 성명을 내어 "또 한발 늦었다. 초대형 산불이 급속도로 번지며 국민의 생명이 백척간두에 놓여 있을 때 KBS는 정규편성 프로그램을 끊고 곧바로 특보체제로 전환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앞서 KBS는 4일 강원도 고성과 속초 일대 일어난 산불에 밤 11시 25분에 들어서야 특보체제로 전환했다. KBS는 9시 뉴스에서 화재 현장을 연결한 뒤 밤 10시 55분부터 11시 5분까지 첫 특보를 했다. 이후 정규프로그램 '오늘밤 김제동'을 진행하면서 특보체제 전환이 늦어졌다.

강원도 일대 산불이 발생했던 지난 4일 KBS '오늘밤 김제동'과 이어진 KBS '뉴스특보' 방송화면 갈무리.

언론노조 KBS본부는 "불이 시작된 것은 저녁 7시 17분쯤이다. 밤 9시에 이미 속초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지며 도시가 불길에 휩싸이기 일보 직전의 상황까지 악화됐다"며 "더 이상 지체하고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는 말이다. 방송을 통한 신속한 위기 전파와 안내가 절박한 순간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언론노조 KBS본부는 "뉴스전문 채널들은 몇시간 전부터 긴박하게 현지 상황을 중계하고 있었고, 다른 지상파 방송도 먼저 정규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특보체제로 전환한 상황에서 KBS의 이같은 대응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안일했다"고 질타했다. 소방당국이 밤 9시 44분부터 화재비상 단계를 최고단계인 3단계까지 발령했지만 특보체제 전환이 정규프로그램에 밀려 늦어졌다는 지적이다. 보도전문채널 YTN과 연합뉴스TV는 밤 10시대에 특보체제로 전환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재난방송 시스템과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 사측에 긴급 공정방송위원회 개최를 요구했다. 재난방송주관방송사로서 재난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보도·편성 책임자들의 인식이 안일한 것은 아닌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KBS 측은 재난방송 매뉴얼대로 특보 체제를 갖추고, 피해 규모와 확산 속도 등에 따라 단계별로 재난방송 수준을 확대해나가는 등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KBS는 5일 낸 입장에서 밤 8시 53분 춘천총국과 강릉방송국 등을 통해 재난 자막 스크롤을 방송했고, '뉴스9'을 통해 9시 10분 기자연결을 시작으로 3차례에 걸쳐 신속하게 현장연결을 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KBS는 10시 53분 첫 특보는 지상파 방송사 중 가장 빨랐고, '오늘밤 김제동'의 경우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만큼 방송 중간에 속보와 특보를 이어갈 수 있어 방송을 개시했다고 해명했다.

"무조건 해야하는 장애인 재난방송방송사들이 장애인들의 안전을 내팽개쳤다"

화재가 발생한 4일, 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을 지원한 방송사는 한 곳도 없었다. 장애인 단체는 지상파 재난속보에 수어통역을 지원해달라 요청했지만 지상파 3사의 수어방송은 5일 오전이 되어서야 시작됐다. KBS는 오전 8시, SBS는 오전 10시, MBC는 정오부터 수어통역을 지원했다. 종합편성채널 4사는 오전 7시대에, 보도전문채널 YTN은 오전 11시에 수어방송을 실시했고, 연합뉴스TV는 오후 3시까지도 수어방송이 확인되지 않았다. 화재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후 12시간을 넘겨서야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방송이 지원된 것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5일 논평을 내어 "4일 부터 시작된 산불 관련 보도를 하면서 재난주관방송사인 KBS를 비롯한 방송사들이 수어 방송을 매우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장애인들의 안전을 내팽개치는 재난 수준의 재난방송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앞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화재 발생 당일 SNS에 KBS와 MBC 등 지상파 재난 속보에 수어통역을 지원해 달라는 글을 올렸다. 전장연은 5일 새벽 1시에 "해당 지역에 있는 분들이 대피를 하거나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다. 그중에는 청각장애인 분도 있을 것"이라며 재차 수어방송을 촉구했지만 수어방송은 그날 아침이 되어서야 시작됐다.

화재가 발생한 4일, 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을 지원한 방송사는 한 곳도 없었다. 장애인 단체는 지상파 재난속보에 수어통역을 지원해달라 요청했지만 지상파 3사의 수어통역은 5일 오전이 되어서야 시작됐다. KBS는 오전 8시, SBS는 오전 10시, MBC는 정오부터 수어통역을 지원했다. (사진=KBS '뉴스특보' 4~5일 방송화면 갈무리)

민언련은 방송법상 재난 발생시 장애인 방송은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송법 및 동법 시행령에는 방송사업자의 장애인 방송 의무가 적시돼 있다. 방송사의 제작여건 등을 고려해 일정비율 안에서 장애인 방송을 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시행령은 의무편성 비율 안에 포함되지 않는 일종의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그 첫번째가 방송통신발전기본법에 따른 '재난방송'이다. 재난방송 시 장애인 방송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지적이다.

민언련은 "모든 방송사는 재난방송에서 장애인 방송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에도 재난주관방송사인 KBS를 비롯한 방송사들이 장애인들의 안전을 내팽개치는 재난 수준의 재난방송을 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민언련은 "재난주관방송사인 KBS를 비롯해 국민의 재산이자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는 지상파 3사의 이런 뒤늦은 대응을 실수라고 보지 않는다"며 시민사회단체의 KBS '뉴스9' 수어통역 지원 요청이 거절당한 사례를 언급했다.

최근 KBS는 이들 시민사회단체의 요청에 TV화면의 제약성 등을 이유로 현재 종합저녁뉴스에 수어방송을 실시할 수 없다는 답을 내놓은 바 있다. "평소 장애인 등을 위한 방송서비스를 시청자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보통의 서비스로 인식하지 않고, 정부 예산이나 기금을 통한 지원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예외적인 서비스로 인식하고 있기에 이번 같은 재난 상황에서 법에서 정한, 당연히 해야 하는 수어 통역 등의 지원을 떠올릴 수 없었던 것"이라는 게 민언련의 지적이다.

민언련은 장애인 방송 의무편성 비율은 '최소' 목표일 뿐 방송사가 추구해야 할 '최대'목표가 아니라며 장애인 방송 접근권에 대한 방송사들의 인식 재정비를 촉구했다. 아울러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에는 이번처럼 방송사들이 재난방송에서 수어방송 지원 등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경우 방송 재허가·재승인 평가 시 페널티를 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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