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후원금 제도 도입은 어떨까요?"

"후원금 제도 도입은 정말 감사하고 고마운 생각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먼저 말을 꺼내기 너무 조심스럽습니다."
"밝은 세상을 만드는 데 힘써주시면 됩니다. 조금 더 뻔뻔해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창간 25주년을 맞은 주간지 <한겨레21>이 '후원제'를 시작한다. <한겨레21>의 가치와 미래에 투자해달라는 호소다. '미디어 환경 변화'는 '인쇄매체의 위기'와 맥을 같이한다. 구독과 광고에 생존을 의지하는 <한겨레21> 역시 예외는 아니다. 몇몇 독자들의 제안과 응원으로 후원제 도입을 마음먹었다는 류이근 <한겨레21> 편집장은 "뻔뻔해지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완전한 독립언론'을 내세워 후원자 100만명을 넘겼다. <한겨레21>이 <가디언>의 성공을 이어받을 수 있을까.

류이근 편집장은 최근 편집장 칼럼 '만리재에서'와 자체 인터뷰를 통해 후원제 도입을 공식화했다. "21의 가치에 투자해달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후원의사가 있다면 구독료와 별개로 <한겨레21>에 후원을 하는 방식이다. 비독자 역시 후원이 가능하다.

<한겨레21>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한겨레21> 후원제 도입 결정은 인쇄매체의 위기, 한국 시사주간지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한국 ABC협회가 발표한 2017년 시사주간지 유료부수 인증 결과에 따르면 주요 시사주간지 4곳(시사IN, 한겨레21, 시사저널, 주간경향) 모두 부수 하락세를 이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4곳 모두 2012년 이후부터 꾸준히 부수가 하락하고 있다. <한겨레21>은 2010년 4만 3천부에서 2017년 2만 2천부로, 7년 새 유료부수가 반토막이 났다.

같은 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2017 언론수용자의식조사'에 따르면 '지난 1주일 동안 잡지를 통해 뉴스‧시사보도를 읽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99.6%는 '안 읽었다'고 답했다. 류 편집장이 "매체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종이 구독자 수를 늘리는 일은 이제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광고 역시 디지털로 이동하고 있다.

류 편집장은 "팔불출 같지만 <한겨레21>이 국내 최고 매체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자부하고 싶다"면서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좋은 매체가 지속가능성을 보장받는 건 아니다. <한겨레21>은 그런 현실을 독자에게 알리고 호소하지 못했다"고 했다. "과거처럼 종이 구독자를 늘리는 일에 매달리다 보면 궁극적으로 소멸할 것"이라는 게 류 편집장이 내린 결론이다. 이런 고민 가운데 나오게 된 것이 '21의 가치에 투자해 달라'는 후원제 도입이다.

<한겨레21>은 후원제 도입의 성공적 모델로 후원자 100만명을 돌파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을 꼽았다. <가디언> 역시 2000년대부터 시작된 인쇄매체의 쇠락을 견디지 못하고 수백억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가디언>은 비용 감축 내용을 발표하며 독자들에게 후원을 당부했다.

"<가디언>은 완전한 독립언론입니다. 우리의 저널리즘은 상업성에서 벗어나 있고 그 어떤 정치인, 주주에게서도 독립돼 있습니다. 우리의 편집권은 아무도 침해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고, 권력에 맞설 수 있는 이유입니다. 1달러의 소액도 좋으니 <가디언>을 후원해주세요."

자사의 위기를 독자에게 솔직하게 고백한 <가디언>은 정치·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언론 본연의 기능을 약속하며 후원을 호소했다. <가디언>의 가치에 후원해달라는 호소였던 것이다.

<한겨레21> 역시 마찬가지다. 류 편집장은 <한겨레21>의 가치에 투자한 후원자들이 가장 원하는 보상은 '좋은 보도'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후원금 용처는 철저하게 탐사·기획·심층 보도 등 취재에 재투자되도록 한정할 계획이라는 게 류 편집장의 설명이다. 수입·지출 내역 역시 독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방침이다.

류 편집장은 후원제 도입에 대한 안팎의 우려에 대해 "우리 미래를 준비할 때, 우리 힘으로 안 된다면 독자의 힘을 빌릴 수 있다는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후원제가 독자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답이다.

그는 "당장 거창한 성과가 안 날 수도 있다. 우리는 좋은 보도를 지속할 것이고, 그때마다 후원제의 모멘텀이 생길 것"이라며 "<한겨레21>의 후원제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성역 없고 타협 없는 보도가 백년, 천년 갈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독립된 언론'을 만들기 위한 <한겨레21>의 '뻔뻔한'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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