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BBC 한국 특파원 로라 비커 기자가 트위터에 올린 “한국 언론은 제 기사를 공정하게 번역해주세요”라는 글이 크게 화제가 되었었다. 자신이 쓴 기사의 인용을 마치 기자 본인의 말인 것처럼 왜곡했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따옴표 저널리즘에 깊이 빠진 한국 언론의 또 다른 문제는 외신을 인용할 때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독재정권에 의해 언론이 통제 당하던 시절의 외신은 한줄기 빛이 될 때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신뢰도가 아무리 낮다고 하더라도 현재 한국에 대해서 굳이 외신의 입을 빌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이 외신을 인용하는 일은 빈번하고, 그에 따른 아전인수 격 해석과 왜곡은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 J>

<저널리즘 토크쇼 J> 패널 정준희 교수는 이에 대해서 한국 언론의 사대주의와 콤플렉스의 위험성을 경계했다. 외신이 다 옳은 것도 아니거니와 특정 외신의 매체를 밝히지 않고 뭉뚱그려 ‘외신’이 그랬다고 기사를 생산하는 한국 언론의 행태에 대한 비판이었다. 외신이 다 옳은 것도 아니고, 더 이상 외신에 기대 국내 문제를 바라볼 이유도 없다.

팩트와 달리 해석은 외신마다 다를 수 있으며, 다양한 해석 중에 어느 것 하나를 마치 수천, 수만의 외신의 공통된 시각인 양 보도하는 것은 잘못 여부를 따지기 전에 부끄러운 행위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계 유수의 매체들이라고 해도 그들의 보도를 무조건 믿어야 할 이유는 없는 까닭이다.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 J>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국 언론들이 외신을 맹신하는 태도는 그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 큰 것이 아니냐는 정준희 교수의 지적은 충분히 귀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그런 인정욕구는 사대주의에 기인한 것이고, 그 배경에는 콤플렉스가 작동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종합적인 이유의 저변에는 외신의 권위를 이용한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심이 없을 수는 없다.

또한 정준희 교수는 한국 언론이 외신을 인용하는 이유로 외신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들었다. 늘 기사로 넘치는 포털에서 본문을 다 읽기보다는 제목만 보고 마는 한국의 뉴스 소비성향으로 비추어볼 때, 한국 언론이 인용하는 외신을 찾아서 확인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때문에 이를 인용하며 조금만 방심해도 원 기사가 담고 있는 의미를 다르게 보도하는 일은 손쉬운 작업이 된다.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 J>

물론 외신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도 없지는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해외 순방 소식은 대부분 외신을 뒤져보기 전에는 접하기 어렵다. 대통령 전용기로 많은 기자들이 따라다니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대통령의 외교성과를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혹시라도 부정적인 일이 생기면 그때서야 동행한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존재감이 빛나기 시작할 뿐이다.

지금은 사라진 ‘국산품애용’이라는 구호를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다. 이 구호가 사라진 이유는 국내 생산품이 대부분 수입품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물 건너온’ 것들의 전성시대는 진작에 막을 내린 것이다. 언론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여러 의미에서 이상할 수밖에 없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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