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궐선거가 끝났다. 창원성산의 경우 막판까지 혼전을 거듭해 일부 언론은 오보를 내기도 했다. 그만큼 예측 불허의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다는 뜻이다. 반면 통영고성은 기대보다 싱겁게 승부가 갈렸다. 이례적으로 여당 후보의 지지율이 높게 나온 중앙일보 여론조사에 시선을 빼앗긴 탓이 있지 않나 한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일치한다. 정부여당에는 경고를, 보수야당에는 두고 보겠다는 신호를 줬다는 것이다. ‘절묘한 국민의 선택’이라는 상투적이지만 정확한 표현도 다시 등장했다. 민심은 천심이라고도 하는데, 사실 천심이란 사람이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천심인 것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 결과에서 어떤 교훈을 얻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를 현실 정치 세력들이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 결과는 부산경남 지역 민심의 향배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3당합당 이후 보수정치의 아성이었던 부산경남 지역은 2010년 이후 민주당 계열 정치세력으로 무게중심으로 조금씩 옮겨 오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국정농단으로 인한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지난 지방선거 때 여당이 부산경남 지역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은 이 덕분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운데)가 2일 오후 경남 창원 성산구 성원주상가 삼거리에서 4·3 국회의원 보궐선거 정의당 창원성산 여영국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왼쪽부터 여영국 후보, 이 대표, 심상정 의원. (연합뉴스)

그런데 이번 보궐선거 결과는 부산경남의 민심이 다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물론 과거 ‘무투표 당선’의 드문 기록을 세운 통영고성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30% 이상 득표한 것은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성과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국정농단과 탄핵이라는 ‘천지개벽’을 거친 이후의 여론 추이를 중심에 놓고 선거결과를 평가해야 한다. 지역차원의 구도에서 보면 악재는 자유한국당에 더 많았다. 통영고성에 한정해 말하자면 ’돈봉투’ 논란이 제기 되기도 했고 보수야당 내의 공천 잡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당 후보는 인구가 많은 통영 출신인데 비해 보수야당 후보는 고성 출신이었다는 점 역시 여당에 유리한 요인이다. 이런 상황에 여당 지도부가 총출동하고 예산폭탄론을 그야말로 폭탄처럼 퍼부었으니 효과가 없을 수가 없었던 측면도 있다.

여기에 창원성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단일화를 한 정의당 후보가 피말리는 접전 끝에 간신히 승리한 것은 어떤 희망보다는 또다른 위기감을 갖게 한다. 일각에서는 창원성산에 여당 지도부가 등장하면서 정권심판론 구도의 부정적 영향을 정의당 후보가 받게 된 것 아니겠느냐는 평가를 내놓는다. 물론 이는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한 상황에선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당의 집중유세가 없었는데 결과가 다르지 않았다면 여당이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부진의 이유로 거론 됐을 수도 있다.

취임 초 80%에 이르던 대통령 지지율이 정권 마지막 날까지 유지되리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권에 대한 지지가 ‘현실화’되는 국면에서 원래 보수정권 지지세가 강했던 영남지역 여론부터 싸늘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당 입장에선 내년 총선에 부산경남에서의 성과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결과를 외면해선 안 되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중도층 이탈을 가속화 시킨 요인이 무엇인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지역정치 구도에서는 야당에 악재가 있었더라도 중앙정치 구도에선 여당에 악재가 이어졌다. 더욱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장관 후보자들의 문제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같은 문제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욱 곤혹스러운 점은 정부여당 입장에서 내년 총선까지 이르는 길은 호재보다 악재로 채워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당장 다음 달이 되면 보수세력은 또다시 세금폭탄론을 꺼내들 것이다. ‘집 부자’들의 사례를 열거하며 부동산 시장 침체로 집을 팔 수도 없게 만들어 놓고 보유세 폭탄을 안기고 있다는 식의 불만이 보수언론 지면을 점령할 것이다.

여기에 자영업이 붕괴하는 상황에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이 부담이 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하반기가 되면 반도체 위기론이나 중국발 침체론 등과 함께 성장률 문제를 놓고 보수세력의 공세가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지금도 소극적인 태도의 관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몸을 사리며 정권이 어떤 정책을 추진하든 ‘현상유지’의 틀 안에 가둬 놓는 마법을 선보일 것이다.

그나마 청와대가 중심이 돼서 성과를 낼 수 있는 대목이 대북정책 관련인데 이 대목도 하노이 정상회담의 실패 이후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은 상황이다. 북미회담 관련 협상이 재개된다고 해도 결국 그 끝에 있는 것은 ‘미진한 합의’ 또는 ‘노 딜’인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이 ‘개인기’로 양측 정상 사이를 중재하며 서로 신뢰를 쌓도록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필요한데 이 대목에 있어서도 시간이 길어질수록 중재의 동력은 유실돼 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여당 입장에선 선거 결과를 놓고 뭔가 변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해도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보여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인적쇄신 등의 이벤트를 감행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에 재정을 투입하고 생색(?)을 내는 것 정도가 남은 선택지다.

그러나 선후가 뒤바뀌면 오히려 함정에 빠지는 사태를 맞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 결과를 회초리로 생각하고 변하는 모습을 보여야 총선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주문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로 변화가 필요하기 떄문에 변화를 추진하는 것과 단기적 성과를 위해 단지 그런 모습을 보이자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내부적 차원에서라도 검토를 해봤으면 한다. 이 정권이 꼭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지금까지 그것을 위해 어떤 희생을 치러왔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정리해보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개혁의제를 중심으로 한 정국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 끌고 갈 방안을 도출해내야 한다. “패배가 아니라 비긴 것”이라는 자기 기만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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