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정치를 논하는 입장에서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문제도 어느 세력의 이득과 손해로 셈해야 할 때가 많아 유감이다. 유감인데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이미 정치 참여 주체들이 모두 그렇게 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 셈을 따라가 보는 것도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 될 수 있다.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직후 문재인 정권은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처했다. 첫 번째 이유는 이 돌발적 상황으로 인해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던 외교 전략의 토대가 흔들리게 됐기 때문이다. 보다 고약한 것은 두 번째 이유인데 청와대가 이런 사태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데다 오히려 ‘김칫국’을 마신 모습을 연출했다는 점이다. 북미정상회담 결과가 나오기 전에 국가안보실 인사를 낸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비록 청와대가 결과적으로 이런 저런 부분에서 대처를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이 사태는 북미가, 특히 미국이 애초 예상됐던 협상의 범위 바깥으로 나가 버린 것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을 빌자면 협상문 초안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합의 없이 “걸어 나가버린 것”은 확대회담에 참석한 최고위급 인사들 외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행위였다.

그렇기 때문에 청와대에 대고 왜 사전에 미국의 입장을 확인하지 않았는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방한을 왜 소극적인 방식으로 다루려 했는지(볼턴 보좌관의 방한 취소는 베네수엘라 문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등등을 따져 물으며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이 쉽지 않은 일을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보수언론은 연일 계속하고 있다.

이런 정치적 위기 상황에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국가회계관리프로그램인 에듀파인 도입 의무화에 반발하며 실력행사에 들어간 것은 청와대 입장에선 호재였다. 이들의 ‘투쟁’은 누가 보아도 정당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을 앞세워 강경 대응을 지속하고 서울시교육청이 설립 허가 취소라는 초강수를 둘 수 있던 배경은 여론의 강력한 지지였다. 조선일보가 정부의 대응을 두고 “유치원 문제 하나 해결 못 하나”라고 했지만 별로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결국 한유총은 백기를 들고 법정에서의 장기전을 준비하기로 했다.

보수언론들은 자녀를 둔 부모들의 마음을 ‘미세먼지’로 공략하는 것으로 전술을 바꿨다. 조선일보는 “한유총 가니 미세먼지 왔다”는 식의 제목으로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미세먼지 농도가 며칠째 심각한 상태를 보여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내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많은 언론들이 보육 및 교육 시설에 공기청정기 등의 공기정화시스템이 부족한 상태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미세먼지 관련 상황을 긴급보고 받고 비상조치 검토를 지시한 것은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원한 해결책을 누구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있는 법을 활용하거나 또는 법을 바꿔 이런 저런 저감조치의 수위와 강도를 높일 수는 있겠으나 여러가지 요인이 중첩돼있는 상황에선 사람들이 체감할만큼의 미세먼지 발생 원인 제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 등에 대용량 공기정화기 설치를 지원한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하루 이틀 사이에 이뤄질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탈원전 정책의 포기가 시급한데 고집만 부리고 있다는 보수언론의 공격에 속수무책인 상태가 된다.

정부가 만능일 수는 없다. 그래서 어느 정책에 있어서는 공세에 완전히 노출된 상태라는 불리한 조건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이런 때에는 다른 주제에서 국민의 우호적 여론을 벌충(?)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앞서 언급한 유치원 문제 같은 대목이다. 촛불시위로 등장한 ’피플파워’를 자처하는 정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개혁’을 내세우며 우호적 국민여론을 조성할 수 있는 수단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미세먼지에 뒤덮인 한강 (연합뉴스)

그런데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의외로 움직일 수 있는 폭이 넓지 않다. 예를 들면 사법농단 문제이다. 검찰이 5일 전현직 고위법관 10명을 기소하면서 개혁을 말할 수 있는 여건이 또 조성됐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일어난 사법부의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보면 누구도 사법개혁의 정당성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비위사실을 확인해 대법원에 통보한 현직 법관 수만 66명이다.

그런데 오히려 핀트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1심 재판을 맡았던 성창호 판사 기소에 맞춰지고 있다. 보수언론은 검찰이 정권의 의도에 따라 ‘복수’를 대리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식의 프레임을 짜고 있다. 적폐청산이라는 대의가 정치보복이라는 사익 추구로 덧칠되는 장면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바로 이런 프레임을 짜기 좋은 재료를 여당이 제공한 것이나 다름이 없게 돼버렸다는 것이다. 만일 여당이 김경수 지사 1심 판결 이후에 중심을 명확히 잡고 있었다면 이 시점에 할 말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 이전에 이 정권에서의 권력은 대통령의 측근에게 오히려 가혹하다는 인상을 확고히 줄 수 있었다면 개혁의 동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에 훨씬 많은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누구도 그런 확신을 갖지 못한다.

검찰 개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검찰개혁과 관련해 진도가 나가지 못하는 것은 자유한국당이 국회를 틀어 막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국민여론이 뒷받침 돼야 자유한국당을 압박할 수 있다. ‘우병우’로 대표되는 검찰 권력의 문제가 부각됐을 때 검찰은 감히 공수처 설치에 반대한다고 말하지 못했고 수사권 조정 논의에 응하겠다고 했으며 ‘적폐청산’을 하라는 개혁의 대의에 적극적으로 복무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검찰 출신 대표를 뽑은 자유한국당과 사실상 손을 잡고 검찰 개혁을 좌초시키기 위한 모든 일을 다 하고 있다.

검찰이 내세우는 당위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권력이 비대해질 것인데 이를 견제할 자치경찰제는 불충분한 수준에서 봉합됐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공수처 설치는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권력도 눈치보지 않고 수사할 수 있다는 것을 검찰은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권이 경찰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분명히 보여줬더라면 어땠을까? 또는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라는 것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개혁을 하려다 보니 무리한 수단을 동원하게 됐다는 설명을 할 수 있었다면? 둘 다 아니라는 것이 지금 문제이다. 그나마 5.18 망언 등 문제에 연루된 의원들을 제대로 징계하지 못하고 ‘도로친박당’이란 평가를 자초하는 인사를 하는 자유한국당이 있기에 이 정도라도 버티는 것이다.

개혁을 하라고 만들어 준 정권이 개혁을 하지 못하면 국민은 각자도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최근 동아일보는 2000년생이 온다며 젊은 세대에 대한 기획 기사를 지면에 게재했다. 젊은 세대들이 어릴 때부터 경쟁을 내면화 한 결과 최대한 탈락해선 안 된다는 만성적 불안감 속에서 세상만사를 이해득실과 효율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점이 드러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게 이 세대만이 갖는 고유한 특성일까? 그렇다기 보다는 최근 10~20여년 간의 한국 사회 변화와 개혁의 반복된 좌절이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다른 나라들 이른바 극우포퓰리즘을 통해 겪는 문제를 우리도 또다시 똑같이 겪게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이 개혁의 성과를 내도록 해야 하고 실제로 성과가 나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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