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회의 화두는 선거법 개정이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3당이 줄곧 제기해온 비례대표 확대에 대해 민주당이 내놓은 개정안이 현실적인 타협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의원 총수에는 변화가 없지만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정수를 늘린 안이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얻은 득표수를 감안한다면 군소정당이 차기 총선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변화라 할 수 있다. 여야4당은 이 개정안을 국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자유한국당은 즉각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여야4당의 개정안과는 전혀 다른 비례대표제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헌법 41조 3항에 명시된 비례대표제 자체를 부정한 주장이어서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판만 받는 실정이다. 게다가 YTN 라디오와 인터뷰 중에 ‘전 세계 선진국’에 비례대표제가 없다는 주장이 사실과 달라 망신까지 더해졌다.

[팩트체크] 나경원 "전 세계 선진국, 비례대표제 없다"?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자유한국당은 의원직 총사퇴, 국회 보이콧 등의 엄포를 놓고 있지만 야3당의 차기 총선을 통한 국회에서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 여야4당의 공조를 원천 봉쇄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여야4당의 패스트트랙 지정이 중요한 것은 선거법 개정만이 아니다. 진짜는 따로 있다.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올리고자 하는 법률 개정안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현재의 정치 지형에서 비례대표정수의 확대는 분명 거대정당에 불리한 점이 없지 않다. 민주당이 그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얻고자 하는 주요한 이슈는 공수처 설치, 국가정보원법, 사법개혁안 등 9개 법안 때문이다. 물론 야3당이 선거법 개정안을 얻고 민주당이 추진하는 9개 법안을 모두 내놓을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거꾸로 야3당이 민주당의 개혁 법안을 전혀 받지 않고는 선거법 개정도 어렵기 때문에 여야4당의 협상 결과에 주목하게 된다. 특히나 말뿐인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의 처리기한을 현재의 330일에서 두 달로 단축할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 처리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이 개정안이 받아들여진다면 유치원3법 등과 같은 시급한 법안 개정의 신속한 처리가 가능해진다.

여야 선거제 개혁(PG) (연합뉴스 자료사진)

물론 협의와 합의를 전제로 해야 하는 국회가 모든 안건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는 일은 경계해야 할 요소가 크다. 그렇지만 매해 1만 건이 넘는 법안이 국회에서 먼지만 뒤집어쓰다가 사라지는 입법부의 입법기능 실종의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안고가야 할 위험이다.

이번 여야4당의 협상의 묘미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에 있다. 현재 국회법을 전제로 개정된 선거법으로 내년 총선을 치르자면 합의는 15일이 데드라인이라는 데 여야4당의 인식이 모아졌다. 앞으로 불과 사나흘의 기한 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공수처 법까지 패스트트랙을 타게 되는 빅딜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전혀 없지 않다.

이번 여야4당의 협상결과가 무사히 타결된다면 생각지 못한 큰 선물이 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선거법 개정에 자유한국당이 협상테이블에 앉지도 않는 강경한 반대 입장을 취함으로써 민주당으로서는 오히려 개혁 법안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이번 여야4당의 패스트트랙 협상의 일등공신은 자유한국당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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