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겉으로 보기엔 ‘영국판 여인천하’다. 하지만 18세기라는 시대적인 상황과 영국이라는 국적을 떼어놓고 감상한다면 이 영화는 ‘처세술에 관한 교과서’로 바라봄직하다.

우리가 고전을 읽고,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문명은 진보할지언정 인간 의 본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이 발달한 21세기에 산다 해도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기원전이나 21세기의 우리나 별반 다를 게 없다.

특히 처세에 관련된 것이라면, 과거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했는가를 공부하고 난 다음 그와 비슷한 상황과 조우했을 때 조금이라도 과오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영국판 여인천하’로 보일 법하지만, 21세기 현대인이 영국 궁정을 통해 처세법을 배울 수 있는 ‘처세의 교과서’로 바라봐도 유익한 영화다.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스틸 이미지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영화 속 처세술을 짚어보겠다. 첫 번째는 자신의 업적을 상사에게 빼앗기지 않고 최대한 알려야 한다는 점이다. 직장 생활을 해본 이라면 내가 공들여 세운 프로젝트를 마치 자신이 다 만든 것처럼 가로채는 상사를 겪어보았을 것이다.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이 앓는 병은 통풍. 몰락한 귀족 가문의 하녀 애비게일(엠마 스톤)은 앤 여왕을 위해 그녀만 아는 약초로 만든 연고를 여왕에게 바르다가 태형을 당할 위기에 놓인다. 문제는, 여왕이 자신의 다리에 연고를 발라준 기특한 하녀가 누군지 모른다는 점이다.

애비게일이 가만히 있었다면 자신이 세운 공, 통풍으로 고통 받는 여왕에게 연고를 발라드리자 진통이 완화됐다는 치적을 여왕이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애비게일은 연고를 발라드린 장본인이 자신임을 여왕에게 떳떳하게 알린다. 요즘 현대인에게 ‘처세란 이런 것’이라는 걸 18세기 영국의 하녀는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하나 더, 자신의 독점적 지위는 다른 사람이 공유하거나 차지할 여유를 남겨주지 말라는 교훈을 영화는 제시한다. 앤 여왕의 최측근이자 총애를 받는 이는 사라(레이첼 와이즈). 애비게일은 사라의 먼 친척이라는 이유로 그저 그런 왕실의 하녀가 아니라 사라의 직속 하녀가 되고, 앤 여왕과 친밀해질 사닥다리를 잡는 행운을 맞이한다.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스틸 이미지

하지만 애비게일의 이런 적극적인 처세는 사라에겐 마이너스 요인이다. 사라는 그 어떤 남자 신하보다 앤 여왕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다. 사라는 앤 여왕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재’가 사라 자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녀에서 권력의 최고 정점인 여왕에게까지 다가설 수 있는 자리로 발돋움한 애비게일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결과는, 사라 그 자신도 필수재가 아니라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소모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세 번째 교훈은 자신이 없으면 조직이 굴러가는 데 있어 차질이 막대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앤 여왕에게 없어선 안 될 총애를 받는다고 생각한 이가 사라지만, 알고 보면 사라 역시 필수재가 아닌 ‘소모재’에 불과했다. 여왕에겐 애비게일이라는 대체 가능한 소모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 위치의 사람들에게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그 자신도 언제든 필수재가 아닌 소모재로 전락할 수 있단 점을 앤 여왕과 애비게일, 사라의 삼각관계를 통해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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