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지금까지 이런 서비스는 없었다. 이것은 방송인가 통신인가"

27일 한양대 사회과학관에서 열린 한국언론법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에서 기조발제를 맡은 윤석년 광주대 교수는 'OTT 서비스와 방송법'이라는 화두를 두고 최근 흥행한 한 영화의 대사를 빌려 이 같이 말했다.

지난 1월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이른바 '통합방송법'은 유튜브·넷플릭스와 같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방송법 규제 틀 안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두고 많은 논란을 낳았지만, 우리 법 체계에 있어 '방송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세간에 던지는 효과도 있었다. 뉴미디어 시대 방송과 통신의 경계가 급속히 모호해지는 상황 속에서 송출방식 등 기술적 접근에 의존한 방송법 상 낡은 방송의 정의는 끊임없이 탄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방송 콘텐츠들을 끌어안을 수 없다는 한계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여기에 글로벌 OTT 국내 진입에 따른 시장변화와 자국문화보호의 필요성, 국내·외 기업 간 비대칭 규제 문제, 인터넷과 개인의 표현의 자유 문제 등이 얽히고 설켜 '방송'을 근본적으로 정의하지 않는 한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법적으로 접근조차 어렵다는 한계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OTT에 대한 방송법 규제 논의는 통합방송법에서 제시한 수준보다 수위를 낮춰 재정비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듯 보인다. 방송법에 OTT를 편입하되 사회적 영향력과 개인 표현의 자유를 고려해 방송사 규제보다는 낮은 수준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제시된다. 아울러 다른 한편에서는 뉴미디어를 끌어안을 수 없는 현행 방송법의 한계가 드러난 만큼 불필요한 현행 방송법의 규제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7일 한양대 사회과학관에서는 '다매체·멀티플랫폼 시대의 방송법 진단'이라는 주제로 한국언론법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가 열렸다. (사진=미디어스)

이날 학술대회 발제자로 나선 권형둔 공주대 법학과 교수는 헌법과 방송법에 근거한 해석을 통해 OTT를 방송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으며 규제 역시 가능하다고 봤다. 다만, 사회적 영향력과 표현의 자유 등을 고려해 방송사와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성수 의원의 통합방송법을 재정비 해 논란이 되는 OTT 규제의 수위를 낮추고, 세부적인 내용은 시행령 등을 통해 정비하자는 의견이다.

권 교수는 "상당한 대중이 수신하면서도 사회에 명백한 영향력을 미치는 서비스는 방송 정도는 아니지만 규제를 하자는 입장"이라면서 "OTT서비스도 기술발전에 동참하면서 표현의 공간 확대하고 사회적 통합 추구해 공적역할 실현할 의무가 분명히 있다. 다만 1인 미디어나 인터넷 방송은 다양한 규제방식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통합방송법 설계에 참여중인 최세경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도 팀 내에서 이와 같은 고민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언질했다. '방송'에 대한 정의와 규제목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한 최 연구위원은 특히 공정경쟁을 위한 '동일서비스 동일규제'라는 원칙이 무조건적인 '대칭규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사업에 따른 규제 수준을 형평하게 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반면 한 발 더 나아가 현행 방송법을 전면 재검토해 불필요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방송법이 아니더라도 OTT에 대해 이미 강도높은 내용심의와 제재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 OTT를 방송법 안에 끌어들인다 해도 글로벌 OTT에 대한 규제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다는 점 등의 한계가 발생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한국은 이미 매우 촘촘한 인터넷 규제망을 갖추고 있다"며 OTT에 대한 내용규제에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사전심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등 이미 엄격한 인터넷 표현규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에서 이를 방송법으로까지 과도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다.

(자료 = 콘텐츠연합플랫폼)

OTT에 대한 방송법 규제는 자국문화와 국내사업자 보호를 위한 국내·외 기업간 규제형평성을 중요한 규제 목표로 두기도 하는데, 과연 해외사업자를 규제할 수 있느냐는 실효성 문제도 제기된다.

김 사무처장은 "OTT로부터 발생하는 실질적 문제는 해외사업자 역외적용 문제"라며 "오히려 집중해서 논의해야 하는 의제는 해외 플랫폼 사업자에게 책임성을 부여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유향 국회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 팀장 역시 "국내 사업자를 어떻게 보호하고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해 가장 고민 중"이라며 "한·미 FTA 등 국제법 규제가 있기 때문에 사실상 해외사업자 규제 자체가 매우 힘든 상황이다. 방송법 규제에 (OTT를)포괄한다고 해도 과연 한미 FTA 틀을 벗어나 OTT에 대한 규제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한계 등에 비춰 윤성옥 경기대 교수는 규제강화 방식의 통합방송법이 아닌 규제완화 방식의 방송법 개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기존 방송사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방식으로 방송법을 개정한다면 여기에 OTT를 포함시키는 게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윤 교수는 "우리나라의 특징 중 하나는 규제가 너무 많다는 것"이라며 "지상파, 종편사업자, 유료방송 사업자 등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를 논의해야 한다. 인터넷 내용규제도 이미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규제가 과도하다면, 방송법에서의 상당한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하기 전에 OTT를 방송법에 규정하는 것은 기존 사업자나 새로운 사업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OTT를 규제목적에 맞게 규제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정책발의보다 명확한 시장진단이 먼저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OTT의 사회적영향력과 여론형성기능, 그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점 등을 관련 정부부처가 진단하고 이를 근거로 규제정책을 수립해나가는 방식으로 정책방향을 수정해야 한다는 게 윤 교수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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