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야3당과 시민사회가 주장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세금 잡아먹는 하마가 될 수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는 원내 야3당은 의원 세비 감축을 통한 국회 예산 동결을 전제하고 있다.

24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나경원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회의원 의석수를 늘릴 수 있는, 한마디로 '세금 잡아먹는 하마'가 될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저희는 의석수를 늘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라고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금 더불어민주당과 야3당 사이에 오가는 얘기를 보면 의석수를 330석으로 늘리자는 것 같은데, 연동형 비례제는 결국 초과의석이 발생하게 돼 있다"며 "330석이라고 하지만 나중에 400석도 될 수 있는 게 연동형 비례제"라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기본적으로 선거제 개편에서 한국당의 기본원칙은 의석수 확대에 절대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25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및 상임위간사단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해온 야3당은 국회의원 세비 감축을 함께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야3당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 특권을 내려놓기를 바라는 국민의 바람을 반영해 의원정수를 늘리더라도 의원세비 감축 등을 통해 국회의 전체 예산은 동결하겠다"고 이미 약속했다.

지난달 16일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이뤄지면 "국회의원 세비를 현재의 50% 수준으로 삭감하겠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도 지난 22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맨 처음 낸 안이 330석이었다"며 "만일 국민적 동의가 이뤄진다면, 세비 동결 등으로 비용이 늘지 않는 전제 하에 의원 수 10% 늘리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나경원 원내대표의 주장대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무조건 초과의석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완전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경우 정당득표와 지역구 득표가 지나치게 차이가 날 경우 다수의 초과의석이 발생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의원정수가 유동적이지 않다. 스코틀랜드 방식은 총의석을 정당 득표율에 따라 지정하고, 총 의석을 초과해 지역구 의석을 얻은 정당에는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지 않되 초과의석을 인정한다. 이후 초과 의석이 없는 정당의 득표율을 100으로 환산해 비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게 되며, 이럴 경우 총 의석수의 변동은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논의에서 의원정수 확대 주장이 나오는 것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면 적어도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2대1 비율은 돼야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국회의 지역구, 비례대표 비율은 약 5.4대1이다. 현행 300명 정수를 유지하면서 2대1 비율을 맞추려면 200대100이라는 숫자가 나오는데, 이럴 경우 현재 253석인 지역구 의석을 대폭 축소해야하기 때문에 현역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원정수를 330명 또는 360명까지 늘릴 경우에는 220대110, 240대120이 되기 때문에, 지역구 의석을 크게 줄이지 않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따라서 의원정수 소폭 확대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게 학계와 시민사회의 중론이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이 300명 의원정수를 고정하는 안을 당론으로 채택했을 때, 같은 지적이 제기됐다.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달 22일 민주당안에 대해 "지역구를 53석 줄이면 현역 의원들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며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지난해 11월 민주평화연구원과 정치개혁공동행동이 주최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적정 의원수' 토론회에서 "줄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지역구 253석은 그대로 두고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 이상 늘려 총 의석수를 360석으로 하면 비례성이 많이 개선된다"고 밝혔다.

민주평화당은 25일 오후 문정선 대변인 명의 논평에서 "나경원 의원이 연동형 비례제에 대해 또 한 번 무식을 드러냈다"고 꼬집었다. 민주평화당은 "현재 한국당을 제외한 야3당이 주장하는 연동형 비례제의 핵심은 민심 그대로 선거제 개혁"이라며 "연동형 비례제의 핵심은 일꾼 늘리되 특권은 줄이자는 데 있다. 평화당은 이미 세비를 반으로 줄이겠다는 파격적 안까지 제시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민주평화당은 "예산 동결하고 일꾼만 늘리자는 것이 선거제 개혁의 포인트"라며 "하지만 나경원 의원은 앵무새처럼 반대를 위한 반대만 반복하고 있다. 결코 자신들이 누리는 국회의원 특권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특권의식의 발로"라고 비판했다. 민주평화당은 "일꾼 늘리고 특권줄이자는 연동형 비례제를 굳이 돈 먹는 하마로까지 폄하했다"며 "결국 돈 먹는 하마와 돈 먹는 나경원의 대결로 좁혀졌다"고 말했다.

한편 24일 나경원 원내대표는 "구체적인 선거제 개혁 방안에 대해서는 다음 의총에서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20대 국회 들어 정치개혁 논의과정에서 4년째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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