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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 듣는 영원한 희망의 노래[마음에서 마음으로] 올리비에 메시앙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
MBC 이채훈 PD | 승인 2008.01.18 11:02

   
  ▲ 올리비에 메시앙.  
 

춥다. 하지만 얼음 밑에서 물이 흐르듯, 사람의 따뜻한 피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여전히 맥박치고 있다. 생각건대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추운 날을 무수히 살았고 또 이겨왔다. 낭패스런 일이 상식처럼 횡행하지만 엄살 부리지 말고 할 일은 할 것!

올해 탄생 100년을 맞는 프랑스의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도 혹독한 추위를 견딘 시절이 있었다. 그의 음악과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구상해 봄직 하다. 20세기 음악의 여러 풍경 중 다음 장면은 가장 감동적인 것 중 하나일 것이다.
     
1941년 1월 15일, 영하 20도를 넘는 혹한의 실레지안 포로 수용소. 2차 세계대전의 성난 숨결을 잠시나마 멎게 하는 피아노,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의 화음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치군에 잡힌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포로 3만 명이 수용되어 있던 이곳에서 올리비에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이 세계 초연되고 있었던 것. 또한 포로였던 서른세 살의 작곡가 메시앙이 피아노를 직접 치고 있었다.

"악기는 거의 폐품이었다. 파스키에가 연주한 첼로는 줄이 세 개밖에 없었고, 내가 친 피아노의 오른쪽 건반들은 쿡 누르면 다시 튀어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헐어빠진 군복 차림이었다…."

수용소 운동장에 덜덜 떨며 모여 있던 5,000명 가량의 포로들에게 이 음악은 전율에 가까운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이 사람들 중 음악 애호가가 결코 다수라고 할 수 없었는데도 말이다. 요한계시록 10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사중주곡은, 메시앙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비참한 시대에 최후의 생명력을 다시 일으키는 것, 내가 언제나 희구해왔고 언제나 가장 사랑해온 것, 즉 크리스트의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다시 떠올리고자 한 작품"이다. 이 곡이 8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는 것은 6일간의 창조, 7일째의 안식일에 이어지는 제 8요일, 즉 ‘평화의 날’를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 올리비에 메시앙의 일대기를 그린 동화책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맑은가람).  
 

올리비에 메시앙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설지만 "전세계 어디서든 매 순간 이 사람의 음악이 연주되지 않는 때가 없다"고 할 정도로 사랑받는 작곡가이다.

바로크시대의 모든 냇물이 요한 세바스찬 바흐에게 흘러 들어가서 크게 꽃을 피웠다면 메시앙은 현대음악의 모든 조류-쇤베르크의 음열주의, 드뷔시의 인상주의 등-를 흡수하였을 뿐 아니라 인도와 그리스의 리듬, 새소리에서 받은 음악적 영감 그리고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가톨릭 신앙 등 그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거대한 음악 세계를 구축한 사람이다.

흔히 "현대음악은 난해하다"며 대표적인 예로 메시앙을 들지만 오히려 그는 비인간화의 길을 걸어온 서양 현대음악에 다시 인간의 마음을 되살려 놓은 사람이다.

자신의 음악을 이해하는 비결에 대해 그는 "편견을 버리고 오직 청각의 처녀성을 갖고 들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처음 듣는 음악의 경이와 신비에 귀와 마음을 맡겨보라. 그의 피아노에서는 금속빛의 광채와 함께 온갖 빛깔의 소리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을 들을 수 있고, 그의 클라리넷에서는 새의 이미지로 표현된 절대자의 섭리를 느낄 수 있다.

멜로디와 리듬이 복잡해서 허밍이나 휘파람으로 따라 부르기 어려운 것은 메시앙의 음악과 친해지기 어려운 조건이다. 하지만 그냥 듣기에 가장 매혹적인 것이 그의 음악임을 오히려 클래식의 문외한들이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메시앙은 60년 이상 파리의 생 트리니테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로 일하면서 수많은 오르간곡을 썼다. 그리고 오페라 <아씨시의 성 프랑시스>, 피아노곡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 대편성 관현악곡 <튀랑갈릴라 교향곡>, <협곡에서 별들까지> 등 모든 장르의 음악을 남겼다. "모차르트 이후 그에 견줄 만한 천재는 메시앙 뿐"이라든가, "오르간 음악에서 바흐 이래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이라는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그의 음악을 느끼는 순간 알 수 있다.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은 몇 안 되는 그의 실내악곡 중 가장 널리 연주되는 곡으로, '수정의 예배' '시간의 종말을 알리는 천사를 위한 보칼리즈' '새의 심연' '간주곡' '예수의 영원성을 찬양함' '7개의 트럼펫을 위한 광란의 춤' '시간의 종말을 알리는 천사를 위한 무지개의 혼란' '예수의 불멸성을 찬양함' 등 8개의 악장으로 이뤄져 있다. 종교적인 표제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표제를 무시하고 그냥 들어도 상관없다. 메시앙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다른 장르의 곡들에 비해 쉽게 들릴 것이다. 연주 시간은 약 48분.

메시앙의 제자이자 두 번째 부인인 이본 로리오가 피아노를 맡은 EMI의 1991년 녹음 음반은 메시앙 자신이 직접 레코딩에 참여했기 때문에 작곡가의 의도를 가장 잘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메시앙의 음악을 좀 더 듣기를 원한다면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고 버밍햄심포니가 연주한 <튀랑갈릴라 교향곡>과 함께 이 곡이 들어 있는 EMI 레이블의 2장짜리 CD를 권하고 싶다.

   
   
1984년 MBC 입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리즈에서 제주 4 .3, 여순사건, 보도연맹, 국가보안법,  NLL 등을 다루었고, 모차르트, 정경화, 정명훈, 장영주, 장한나 등에 대한 음악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저서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 <우리들의 현대침묵사>(공저). 현 MBC 외주제작센터 부장.

MBC 이채훈 PD  ych1013@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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