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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바쁘든[기고] 김완 / 저강도 문화활동가
김완 | 승인 2008.01.17 16:07

‘대운하’와 ‘언론 사찰’이 쌍끌이가 되어 미디어를 훑고 있는 사이 너무도 중요한 변화의 예고들이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다. 미디어는 이를 해석해내지 못해 그저 외면하거나 한 줄 뉴스로 하릴없이 흘려보내고 있다. 절대막강의 힘에 맞서는 최소한의 ‘본때’라도 어디선가 누구라도 보여주면 좋으련만, 선무당은 예언을 남발하고 허깨비들은 10년 만에 깔아진 판에서 마치 내일은 없는 것 같은 춤추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 조선일보 1월15일자 37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였던가, 더 노골적으로는 비지니스 프랜들리(Business friendly)가 되겠다고 이명박 당선자가 일갈한 이후 알아서 기고 있는 정부 부처의 꼬락서니는 정말이지 가관이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국정홍보처 직원의 고백은 그래서 다다다다 거짓말~♬이다. 공무원에겐 영혼이 없는 것이 아니라 권력 앞에 갖춰야할 최소한의 인간적 아니꼬움이 없는 것이다.

앞으론 기업인들이 공항의 귀빈실을 이용할 수 있을 모양이다. 인수위가 기업인들의 공항 귀빈실 이용 방안을 밝히자, 건설교통부는 즉각 기업인의 공항 귀빈실 이용을 위해 법무부, 국세청, 관세청, 국정원, 경찰청, 인천공항 등 16개 기관이 모이는 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를 통해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가 대상자를 추천하면 국세청·관세청·경찰청 등이 납세 등의 기준을 따져 기업인들이 공항의 귀빈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음달 1일 이용을 목표로 300명을 우선 선정한 뒤 점차 확대하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참으로 재빠르고 친절한 건설교통부가 아닐 수 없다.

기업인들의 공항 귀빈실 이용에 대한 언론의 반향도 뜨거웠다. 조선일보는 관련 전문가처럼 뵈는 김효준(한국항공정책연구소 이사장)의 기고를 실었다. 그는 기업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국제관례에 따르는 비즈니스 룰이 ‘비로소’ 통용됨을 환영했다. 9.11 사건 이후 강화된 보안 검색을 들먹였고, 기업인들의 귀빈실 이용이 국제 공통임을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문창극 주필의 칼럼을 통해 특권의 이동을 강조했다. 그간 귀빈실이 고위 관료들의 독차지였음을 지적하고, 이를 기업인을 무시했던 근대국가의 특권이라고 비판하고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런 논리적 형식의 출발이 어색하지 않았던 중앙일보 문창극 칼럼은 뜬금없이 특권을 폐지하지 못하고 자신들에게 집중시켰던 노무현 정부와 386 국회의원들에 대한 빈정거림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기업인의 공항 귀빈실 이용이 특권임은 인정하면서도 깃 떨어진 정권의 꼬리를 치는 결론에 도달하는 유치한 물타기로 끝을 맺었다.

하기야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가를 말해준다는 광고가 별다른 저항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기업인들의 공항 귀빈실 이용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이야 이제 말하기조차 식상한 것이고, 공간이 ‘소비’의 대상이 된지도 꽤 오래이다. 자본주의의 횡포에 공항이라는 공간이 홀로 독야청청 할 수 있겠냐는 자조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업인들이 귀빈실을 이용할 수 있게 되는 변화는 시간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중요한 것은 변화 자체가 아니라 이러한 변화 뒤에 잠복해있는 이데올로기 지형이며, 가시적 변화가 만들어낼 사회문화적 환경의 변동이다. 그 이데올로기 지형과 변동의 의미를 분석하고 추이를 가늠하는 것은 분명 미디어의 역할이다. 오늘도 이명박은 열심히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미디어는 변화 자체를 전할 뿐, 이데올로기 지형에 피상적이고 변동 이전의 단계에 근거한 한탄 혹은 경탄 이상의 파장을 만들어내지 못하며 추억의 글쓰기를 반복하고 있다.
   

   
  ▲ 중앙일보 1월15일자 31면.  
 
프랑스의 정치이론가 폴 비릴리오(Paul Virilio, 1932~)는 현대의 사회를 질주학(dromology)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질주정(疾走政) 사회’라고 규정하고 있다. ‘속도’를 비판이론의 핵심 주제로 사유하는 그의 독창적인 견해는 현대사회가 속도가 법이 되고 운명이 되고 목적이 되어버려 결국 민주정(民主政) 사회를 부정하게 됨을 밝히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에게 속도는 권력 그 자체이다. 결론적으로 질주정 사회에서 공간에 대한 지배는 이미 모든 차원(次元)에 대한 지배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기업인들이 공항 귀빈실을 이용하게 된 것은 작은 부스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유난히 혹독하게 속도가 강조되는 한국 사회이다. 자본 계급의 공간 지배가 세련된 편법, 특정한 시기에 관철되고 속도를 재특권화하는 행렬이 시작된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속도전의 양상으로 진행되는 특권의 이동 뒤로 적막처럼 차별이자 모멸로서의 가난의 위상이 굳건히 다져지고 있다. 원래 큰 풍경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가뜩이나, 과잉경제/소비욕망이 지배하는 질주정 사회였는데, 도저히 무너뜨리기 힘들어 보이는 완고한 자본의 유토피아가 차질 없이 차곡차곡 건설되고 있다. 완결적이고 확정적인 징후들은 차고 넘치는데 총체적으로 속수무책이다.

불편하지만, 공공장소에선 줄을 서서 기다려야한다.
그 평등, 평화, 평온의 상식을 위배하면 사회는 정말 서슴없는 야만이 된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바쁘든 줄을 서야 한다. 

김완  ssamwan@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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