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거리의 만찬>이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 윤지오 씨를 만났다. 유일한 증언자이지만 윤지오 씨의 말에 의하면 그는 ‘장자연 사건’을 가장 많이 아는 목격자는 아니다. 그보다 훨씬 많이 그리고 정확히 알고 있을 목격자가 적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윤지오 씨는 ‘유일한 증언자’이다. 사건 당시 21살의 나이로는 감당하기 힘든 많은 위협과 공포와 싸워온 윤지오 씨의 말을 조용히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윤지오 씨의 증언에 따르면, 경찰차를 신호 위반까지 하며 쫓던 기자는 정작 기사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과연 그것이 취재였는지 아니면 감시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런 미행을 당하는 증언자에게는 그 자체로 위협이고, 공포일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거리의 만찬>은 윤지오 씨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출연자들과 인사를 나눌 때 “방家 방家”라는 자막을 넣었다. 故장자연 씨와 윤지오 씨를 위한 작은 복수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KBS 1TV <거리의 만찬> ep19. ‘유일한 증언자’ 편

그렇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윤지오 씨는 최근 ‘의무기록 증명서’를 공개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증명서 사본을 공개한 윤지오 씨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윤지오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긴 시간에 걸쳐 윤지오 씨는 자살 위험도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 자살할 의사가 없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흔히 말하는 ‘자살 당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고로 만약에 자신이 죽는다면 절대 자살이 아님을 알리는, 그야말로 죽음을 각오한 증언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 이전에 윤지오 씨는 매일 ‘생존신고방송’이라는 것을 해왔다고 한다. 경호원이 그를 지키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오랜 경험에서 오는 공포를 다 씻을 수는 없다는 것이 안쓰럽고 미안한 일이다. 죽는 것이 무섭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죽음이 자살로 포장되는 것이 더 두렵다는 말에 오싹한 한기를 느끼게 된다.

<거리의 만찬>과 만난 윤지오 씨의 증언들 중에 무엇 하나 끔찍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장자연 씨가 세상을 떠난 후 ‘유일한 증언자’로서 겪어야 했던 윤지오 씨의 고통은 참혹했다. 연기자를 꿈꾸던 그에게 연예계는 싸늘한 반응을 보였고, 조롱까지 했다고 한다. 심지어 모델로서 활동하기 위해 미인대회에 나가려고 하자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리며 대회출전을 막기까지 했다.

KBS 1TV <거리의 만찬> ep19. ‘유일한 증언자’ 편

‘유일한 증언자’ 혹은 ‘유일한 의인’에 대한 그들 세계의 비열한 반응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목격자의 증언이 원천봉쇄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유일한 증언자’로서의 자신에 후회와 원망이 컸을 것이지만 윤지오 씨는 여전히 10년째 유일한 증언자로서 가해자들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윤지오 씨에게는 연예계 선배라고 할 수 있는 박미선의 말은 그런 속에서도 희망적이었다. 그들은 변하지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겠지만, 그 반대쪽에 있는 우리들이 변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장자연 사건에서 달라진 것은 없다. 겨우 전직 기자만이 성추행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정도이다. 재수사를 한다고 하지만 겨우 두 달만이 마지막으로 주어졌을 뿐이다. 그래도 처벌은 못하더라도 진실만이라도 밝히고자 누구는 목숨을 걸고 증언을 하고, 그를 염려하는 이들을 위해 생존신고방송을 하고 있다.

기득권층의 카르텔은 거대하고 단단하다. 아무리 재수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장자연 사건, 김학의 사건 등의 모든 진실이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을 떨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래도 끝까지 이들 사건의 진실에 등 돌리지 못하는 의인이 있고, 그 의로운 증언을 응원하는 모두가 있다.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권력의 어둠은 많은 진실들을 잠식하고 있다. 그래도 과거보다는 한 뼘이라도 나아질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은 너무도 다행하고, 또 미안한 일이다. <거리의 만찬>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어 또 다행이다. 작은 목소리라고 외면하지 않는 <거리의 만찬>이 그래서 고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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