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KBS이사회가 현 2천5백원 KBS수신료를 3천5백원으로 인상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40%인 현재의 광고 비중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사회 내에서도 인상 금액, 광고 비율 등을 놓고 여야 이사들 간 이견으로 수 개월간 팽팽하게 계속됐던 수신료 인상 논의는, 야당 쪽 이사들이 주장한 수신료 3천5백원(광고 현행 유지) 인상안에 대해 여당 이사들이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 일단락됐다.

오랫동안 소망하던 ‘수신료 인상’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한 KBS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다. 김인규 KBS 사장은 수신료 인상 기자회견에 직접 나서,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KBS는 또, 자사 뉴스를 통해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과 정당성, 해결 과제 등을 담은 보도를 수차례 내보내는 등 ‘수신료 인상’ 여론화를 위해 주력하는 모습이다.

▲ 서울 여의도 KBS본관 ⓒ미디어스
하지만 KBS수신료 인상을 바라보는 KBS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언론 시민사회단체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수신료 인상 저지’ 움직임을 밝히는 등 반발이 거세다. 이 뿐 아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도 22일치 사설을 통해 현 KBS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수신료 인상에 대한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경향 한겨레의 비판의 성격과는 조금 다르긴 하나, 종합편성채널 진출을 추진 중인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도 ‘광고 현행 유지’ 등 때문에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KBS수신료 인상 의결에 참여한 여당 뿐 아니라 야당 쪽 이사들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다. KBS수신료 인상저지 범국민행동은 성명을 통해 “야당 추천 이사들 역시 수신료 인상의 ‘들러리’를 선 데 대해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디어행동 또한 “야당 이사들은 시민사회가 요구해온 수신료 인상의 전제 중 그 어떤 것도 확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미디어스>는 22일 오후, 수신료 인상안 의결 과정에 참여한 야당 이사 가운데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교수는 <미디어스>와 인터뷰에서 KBS수신료 인상을 둘러싼 비판과 야당 이사들을 향한 비판, KBS가 해결해야 할 과제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구체적으로, 3천5백원 인상안에 대해서는 “최선의 안은 아니었지만, 최악의 안을 막는 대안이었다”며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창현 교수와의 전화 인터뷰 일문 일답이다.

“최선은 아니었지만, 최악의 안을 막는 대안이었다”

KBS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수신료 인상안을 의결했다. 광고를 현행 유지하면서 3천5백원으로 인상, 이러한 KBS수신료 인상안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하는가?

“3천5백원 인상안은 최선의 안이 아니다. 다만, 최악의 안을 막는 대안이었다. 즉, 1안으로서 6천5백원과 2안으로서 4천6백원은 KBS의 광고를 없애고, 그 광고 물량을 종합편성채널 등 광고 시장으로 편입시키려는 안이었다. 이러한 의혹을 갖고 있는 수신료 인상안을 야당 쪽 이사들은 받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야당 이사들은) 수신료 인상의 최우선적 목표로 ‘광고의 물량을 종합편성채널에게 넘겨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마지노선을 갖고 있었다. 자칫하면, KBS수신료 인상이 시민사회, 전국언론노동조합으로부터 심각한 비판에 직면하는 것 뿐 아니라, 국민 전체로부터 제2의 수신료 거부운동이 일어날 것이 명약관화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번 3천5백원 인상안은 최선의 안이 아니다. 시민단체의 비판을 충분히 안다. 그러나 인위적인 광고 시장 조정을 통해 종합편성채널 사업자에게 광고 몰아주기라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이사회가 파행을 거듭한 끝에 의결된 것인데, 그 동안 수신료 논의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나?

“KBS이사회 여당 쪽 이사들은 지난 6월말, 수신료 인상안 6천5백원과 4천6백원 두 가지 인상안을 제시한 뒤 일방상정해 강행통과하려고 했다. 이에 야당 쪽 이사들은 여당 쪽(인상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개선안을 내려고 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지난 2007년에 제시했었던 4천원 인상안에서 5백원이 깎인 3천5백원 인상안에 대한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만약 야당 이사들이 KBS이사회 내에서 전면거부를 했다면 아마도 4천6백원이나 6천5백원 가운데 수신료 인상안이 결정되었을 것이며, KBS 내부의 구조조정, 사회적 책무, 공정성 독립성 강화방안도 마련되지 않았을 것이다.”

▲ KBS 이창현 이사 ⓒ미디어스
KBS수신료 인상,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가?

“단기적으로 보면 KBS가 재정적 수익을 남기고 있는 상황이다. 이 시기에 (KBS가) 수신료 인상을 밀어붙이려 한 것은 전체적으로 미디어 산업구조 개편과 종합편성채널의 종잣돈이라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 점 때문에 야당 쪽 이사들은 수신료 인상에 반대해 왔다. 하지만 수신료 인상 논의를 전면 거부 하면, 오히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판단해 광고 현행유지, 3천5백원 인상안을 수용한 것이다. 한 마디로, ‘종합편성채널의 종잣돈’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 나라의 공영방송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의 부담으로 수신료를 2천5백원에서 3천5백원으로 올리는 것에 대한 미흡함은 있다. 그렇지만 현재 상황에서 그 이상으로 올리게 되면 종합편성채널 종잣돈이라는 프레임에 갇히게 될 우려가 있었기에 충분히 인상할 수 없었다.”

수신료 인상 의결에 대한 비판이 높다. 경향신문, 한겨레를 비롯한 언론 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들도 비판하고 나섰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언론의 비판은 충분히 가능하다. 비판받을 소지가 없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시민단체에서 KBS의 공정성, 독립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MB시대에 KBS의 모습은 ‘정권을 장악하면 KBS를 전리품으로 챙길 수 있다’로 비춰질 만큼, KBS는 (정권) 비판적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비판적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PD와 기자들에 대한 보복성 인사를 단행했다. 이러한 현실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KBS 수신료 인상안에 합의해준 것에 대한 사회적 비판은 타당성이 있다. 사회적 비판을 하는 집단은 그만큼 KBS의 공정성, 독립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큰 집단이기에, 비판의 대의를 수용한다.”

수신료 인상 의결에 참여한 여당 이사 뿐 아니라 야당 이사들에 대한 비판이 시민사회로부터 나오고 있다.

“야당 이사들에 대한 비판도 수용한다. KBS이사회는 국민을 대표해서 이사들이 선임되었으며, KBS의 조직적 이해보다는 국민을 먼저 대표해야한다는 점에서 비판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수용한다. 그러나 KBS의 공정성, 독립성 강화는 한 번의 선언으로 해결될 사항이 아니다. 이는 공정방송위원회 설치 등 사내 노력과 야당 이사들의 이사회 내부 감시, 예산·결산의 감시, 편성 내용 감시 등을 통해 일상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항이다. 수신료 합의 처리 이후, KBS이사회에서 KBS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담보 노력을 더욱 강하게 촉구할 것이다. 이제부터 KBS이사회를 통한 일상적 감시 체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KBS에 대한 나의 비판적 발언에 대해 이사회 내부에서 신상의 위협과 협박을 가했던 세력도 있었지만, 굴복하지 않고 당초의 3천5백원 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수신료 인상이 종합편성채널 몰아주기를 위한 것이었다는 오해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3천5백원안은 많이 부족하고, 최선의 안도 아니다. 그러나 최악을 막기 위한 현실적인 판단이었음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수신료 현실화를 전면 거부하는 방안과 3천5백원을 합의하는 것 사이에서 야당 이사들의 고뇌가 있었다. 최선은 아니지만,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었음을 이해해 달라.”

오늘 치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지면을 통해 KBS수신료 인상안 가운데 ‘광고 현행 유지’ 부분을 비판하고 나섰다.

“오늘, KBS수신료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비판이 있었다. 하나는 <경향신문> <한겨레> 등에서 제기한 KBS의 공정성, 독립성 프레임에 의한 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조중동으로부터 나온 광고 현행 유지의 프레임이다. 조중동은 수신료 인상안 가운데 광고 현행 유지를 가장 비판적으로 본다. 이는 당초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연두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바 있는 ‘종합편성채널 지원을 위한 KBS 광고폐지’가 실현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조중동은 종합편성채널과 관련해 광고 시장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언론은 최소한의 팩트를 중심으로 보도해야 하는데, 자칫 언론사의 이해에만 충실한 보도를 함으로써 수신료 인상의 종합적 부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될까봐 아쉽다.”

▲ 김영호, 진홍순, 고영신, 이창현 등 KBS 야당 이사들이 지난 7월28일 KBS본관 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여당 이사와 KBS가 군사작전식으로 수신료 인상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곽상아

“KBS, 공정성 회복하고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야”

수신료 인상을 둘러싼 비난 여론 가운데는 ‘KBS 공정성 회복이 우선’이라는 주장이 많다. 동의하나?

“동의한다. KBS의 공정성 회복은 MB시대 KBS의 중요한 아젠다이다.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과거 정부에서 KBS의 공정성을 주장하면서 수신료 인상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공정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수신료 인상에 앞장서왔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 정권 아래에서도 피할 수 없는 논쟁의 대상이었다. 어느 정당이든 정권을 잡은 뒤, KBS를 사유화하게 되면 그에 따른 공정성 논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현재와 같이 집권당이 KBS이사회를 과점적으로 지배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대통령의 방송 특보가 (사장으로) 들어오는 상황에서는 (공정성 논란을) 극복하기 힘들다. KBS의 독립성, 공정성은 여당 스스로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할 때 만 이뤄질 수 있다. 현재 논의되는 수신료위원회 체제와 KBS 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는 늦었지만, 이는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해결해야할 문제다.”

수신료 인상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가? 더불어, 이제 방송통신위원회와 국회의 절차가 남아있는데 바라는 부분이 있다면?

KBS는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야 한다. 수신료 인상 과정에서 국민의 의견 수렴은 많았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최종적인 인상안에 넣기에는 많은 것이 부족했다. 야당 이사들의 역할이 있었지만, 공청회와 전문가 토론회 등에서 나온 KBS에 대한 비판을 모두 다 담지 못했다. 아울러 향후 방송통신위원회와 국회에서 (수신료 인상) 논의를 거칠 것이다. 이렇게 보면 3명이 뛰게 될 계주의 첫 번째 바통을 KBS이사회에서 2번째 주자인 방송통신위원회에 넘겨준 모양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이경자 위원과 양문석 위원의 종합적 판단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아울러 국회에서도 야당 의원들이 제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

KBS 수신료 인상 과정에서 KBS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과제는 뭐라고 보는가?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KBS가 되어야 한다. KBS가 국영방송이라면 청와대의 대통령 눈치만 보면 될 것이고, 민영방송이라면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들의 눈치만 보면 된다. 그러나 공영방송은 국민들의 비판에 귀 기울이고, 국민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KBS사장이 되면 대통령의 눈치, 광고주의 눈치가 아니라 국민의 눈치만 봐야한다.

김인규 사장은 특보 사장이지만, 국민의 눈치를 보는 사장이 되어야 한다. 김인규 사장은 KBS 1기 출신의 사장으로서 상징성이 있다. KBS를 진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특보 사장이 들어옴으로써 KBS 구성원의 자존심을 구긴 점이 있었다. 이를 회복하는 유일한 방안은 KBS를 청와대와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독립적인 기구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나는 야당 이사로서 김인규 사장에게 지속적으로 강력히 요구할 것이다. 수신료 인상은 KBS가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표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본다. 이제부터 내부적으로는 공정방송위원회 등을 강화시키고, 비판적인 시민단체와 시청자단체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서 KBS가 국민의 지지위에 올바로 서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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