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Over the SKY” 서울대(S)와 고려대(K) 연세대(Y)를 넘어서자는 의미다. 현수막을 마주한 얼굴이 화끈거렸다. 구직난에 시달리며 20세기 마지막 해를 살아가는 지친 대학생들에게 한국사회 나아가 전 인류에 기여하자는 포부까지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런 싼티 나는 구호가 대학가에 버젓이 나부끼는 현실에 실망했다.

한때나마 수재라 불렸던 기억너머 어린 시절을 한없이 그리워하며 스스로를 6두품이라 비하하는 철없는 군상들이, SKY에 입성하고자 했던 청소년기의 꿈을 일그러지게 한 수능시험을 저주하며, 없던 애교심을 짜내 똘똘 뭉쳐 술자리에서나 떠들 법한 소리라고 폄하했다.

마음이 불편했던 다른 이유는 “Over the SKY” 뒤에 숨겨진 단어가 “삼성”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학교법인을 이끌어가고 있는 삼성의 무노조정책과 대학의 기업화에 저항했던 분들이 무자비하게 제거됐다. 지인들의 고초를 목도한 스물 셋의 나는 그 플래카드를 용납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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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혹평이 무색하게도 그 낯 뜨거운 슬로건을 내건 이들이 2000년 가을 성균관대학교 총학생회를 접수했다. 많은 이들은 갈망했다. 또 믿었다. 글로벌 리딩 기업 삼성이라면 ‘1등주의’ DNA를 성대에 심어서 SKY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진 학교서열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하지만 대우에 기대 성장하다가 대우그룹 해체와 함께 쇠락한 아주대의 모습을 기억하던 나는 그런 신앙을 모래 위에 지은 누각 정도로 여겼다. 사적이익을 중시하며 이윤과 효율을 내세우는 경영논리가 공적 역할이 기대되는 대학사회에 과연 적합한지 의문을 가졌다.

삼성은 ‘VISION 2010’에서 2005년까지 10개 분야 국내 1위, 2010년까지 5개 분야 세계적 수준 달성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4대 전략목표와 세부 전략과제도 명시했다. 적지 않은 학내 구성원들이 삼성이 주도하는 변화를 응원했다.

삼성은 그들의 지지에 부응했다. 시장에서 검증받은 성공 방정식대로 갖은 수단을 학교에 적용해 실력을 입증했다. 그 어느 사립대학보다 큰 규모의 재단전입금이 학교에 투자됐다. 취업률을 비롯한 각종 지표에서 가시적 성과가 나타났다. 세계대학평가 순위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뤘다. 믿고 말고를 떠나 중앙일보는 간간히 성대가 SKY의 아성을 무너뜨린다는 기사를 내기도 한다.

20년 남짓한 세월이 흘렀다. 스님들마저 하버드 출신이라는 것을 마케팅에 활용할 정도로 학벌의 위세는 여전하지만 예전에 비해 기세가 많이 누그러졌다. 능력이 그 자리를 대신하길 희망했다. 그러나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학벌과 능력을 좌우지 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출신대학 간판을 앞세워 자기를 드러내려는 자. 임대아파트 주민을 빈민 취급하는 일반아파트 주민. 가맹점에게 갑질하는 프랜차이즈 본사. 세입자 위에 군림하는 건물주. 취업전쟁에서 비정규직을 이겼었다고 유세 떠는 정규직. 이주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도 주지 말자는 국회의원 등등. 비단 학벌만이 문제가 아니다. 불합리한 차별의 뿌리는 이렇게 깊다. 현대판 신분제다.

차별의 성들 가운데 하나, 철옹성 SKY는 곧 허물어질지 모른다. 다만 그 잔해 위에 이름만 달라진 성이 다시 쌓이지 않길 바랄 뿐이다. 성을 세우고 말고는 우리 각자의 몫이다. 가지가지 차별의 성이 놓인 자리가 우리 마음이기 때문이다.

점수를 가지고 앞뒤로 길게 줄을 세워 너와 나의 마음 가운데 벽을 치거나, 피부색, 남녀, 가진 자와 없는 자 등으로 패를 이룬 이들이 마음 안에 성곽을 지어서, 강자가 약자를 차별하는 방식으로 살아온 인간의 역사가 깊다.

자기 성을 버리고 더 높고 더 큰 성에 올라 탄 이들도 있다. 그런데 아이비리그에서 박사를 따고 정규직이 되고 비싼 아파트를 사고 건물주가 되고 사업주가 되어 신분을 끌어올린 이들이 과거에 당한 대로 남을 못살게 군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 각자의 마음에 찌든 불합리한 차별 습관을 고치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모두가 위로만 오르려고 할 때 만인이 동경하던 성을 제 발로 내려온 이가 있었다. 싯다르타 붓다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왕자였다. 그에게는 돈과 명예가 약속되어 있었다. 그런 그가 카필라 성을 나온 까닭은 자유다. 삶과 죽음에 깃든 모든 괴로움으로부터의 자유다. 그리고 여자와 천민을 막론하고 차별 없이 누구나 붓다가 되어 고통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가르쳤다.

차별이 일상화된 시대.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과감히 성문을 박차고 나와, 마음에 깊이 배인 불합리한 차별의식을 떨쳐내고 당신의 온기를 헐벗은 이웃과 나눈 싯다르타 그 사람이 그립다.

지금 이 순간. 지구촌 곳곳에서 은혜의 폭탄을 쏘아 욕망과 차별로 점철된 우리네 마음 속 수많은 성을 헐어내고 있는 부처님을 닮은 그 사람이 그립다. 인간의 길을 걷고 있는 그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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