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UN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수석대변인 역할을 했다는 미국 블룸버그통신 보도와 기자를 '매국', '검은머리 외신'이라고 비판해 논란이 된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 부적절한 표현이었다며 사과했다. 하지만 이 대변인은 '검은머리 외신기자'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다분히 정치적인 용어로 인종적인 편견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정당의 논평으로 활용하는 것이 적절했는지에 대해 성찰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표현 자체에 대한 사과 의향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 대변인은 애초 비판 논평들의 초점은 블룸버그 통신과 기자가 아닌,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전히 '검은머리 외신기자'라는 표현에 대한 사과는 없고, 해당 논평의 칼끝은 나 원내대표가 아닌 한 외신기자를 향해있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사진=연합뉴스)

이 대변인은 19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기사를 평가하면서 '매국에 가까운 내용'이라는 표현을 동원한 것이 적절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반성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며 "거친 표현으로 다소간 기자에게 불편을 끼쳤을 수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심리적인 충격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인정한다. 따라서 이 점 인간적으로 깊이 유감을 표하며 넓은 이해를 구한다"고 사과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 대변인은 '검은머리 외신기자'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정당의 논평에 쓰이기에 부적절해 사과했을 뿐, 표현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대변인은 "'검은머리 외신기자'라는 표현은 온라인에서 네티즌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차용한 것으로, 마치 외국 현지의 여론인양 일부 국내 언론에서 인용되는 외신기사를 쓴 한국인 기자를 지칭하는 말"이라며 "다분히 '정치적인 용어'인 것이다. 따라서 인종적 편견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AJAA 아시아지부는 18일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으로 인해 기자 개인에게 가해지는 인신 공격적 비판에 명백히 유감을 표한다"며 특히 "‘검은 머리 외신 기자’라 표현했는데 이 표현은 한국 기자가 외국 언론사 소속으로 취재 활동을 하는 것이 비정상적이라는 함의가 담겨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외신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해외에서 파견된 외국인 특파원에 한정되지 않는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외신 보도는 해당 국가의 언어와 문화에 정통한 자국 출신 기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뤄진다"며 "기자 국적을 빌미 삼아 외신 보도를 깎아내리는 행태와 외신은 외국인으로만 이뤄져야 한다는 편견에 다시 한 번 유감을 밝힌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소속 기자의 기사가 '블룸버그 기사'로 송출된 것일 뿐, 이를 기자의 국적과 연결시켜 비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블룸버그 통신의 기사 원문 내용에 대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9월 작성된 이 기사는 문 대통령이 UN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김 위원장의 의지와 진정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전략이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양측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분석도 함께 제시된다. 제목에서의 '수석 대변인'이라는 표현만을 가지고 '매국', '검은머리 외신기자'라고 비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 대변인은 사과 논평에서 "애초 그 논평들은 '김정은의 수석대변인' 혹은 '사실상의 대변인'이라는 말을 최초 사용한 블룸버그 통신과 기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었다"며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대표연설 발언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 근본 목적이었다고 강조했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대표연설에서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성장은 위헌적 발상이다', '친북적인 대북정책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만들고 한미동맹을 해체할 것이다', '드루킹 사건, 사법농단 수사로 삼권분립이 무너지고 있다' 등의 주장을 펼쳤다. 이 가운데 쓰인 표현들은 '헌정 농단 경제 정책', '먹튀·막장 정권', '좌파 포로정권', '강성노조의 심부름센터' 등이고, 그 가운데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라는 표현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블룸버그 통신의 기사 제목에서 등장한 '수석 대변인'과 나 원내대표 연설에서 등장한 '수석 대변인'의 의미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까.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에 가까운 내용"(13일), "한국인 외신 주재원이 쓴 '검은 머리 외신' 기사에 불과했다"(14일)는 표현의 칼끝이 나 원내대표를 향하고 있는지, 인종적 편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표현이었는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이해식 대변인은 "기자의 논평도 논평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기자의 글을 비평하고 때로 비판하는 것은 정당의 정치활동의 자유에 속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문제는 논평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논평의 적절성 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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