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실이 때 아닌 악플의 여왕이 됐다. 그녀가 케이블TV 프로그램에서 밝혔다는 굴욕담 때문이다.

그것은 첫째, 본인을 건방진 사람으로 비치게 했으며, 둘째, 후배에게 해코지하는 옹졸한 사람으로 비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실언일 수밖에 없었고, 일단 그 발언을 알리는 기사가 뜬 이상 욕을 바가지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수위가 지나치다. 다시 시작됐다. 주기적으로 터지는 한국 네티즌의 분노, 그것이 또 폭발한 것이다. 이번엔 고질적인 문제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났다. 하나는 방송에 나타난 캐릭터와 실제를 혼동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다.

나도 이번에 기사화된 이경실의 발언이 왜 심각한 실언인지, 그것이 사회심리적으로 어떤 문제를 일으킬 것인지에 대해 분석하는 글을 썼다. 한 포털에 실린 그 글엔 예상 외로 이경실에 대한 증오 댓글이 줄줄이 달렸고, 반대로 이경실의 인간성을 옹호하며 전투를 벌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증오든 옹호든 초점이 완전히 어긋났다. 문제는 이경실의 ‘인간성’이 아니다. 이번 일은 2010년에 한국사회의 대중이 TV를 통해 어떤 구도를 보고 싶어 하는가, 어떤 구도가 나올 때 기분 나빠 하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사건일 뿐이다. 이경실의 인간성하고는 관계가 없다.

속마음은 누구도 모른다. 사생활도 마찬가지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비쳐지고 대중의 인기로 산다는 점에서 연예계와 정치계는 대단히 유사하다. 어떤 정치인에 대해 좋다 싫다를 논할 때 그 사람의 사생활이나 속마음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 정책비전 등이 그 근거가 된다.

연예인도 그렇다. 연예인은 TV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이고 대중은 TV 속에서 형성되는 구도와 캐릭터를 보는 것이다. 스타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스타는 인격이 아니다. 연예인 본인과 대중의 욕망이 스크린을 접점으로 만나 형성된 가공의 존재일 뿐이다.

우리의 문제는 TV 속의 이미지를 너무나 쉽게 현실과 혼동한다는 데 있다. 강한 이미지로 나오면 그 사람이 못됐다고 비난한다든가, 얄미운 캐릭터이면 실제로 그렇다고 믿고 인간 자체를 증오한다든가, 이런 식이다.

이경실의 실제 인간성을 누가 알겠는가? 이번에 불거진 사건은 폭로토크가 유행하는 요즘 예능 트렌드에서, 이경실식의 ‘화통’ 캐릭터와 수위를 넘나드는 케이블TV가 만났을 때 터질 수 있었던 참사일 뿐이다.

그런데도 네티즌은 이경실에 대한 증오를 뿜어대고 있다. ‘오버’다. 그것보다는 ‘이런 식의 구도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니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게 정답이다.

이번 악플사태의 또 다른 문제는 위에 언급한 대로 여성에 대한 편견인데, 바로 ‘드센 여자’에 대한 혐오감이다. 이경실은 드센 여자의 대표캐릭터로 드센 아줌마 토크쇼인 <세바퀴>를 이끌고 있다. 여기에 대한 대중적 혐오감이 축적돼 있다가 이번 발언을 계기로 터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남자가 강하면 활력 있다고 하는데 여자가 강할 땐 드세서 부담된다고 하는 건 차별이다. 여자가 젊었을 땐 조신함과 섹시함을, 나이 먹으면 모성애만을 보여줘야 한다고 믿는 건 현대와 어울리지 않는 봉건적 족쇄인 것이다. 강한 아줌마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번 이경실 실언 악플 사태의 시사점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1. 사회심리 이해. 대중이 건방짐, 거만함, 권위의식, 후배 괴롭힘, 옹졸함, 이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일로 알 수 있다. 반대로 겸손, 배려, 이해, 포용, 이런 것들에 감동한다. 대중의 사랑을 받으려면 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후자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그 전범이다.

2. 자신 돌아보기. 이경실의 인간성이 아닌 본인의 인간성을 걱정할 때다. TV속에서 건방지게 여겨지는 캐릭터가 나왔을 뿐인데 이렇게 악플이 쏟아질 정도라면, 현실 속에선 얼마나 얄미울까? 겸손, 배려, 이해, 포용을 연예인에게 주문하기 전에 본인이 먼저 챙겨야 한다. 그런 덕목이 없다고 악플 다는 사람들은 정작 본인의 모습은 어떤지 돌아볼 일이다.

3. 폭로 토크쇼의 문제. 이것저것 폭로하고 본인의 감정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이 유행이다보니 이런 실수가 생긴다. 지금처럼 집단토크쇼가 질주하다보면 더 심한 사고도 터질 것이다. 이번 일은 현재의 폭로 토크쇼 문화에 하나의 경종이 울린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경실 본인이 설마 이번 일을 알려준 기사가 대중에게 주는 느낌처럼 실제로 안하무인이고 후배에게 옹졸한 사람일까? 그랬다면 그렇게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에 형성된 구도 그 이미지가 왜 문제인지 따질 순 있지만 그걸 가지고 이경실의 인간됨을 증오하는 것은 ‘오버’다.

문화평론가, 블로그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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