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민주노총의 탄력근로제 확대 반대 집회와 관련해 민주노총 조합원에 의해 MBN 촬영기자가 발목을 접지르고, TV조선 기자가 밀려 넘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MBN·TV조선 기자협회를 비롯, 방송기자연합회, 한국기자협회 등에서 민주노총에 항의하는 성명을 잇따라 발표했다. 특정언론사에 대한 취재거부가 언론인에 대한 폭행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금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이다.

취재기자 폭행은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협회 등이 폭행 사태에 유감을 표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에 민주노총 측도 "일어나선 안될 일이 벌어졌다.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하지만 왜 이 같은 사태가 반복해서 발생하는지에 대해 언론계 역시 따져볼 부분이 적지 않다. 민주노총의 취재거부를 유발한 특정 언론의 보도태도는 무엇이었는지 돌아보지 않고 일방적인 유감입장만을 표명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저널리즘의 원칙 측면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4월 3일자 MBN '뉴스8', 4월 4일자 TV조선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지난 3일 민주노총은 국회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논의에 항의하며 환경노동위원회 회의를 참관하기 위해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과 경찰 간 대치가 격화됐고, 현장을 취재 중이던 MBN 촬영기자가 민주노총 조합원에 의해 발목을 접지르는 부상을 입었다. TV조선 기자에 대한 폭행은 경찰서에서 발생했다. 집회 과정에서 김명환 위원장 등 민주노총 조합원 20여명이 경찰에 연행됐고, TV조선 기자는 김 위원장에게 “집회가 과격했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조합원 3명이 취재영상 삭제를 요구하며 기자를 밀었고, 기자는 넘어졌다. MBN 기자와 TV조선 기자는 전치 2주 판정을 받고 경찰에 폭행 신고를 접수했다.

전국언론노조 MBN지부, MBN·TV조선 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기자협회 등에서 잇따라 민주노총에 강력히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언론노조 MBN지부는 민주노총에 가해자에 대한 법적 조치 및 집회 현장에서의 취재 자유 보장 등 적극적 조치를 촉구했다. MBN 기자협회와 TV조선 기자협회는 그동안 민주노총의 취재거부와 집회 현장에서의 위협이 적지 않았다며 취재거부는 취재원의 권리로서 존중하지만, 폭행은 금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국 59개 방송사, 3천 여명의 방송기자들이 소속된 방송기자연합회는 한 발 더 나아가 민주노총을 '과거 군부독재 하수인'에 비유했다. 방송기자연합회는 성명에서 "박정희 독재시절, 동아투위 선배들이 발표한 자유언론실천선언의 결의사항은 '언론인을 불법 연행 폭행하지 말라'였다"며 "수적 우세를 이용해 집회를 취재 중인 기자를 폭행한다면 과거 군부독재의 하수인들과 다를 게 무어란 말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전국 신문·방송·통신사 소속 현직 기자 1만 여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한국기자협회도 “취재기자를 폭행한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며 “헌법에 의해 언론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단지 불편한 관계, 다른 관점의 보도를 이유로 취재를 방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기자협회는 이번 민주노총 일부 조합원들의 취재기자 폭행에 유감을 표명하며 기자들에 대한 폭행에 대해 강력히 대처할 것을 밝힌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이들의 비판처럼 취재기자에 대한 폭행은 정당화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MBN·TV조선 기자협회의 취재거부 권리를 존중한다는 입장 정도를 제외하면 이들의 비판 성명에서 사태발생의 근본 원인, 즉 특정언론에 대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분노가 어디에서 오는지 짚어보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기자협회가 언급하고 있는 '다른 관점의 보도'는 무엇이기에 이 같은 상황이 반복해서 발생하는 것일까.

4월 3일자 MBN '뉴스8', 4월 4일자 TV조선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사태가 발생한 3일 MBN 종합메인뉴스 '뉴스8'의 관련 리포트는 민주노총과 특정매체 간 갈등의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날 MBN은 민주노총의 탄력근로제 확대 반대 집회와 관련해 총 4건의 리포트를 보도했다. 우선 민주노총의 시위를 '폭력시위'로 규정한 리포트가 이 중 첫머리에 자리했다. 민주노총 집회 현장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장면들과 이에 대한 해설,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경찰 연행 내용이 대부분이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면 주 52시간이 무력화된다는 입장이다'라는 문구가 민주노총 입장의 전부다.

이어 국회 환노위에서 이뤄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논의가 합의에 실패했다는 '단신' 뉴스가 전해진다. 남은 두 꼭지는 "민주노총 집회 참가자들의 폭력적인 행동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유달리 민주노총에서 폭력사고가 많이 난다"는 앵커멘트와 함께 민주노총 소속 MBN기자 폭행사태와 MBN노조·기자협회의 강력 항의 소식으로 채워졌다.

이 날 MBN 뉴스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대한 사회적 논의 층위와 맥락, 쟁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국회 환노위 합의 불발 소식을 전하면서도 여야의 입장차이마저 전하지 않았다. '민주노총의 폭력성'으로 점철된 보도였다.

같은 날 TV조선 종합메인뉴스 '뉴스9'도 <국회 담장 부순 민노총…김명환 위원장 연행>리포트에서 "민주노총은 이렇게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며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며 조합원 경찰 연행 소식을 전했다. MBN 보도와의 차이점은 조합원 연행에 대한 민주노총 측의 반응과 탄력근로제 확대에 대한 여야의 입장을 짧게나마 소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행된 조합원들이 석방된 4일, TV조선은 석방 소식을 전하며 "민주노총이 법 위에 군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고 보도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발언을 인용한 것이었다. '민주노총 공화국', '민주노총의 국정농단' 등의 발언 인용이 이어졌다. 뒤이어 TV조선 기자에 대한 폭행사태와 한국기자협회의 비판 성명 소식도 함께 전했다. 같은 날 MBN 역시 '민주노총 공화국'이라는 한국당 발언을 제목으로 뽑아 보도했다.

민주노총은 조선·중앙·동아·문화일보, 매일경제, TV조선, 채널A, MBN 등 8개 매체에 취재제한을 두고 있다. 보수·경제 매체다. 각 사별로 짧게는 7년, 길게는 20년째 취재제한이 지속된 상태다. 취재에 응한다 한들 이들 언론이 헌법상 노동3권을 보장하지 않고, 정해진 논조로 민주노총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언론노조 MBN지부는 "지부는 그간 종편 출범 이후 민주노총이 MBN에 대해 취한 취재거부 조치를 풀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다해왔다"며 "같은 노동자로서 동지의식을 가지고 각종 집회와 기자회견에 적극 참여했고, 민주노총 측에도 여러 차례 대화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또 다시 이런 불행한 사태가 재발한 것"이라고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MBN지부의 '백방의 노력'이 취재거부의 근본원인이 되는 MBN 보도에도 미쳤는지 의문이다.

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번 폭행 사태와 특정 매체들의 보도태도에 대해 "기자분들에 대한 폭력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보수·경제매체 중심으로 민주노총의 폭력성 문제를 얘기하는데, 어떤 집회와 시위를 하건 집회시위를 하는 이유나 주장을 담는 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노린다. 이 같은 보도행태에 대해서는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보수매체는 노동시간과 최저임금 문제에 대해 '싼 임금, 장시간 노동'을 장려하는 식으로 보도하고, 경제매체는 더 나아가 노골적으로 재계의 입장을 대변한다"며 "민주노총 주장의 합당함이나 그 주장의 내용을 싣는 게 아니라 답을 정해놓고 묻는 행태가 있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민주노총은 향후 집회현장에서 집회 시작 전과 중간에 공지를 통해 취재제한 매체들에 양해를 구하고, 기자들에 대한 폭행금지 안내를 실시할 방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의 변화가 없다면 특정매체들에 대한 민주노총의 취재제한과 집회 참가자들의 거부감이 해소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번 사태와 같은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성찰과 노력도 동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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