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그래서일까, 그 어느 때보다 독립운동에 대한 조명과 환기가 융성하다. 이와 관련된 영화들이 박스오피스의 상위권을 점유하며 관객들의 관심을 받고, 다양한 사례의 다큐들이 방영되었다. KBS에서는 비록 5분여의 짧은 시간이지만, 독립 유공자들을 알리는 100부작의 야심찬 기획을 실행 중이다. 그런데 과연 독립운동 기념행사를 넘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일까? <EBS 다큐 시선- 100년 만에 부르는 노래>가 그 방향성을 제시한다.

적막한 가을 강산 야월에
숨어 울며 날아가는 저 기러기야
북방에 소식을 네가 아느냐
여기서 저기까지 몇 리 되는지
아차차 가슴 답답 이내 신세야

만주 딸 시베리아 넓은 들판에
동에 갔다 서에 번쩍 이내 신세야
해외에 널려있는 백두산 하에
나의 일가 동포형제 저곳 있건만
나는 소식 몰라 답답하구나

만주 땅 시베리아 넓은 들판에
동에 갔다 서에 번쩍 이내 신세야
교대 잠이 편안하여 누가 자며
콩둔 밥이 맛이 있어 누가 먹겠나
때려라 부셔라 왜놈들 죽여라.

안중근 의사를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안중근 의사가 만들어 일제가 치안법 위반의 금지곡으로 통제했다던 노래 <옥중가>, 당시 사람들이 안 의사를 기리며 불렀던 노래가 있다는 사실조차 우리는 모른다. 감옥에 갇힌 답답한 마음으로 시작하여 전투적 항일 의지로 마무리되는 이 노래는 4분의 2박자의 민요풍의 씩씩한 리듬을 가졌다.

항일음악 330곡, 그러나 교과서엔 단 한 곡

EBS1TV 다큐 시선 ‘100년 만에 부르는 노래’ 편

이 노래가 실린 곳은 고 노동은 교수의 <항일음악 330곡집>이다. 그 시작은 2018년에 개최된 <2018 항일음악회- 다시 부르는 희망의 노래, 독립군 아리랑>에서였다. 이 음악회에 참석하게 된 <다큐 시선>의 제작진은 왜 이런 노래들을 몰랐을까 싶게, 음악 그 자체로서도 훌륭한 항일음악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에 대한 취재를 시작했다. 그리고 만나게 된 것이 평생에 걸쳐 항일음악을 발굴하다 돌아가신 고 노동은 교수의 <항일음악 330곡집>이다.

안중근 의사가 만든 <옥중가>에 대해 우리가 이토록 무지한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제작진의 탐구는 그렇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어떤 노래를 배우면서 자라는가’로 귀결된다. 과연 이런 항일음악들이 우리 교과서에는 있는가라는 의구심에서이다.

음악 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한 바 있던 교원대 민경훈 교수와 학생들과 함께 찾아본 2009년, 2015년 개정 음악 교과서. 거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현제명의 '그 집 앞', '희망의 나라로'가 실려 있다. 최근 3.1운동 기념식장은 물론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불려 논란이 된 대표적 친일음악 '희망의 나라로'. 하지만 기념식에서도 여전히 사용되듯, 사람들은 이 밝고 경쾌한 노래가 일제말기 친일에 앞장섰던 현제명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에서 제 2의 국가로 불려지는 '우미 유카바(바다에 가면)'와 비슷한 정서의 노래(민족 문제연구소)라는 것을 알 수 없다.

현제명만이 아니다. 홍난파, 이흥렬, 조두남 등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들의 곡이 9곡이나 그 어떤 설명도 없이 실려 있다. 아니 친일 음악가의 곡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각국의 민요를 비롯하여 다양한 장르의 음악, 거기에 조용필의 곡과 장범준의 '벚꽃 엔딩' 등 유행가까지 풍성하게 실린 교과서. 하지만, 그런 교과서에 항일음악은 2009, 2015년 음악 교과서에 '독립군가' 등 단 2곡뿐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 교과서를 담당하고 있는 측에서는 현 검인정 교과서의 딜레마를 든다. 즉 교과서에 실리는 음악에 대해 국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 자체가 국가의 지침 혹은 통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제도적 한계로 인해 우리는 여전히 항일음악보다 친일음악을, 심지어 국가적 행사에서도 듣고 연주하고 부르는 현실에 놓여 있다.

애국가 대신 국기가?

EBS1TV 다큐 시선 ‘100년 만에 부르는 노래’ 편

멀리 갈 것이 뭐 있는가. 전 국민이 제창하는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가 대표적인 친일 음악인에, 최근 나치 협조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 말이다. 과연 우리가 ‘이런 애국가를 계속 불러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광복군 제 2지대에서 불려졌던 '국기가'가 눈길을 끈다.

우리 국기 높이 날리는 곳에
삼천만의 정성 쇠같이 뭉쳐
맹세하네 굳게 태극기 앞에
빛내려고 길게 배달의 역사 -국기가, 한형석

이 노래를 만든 분은 한형석 선생이다. 독립군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그곳의 신화 예술대를 졸업한 선생은 전장의 독립운동가이자 음악가였다. 1940년 당시의 전시적 상황에 대한 현실을 고발하고 공동체적 결의를 다지고자 우리나라 최고 가극인 '아리랑'을 만들었던 분. 연기부터 감독까지 1인 7역을 두루 해내며 공연했던 가극 아리랑은 20여회의 공연으로 당시로서는 큰 금액인 수익금 4100원을 모금했고, 이는 광복군 등의 군자금으로 쓰였다.

한형석 선생이 만든 곡들은 '우리는 대한의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는 80년대 운동가로도 유명했을 뿐만 아니라, 항일음악 중 유일하게 2003년 음악 교과서에 실린 압록강 독립군가를 비롯하여 '여명의 노래' 등 다수의 곡들이 있다.

그러나 한형석 선생 같은 분의 항일음악이 지금 불리지 않는 이유는 그저 현재의 교과서 제작 체제의 맹점 때문만은 아니다. 스스로 광복군 제 7대에 소속 OSS훈련까지 받았던 항일 운동가였지만, 임시정부의 일원으로 해방된 고국에서 환영은커녕,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기에 자신이 만들었던 음악을 묻고, 중국어를 가르치며 전쟁고아들을 위한 교육 사업에 나머지 일생을 바치셨다. 심지어 '한유한'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던 그의 기록은 묻혀져 중국의 한 교수가 그의 음악과 그에 대한 발굴을 통해서 뒤늦게 세상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해방 후 역사의 격동 속에 사라져간 항일음악가는 또 있다. 우리나라보다 중국에서 더 유명한 정율성 선생이다. 팔로군 행진곡으로 알려진 중국의 두 번째 국가와도 같은 곡을 만든 정율성 선생은 3대 중국혁명음악가이자, 중국의 100대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곧 사상으로 인해 얼룩진 우리 해방 후 역사의 비극 그 자체이다. 4남매가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집안, 그중에서도 좌파 계열의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선생은 마오쩌뚱의 군대에서 활약하게 됐으며 그 과정에서 '연안송', '중국 청년 격동가' 등 항일음악을 만들었다.

EBS1TV 다큐 시선 ‘100년 만에 부르는 노래’ 편

해방 후 남한으로 귀국하여 조용히 살아가셨던 한형석 선생과 달리, 그가 소속된 연안파 동지들과 북한으로 넘어가셨던 선생. 하지만 연안파는 곧 북한 정권수립과정에서 숙청되고 이를 피해 다시 중국으로 건너갔지만 선생을 기다렸던 건 '문화혁명'. 결국 북한에서도 중국에서도 발붙일 곳이 없던 선생은 쓸쓸히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리운 강남(강남제비) 가사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강남에 어서 가세
하늘이 푸르면 나가 일하고
별 아래 모이면 노래 부르니
이 나라 이름이 강남이라네
그리운 저 강남 두고 못 가는
삼천리 물길이 어려움인가
이 발목 상한지 오래이라네
그리운 저 강남 건너가려면
제비떼 뭉치듯 서로 뭉치세
상해도 발이니 가면 간다네 -그리운 강남, 안기영

또 다른 선택도 있다. 일제시대 유명한 음악가였지만, 일제 말기 극심해지는 친일 강권에 절필을 선언하고 고향으로 칩거했던 '그리운 강남'의 안기영 선생의 노래는 장사익 씨의 '아리랑'으로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최후의 결전을 맞으러 가자/생사적 운명의 판가리로/나가자 나가자 굳게 뭉치여/원쑤를 소탕하러 나가자//(후렴)총칼을 메고 결전의 길로/다 앞으로 동지들아/독립의 기발은 우리 앞에 날린다/다 앞으로 동무들아//무거운 쇠줄을 풀어헤치고/뼈속에 사무친 분을 풀자/삼천만 동포여 모두 뭉치자/승리는 우리를 재촉한다//(후렴).'

조선의용대의 대표군가였던 '최후의 결전'은 어떤가? 의열단에 이어 조선의용대에게 활약하다 태항산 전투에서 돌아가신 윤세주 열사가 폴란드 민요에 가사를 입힌 곡이다.

우리가 몰랐던 항일음악들, 평생에 걸쳐 혹은 자신의 천직을 버리고까지 지키고 발굴하여 겨우 명맥을 이어갔던 항일음악들. 3.1운동의 100주년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 음악들이 다시 회자되고 불리며, 우리의 아이들이 이런 음악들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조용필, 장범준의 노래와 함께 이런 음악들도 '버젓이' 실릴 수 있는 음악 교과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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