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기의 진수란 이런 것이다. 가히 범접할 수가 없다. 3일자 한국경제 5면에 실린 기사는 ‘기사 비틀기’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언론학 교과서에 실릴 법하다.

<공정위, 국내기업 M&A 먹잇감으로 내모나>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4월1일 기준으로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이면서 총수가 있는 43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를 공개한 것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판은 자유지만 최소한의 ‘정도’가 있는 법이다

공정위가 43개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를 공개한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재벌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들에 대해 6배가 넘는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는 등 소유지배구조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함이 아닐까.

▲ 경향신문 9월3일자 16면.
이번 공정위 자료와 관련해 3일자 파이낸셜뉴스는 “대기업 총수가 친족·계열사·비영리법인·임원 등의 지분 31.28%까지 합쳐 소유지분의 6.68배에 이르는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뜻”이라면서 “소유지배괴리도(의결지분율에서 총수지분율을 뺀 것)가 크고 의결권 승수가 높을수록 총수가 직접 소유한 지분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행사한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공정위가 공개한 자료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총수가 있는 기업집단의 지배구조 왜곡이 총수가 없는 곳보다 더 심각했다는 점이다. 파이낸셜뉴스는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이면서 총수가 없는 19곳은 모회사가 90.66%의 지분으로 91.36%의 의결지분만 보유하고 있었다”면서 “이들 19개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괴리도는 0.7%, 의결권 승수는 1.01배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총수가 있는 곳은 상황이 달랐다. 총수가 있는 43곳의 지배구조는 예전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은 것을 물론이고 특히 기업 규모가 클수록 지배구조 괴리가 더 심해졌다. 자산 10조원 이상의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 11곳의 소유지배괴리도는 31.36%, 의결권 승수는 7.54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기업 M&A 문제로 ‘둔갑’시킨 한국경제

▲ 한국경제 9월3일자 5면.
하지만 3일자 경제지들은 이 같은 점을 교묘히 비틀었다. 대표적인 곳이 한국경제다. 한경은 3일자 5면 <공정위, 국내기업 M&A 먹잇감으로 내모나>에서 “재계는 국내 우량 기업에 대한 외국계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이 점차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공정위가 국내 기업의 지분구조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자료를 공표, 외국 자본의 M&A를 돕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면서 “이는 그룹 전체가 특정 외국계 자본의 수중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를 ‘국내기업의 인수 합병문제’로 비튼 셈인데 그 능력이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한경은 같은 면 <두산, 환상형 순환출자 모두 해소>에서 “대기업 집단에서 대주주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지분이 여전히 10%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하면서도 “다만 두산과 현대자동차 등이 환상형 순환출자를 전부 또는 일부 해소하는 등 지배구조 개선 움직이이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많은’ 문제점보다 ‘일부’의 개선 움직임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배구조 개선 ‘신호탄’이라는 매경의 ‘오버’

▲ 매일경제 9월3일자 4면.
‘많은’ 문제점보다 ‘일부’의 개선 움직임에 방점을 찍은 보도태도는 매경도 예외가 아니다. 매경은 같은 날짜 4면 <현대차·두산 환상형 출자 일부 해소>에서 “기업집단 지배구조가 여전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와 두산의 환상형 출자구조가 일부 해소되는 등 개선 여지도 있었다”면서 “주무부서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아직 문제점이 많지만 긍정적인 측면이 보인다’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 머니투데이 9월3일자 2면.
매경은 해당 기사의 작은 제목을 <공정위, 대기업 지분구조 공개 … 지배구조 개선 ‘신호탄’>이라고 달았다. “주무부서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아직 문제점이 많지만 긍정적인 측면이 보인다’고 평가했다”는 부분도 조금 석연치 않지만, 지배구조 개선 ‘신호탄’이라는 매경의 ‘해석’도 지나치게 오버한 것 같다. 사실은 사실대로 보도를 하고, 논평이나 평가를 내리면 될 일인데 이런 식으로 ‘재벌’과 ‘대기업’의 편을 들어야 하는 것인가.

<재벌총수 쥐꼬리 지분으로 그룹지배 여전 / 소유 6%로 의결권 38% 행사>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머니투데이(3일자 2면) 보도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재벌 환상형 순환출자 “다소 개선”>이라는 서울경제(3일자 5면) 정도의 보도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

보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언론의 자유 영역이지만 그 자유에는 최소한의 ‘정도’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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