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윤수현 기자] SBS 이사회가 전략기획실 기능을 축소하고 경영본부의 기능을 대폭확대하는 조직개편안을 의결했다. SBS 경영본부의 본부장은 이동희 본부장으로, SBS 대주주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의 최측근으로 손꼽힌다. 윤 회장이 SBS 장악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총력투쟁'을 예고했다.

28일 SBS는 이사회를 열어 전략기획실 산하 자산개발팀과 경영관리팀을 경영본부로 옮기는 조직개편안을 의결했다. 윤석민 회장의 측근으로 손꼽히는 이동희 본부장에 힘을 실어주는 조직개편이란 분석이다.

SBS는 동시에 최상재 전략기획실장을 보직해임했다. 최 실장은 지난 2017년 SBS 대주주 태영그룹의 윤세영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당시 전략기획실장으로 임명됐었다. 이 같은 일련의 결정은 윤세영 회장으로부터 태영그룹을 물려받은 윤석민 회장의 SBS 장악 시도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다.

▲SBS 사옥.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7년 윤세영 당시 태영그룹 회장은 부당한 SBS 보도 개입을 인정하고 소유·경영 분리를 선언했다. 과거 SBS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 정권 친화적 방송과 태영그룹의 이익을 위한 프로그램 등으로 도마에 오른 바 있다.

일례로 2009년 윤세영 전 회장이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비판 보도를 하던 박수택 환경전문기자를 화장실로 불러 40여 분 간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났다. 박 기자는 "윤 회장이 4대강 사업 찬성 논리를 펼쳤다"고 폭로한 바 있다. 면담 후에도 박 기자가 4대강 비판 보도를 이어가자 SBS는 환경전문기자직을 폐지하고, 박 기자를 논설위원실로 부당전보 처리하기도 했다.

태영건설이 인제 스피디움 인수로 발생한 손실을 메우기 위해 SBS 프로그램을 사유화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지난 2015년 6월 태영그룹 측에서 '자동차 3000만 시대를 맞아 모터스포츠 대중화'라는 기치로, 인제 스피디움을 배경으로 프로그램 제작과 편성을 지시한 것이다. 언론노조 SBS 본부에 따르면 2015년 하반기에만 스피디움을 배경으로 '런닝맨', '모닝와이드', '더 레이서', '더 랠리스트' 등 프로그램이 20여 차례 제작돼 방송됐다.

태영건설이 로비에 SBS를 활용한 정황도 있다. SBS본부 발표에 따르면 SBS 전직 사장과 간부들이 정관계 로비를 펼쳐 스피디움 관련 예산을 따냈다고 한다. 또한 SBS가 매입한 광명역 역세권 개발 사업을 위해 SBS가 광명시의 숙원사업을 대신 해결해주는 방식으로 우회 로비를 시도한 정황도 있다.

이 같은 의혹에 지난 2017년 9월 윤세영 전 회장은 SBS 경영과 방송에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윤 전 회장은 "절대 권한을 갖고 있던 당시 정권의 눈치를 일부 봤던 것도 사실"이라며 "돌이켜보면 공정방송에 흠집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대해 분명히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윤 전 회장은 당시 SBS 회장과 SBS 미디어홀딩스 의장직을 사임했다. 윤 전 회장의 아들인 윤석민 회장도 SBS콘텐츠허브, SBS플러스 이사직을 모두 사임하고, SBS미디어홀딩스 비상주이사 직위만 유지하기로 했다.

이후 SBS는 2017년 10월 국내 방송사 중 처음으로 대표이사 사장을 비롯해 보도·편성·시사교양 최고책임자에 대한 임명동의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수익이 다른 자회사로 유출되는 수익구조의 정상화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SBS노사는 이를 두고 논의를 진행해왔으며, 지난 2018년 11월 노사합의로 윤세영 전 회장을 SBS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

지난 2월 20일에는 지주회사 체제로 인한 SBS 수익 유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BS노사와 SBS 미디어홀딩스가 SBS를 중심으로 한 수직계열화에 합의했다. SBS를 중심으로 콘텐츠 생산과 유통 체계를 완비하고 수직계열화 추진 과정에서 SBS 자산과 현금 순유출이 없도록 한다는 게 합의의 골자였다. SBS본부는 "노와 사, 대주주 간 10년 갈등에 종지부를 찍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28일 진행된 조직개편은 윤 회장이 자신의 측근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식으로 노사합의와 소유·경영 분리 선언을 약 1년 6개월 만에 깨려는 시도로 의심되는 상황이다. 또한 SBS본부 측에 따르면 윤석민 회장은 SBS가 수익 유출을 막기 위해 SBS콘텐츠허브의 주식 65%를 사들였음에도 이사회를 자신들의 측근으로 배치하며 사실상 경영권을 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윤창현 SBS본부 본부장은 미디어스와 전화통화에서 "SBS는 이미 약 800억 원을 주고 SBS콘텐츠허브 지분 65%를 사들였다. 그런데 윤 회장은 이사회를 전부 자신의 수하들로 채웠다"며 "이미 800억 원이 넘는 돈을 챙기고도 회사를 장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SBS본부는 28일 이사회가 열리는 SBS 사옥 20층 앞에서 윤석민 회장의 SBS 장악시도를 규탄하는 대의원회의를 열었다. SBS 이사회 의장인 박정훈 SBS 사장의 집무실이 대의원회의 개최 장소 근방에 있었지만, 박 사장은 SBS본부 측과 대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언론노조는 총력투쟁을 예고했다. 언론노조 중앙집행위원회는 <태영건설 윤석민 회장은 SBS에서 손 떼라> 특별 결의문에서 "태영건설 회장 자리를 차지한 윤석민은 민영방송 경영독립·방송독립의 소중한 이정표인 노사합의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나섰다"며 "윤 회장은 자리를 물려받자마자 '소유·경영 분리와 SBS 경영 불개입'이란 약속을 깨고 SBS 자회사 이사회를 장악했다"고 비판했다.

언론노조 중앙집행위원회는 "박정훈 사장과 이동희 경영본부장 등 SBS 일부 경영진은 대주주의 머슴 노릇을 하며 소유·경영 분리와 독립경영 원칙을 스스로 내팽개치고 있다"며 "우리는 태영건설 윤석민 회장의 SBS 사유화 시도를 방송독립 파괴행위로 규정하며 이에 대한 적극적인 취재와 보도 투쟁에 나설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언론시민사회도 윤석민 회장의 SBS 개입 시도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윤석민이 나서면 SBS는 망한다> 논평에서 "독립경영은 SBS의 생명줄"이라며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이 무너질 때마다 어김없이 생존의 위기가 찾아왔던 게 SBS의 역사"라고 말했다. 언론연대는 "SBS의 경영독립은 윤 회장 멋대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 아니다"라며 "반드시 지켜야 할 시청자와의 약속"이라고 덧붙였다.

언론연대는 "윤석민 회장은 SBS 경영개입이 결국 자해행위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며 "지금 SBS가 살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시민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힘쓰고,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를 늘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언론연대는 "사욕에 눈이 멀어 곶감 빼먹듯 할 때가 아니다"라며 "윤석민은 SBS 장악 시도를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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