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조선일보가 검찰의 성창호 판사 기소에 대해 '정치수사' 프레임 씌우기에 나섰다. 검찰도 피의사실을 공표하는데 판사는 수사 기밀을 누설하면 안 되냐며, 현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판사를 기소한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공익적 차원에서의 공표와 조직의 이해를 위해 기밀을 넘긴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고, 검찰의 수사를 통해 혐의가 드러나면 기소되는 것은 당연하다.

5일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성창호 판사 등 10명의 전·현직 법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공무상 기밀 누설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 가운데 성 판사는 2016년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법관 비위를 은폐하는 데 가담해 공무상 기밀 누설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신광렬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와 협의 후 '정운호 게이트' 사건과 관련된 법관들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해 영장전담판사였던 성창호 판사와 조의연 판사에게 '영장청구서와 수사기록에서 법관 관련 내용을 상세히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성 판사와 조 판사는 2016년 5월부터 9월까지 법관 영장청구서, 수사기록, 관련 진술, 수사 상황, 향후 계획 등을 10회에 걸쳐 신 판사에게 보고했다.

이들은 주요 검찰 수사기록을 직접 사본으로 만들어 신광렬 판사,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전달했다. 법원행정처는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법관과 가족 등의 명단을 다시 작성해 성창호, 조의연 판사에게 전달하며 계좌추적영장 등의 발부를 엄격하게 할 것을 지시했고, 두 판사는 계좌추적영장 등을 기각했다.

▲6일자 조선일보 사설.

성창호 판사 기소 소식에 조선일보는 '정치수사' 프레임 씌우기를 시도하고 있다. 6일자 조선일보는 <김경수 법정구속 판사에 대한 검찰의 기소> 사설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6개월 도중 검찰 수사 내용은 끊임없이 외부로 흘러나왔다"며 "40가지가 넘는 전직 대법원장 혐의 내용 가운데 사전에 공개되지 않은 게 딱 한 건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썼다. 그러면서 "검찰은 피의사실 공표를 이렇게 밥 먹듯 해놓고 남이 하면 수사 기밀 누설이라고 한다면 이 역시 내로남불"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성 판사가 유출했다는 자료는 행정처에만 보고됐지 수사 대상에게 유출된 게 아니라고 한다"며 "일종의 내부 정보 보고 수준이지 '고의적 범죄'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법원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지만 검찰은 이 부분은 기소하지 않았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성 판사 문제는 검찰 수사 본질과는 상관없는 사안이고 곁가지에 해당한다"며 "그런데도 검찰은 '혐의가 중대하다'며 성 판사를 재판에 넘겼다. 검찰의 잣대가 공정한지, 다른 배경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성 판사는 현 정권에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라며 "민주당은 김 지사 판결이 나오자 '양승태 적폐 사단의 조직적 저항'이라며 '성 판사 탄핵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했다고 판사를 쫓아내겠다고 했다. 인터넷 폭력으로 성 판사는 신변 보호까지 요청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그런데 실제 검찰이 성 판사를 기소했다"며 "전체 판사들에 대한 무언의 위협이나 마찬가지"라고 썼다.

정리해보면 조선일보는 검찰도 피의사실 공표를 하면서 판사가 하면 안 되냐며 '내로남불'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검찰이 공익적 목적에서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주요사건의 수사상황을 브리핑하는 것과 '자기 식구 감싸기' 위해 수사 기밀을 유출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사법부는 판결의 공정을 기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독립돼야 한다. 그리고 이 핵심은 법관의 독립이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성창호 판사는 선배판사의 지시 혹은 청탁을 받고 수사 기록을 유출했다. 또한 유출한 기록을 토대로 한 법원행정처의 지시를 받고 특정인들에 대한 계좌추적 영장을 기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성 판사의 행위는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된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의 시작점인 셈이다.

게다가 성창호 판사는 검찰의 수사기록 자체를 그대로 복사해 신광렬 수석부장판사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에게 전달했다. 검찰이 언론에 수사 상황, 결과 등을 공표할 때 수사기록을 그대로 제공하는 경우는 없다. 검찰 수사 기록은 밀행성의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검찰의 원칙을 판사가 법원 상부의 지시로 깨버린 셈이다.

이민석 법률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성창호 판사가 수사 기밀을 유출한 이유는 검찰 수사 기록에 나오는 판사들에 대한 수사를 무마시키기 위한 것"이라면서 "공익적 이유로 언론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무총장은 "검찰 수사 브리핑은 주요 내용을 정리해 수사 상황을 알리는 수준"이라며 "수사 기록 자체를 자기 식구 감싸기를 위해 흘리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조선일보는 마치 성창호 판사가 김경수 지사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현 정권에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기소됐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법원의 상징인 정의의 여신은 한 손에는 저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검찰의 상징인 해태는 법(法)이란 한자의 유래다. 동서양 법의 상징이 법원과 검찰의 상징물이다. 공정한 잣대로 수사하고 판단하겠다는 의지일 게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대체 법을 무엇으로 보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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