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보다 팀정신, 조직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구기 종목에서 한국 스포츠의 선전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아시안게임에서 유독 명승부가 많았는데요. 1982년 뉴델리,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을 넘어 극적인 우승을 차지한 남자 농구, 1994년 히로시마 대회에서 중국, 일본에 잇달아 3-2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던 여자 배구, '드림팀'이라는 이름으로 1998년과 2002년 대회 2연패에 성공했던 야구 등이 아시안게임에서 명승부를 연출해내며 기분 좋은 우승을 거뒀던 자랑스러운 종목들이었습니다.

이번 대회에도 구기 종목들은 최대한 많은 우승으로 한국 선수단의 4회 연속 종합 2위에 큰 보탬이 되려 합니다. 24년 동안 금메달과 인연이 없던 남자 축구를 비롯해 4대 구기 스포츠(축구, 야구, 배구, 농구) 가운데 사상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3연패를 노리는 남자 배구, 추신수, 김태균, 이대호 등 한미일 리그에서 정말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들로 구성된 야구 등이 금메달을 노리고 있는데요. 특히 지난 도하 대회에서는 남자 배구를 제외하고는 4대 구기 스포츠가 단 한 팀도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한 바 있어 이번 대회에서 그 치욕을 씻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목받는 구기 스포츠 가운데서 평소에 많은 관심을 받지는 못하지만 국제 대회에서 유독 남다른 실력을 자랑하며 한국 스포츠를 빛내는 종목들이 있습니다. 바로 핸드볼과 하키, 럭비, 그리고 최근 국제 대회에서 잇달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여자 축구입니다. 이번 아시안게임 이후에도 늘 예전처럼 획기적인 관심을 받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열악한 훈련 환경과 무관심 역시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새로운 희망을 싹틔우기 위해 선수들은 달리고 또 달려 아시아 정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핸드볼 남.녀 대표팀 선수들이 4일 오후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결단식에서 기념촬영을 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사실 이 네 종목 가운데서 여자 핸드볼, 남자 하키를 제외하면 이번 아시안게임이 설욕 무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남자 핸드볼은 지난 도하 대회에서 중동 심판들의 어이없는 편파 판정으로 대회 6연패를 놓치며 눈물을 흘렸고, 여자 하키는 중국에, 럭비는 일본에 밀려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습니다. 또 여자 축구 역시 1990년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단 한 번도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하며 이렇다 할 인연을 맺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상승세, 기분 좋은 기세를 바탕으로 가능 한 많은 종목에서 우승권 성적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가장 주목되는 종목은 역시 여자 핸드볼입니다. 1990년에 첫 선을 보인이래 단 한 번도 우승을 놓친 적이 없는 여자 핸드볼은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 0순위'로 꼽힙니다. 전체적인 전력에서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와 차이가 있다면 젊은 선수들이 상당히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2008년에 맹활약했던 김온아를 비롯해서 정지해, 유은희, 이은비 등 20대 초중반의 선수들이 대거 가세해 상당히 젊은 팀으로 거듭났습니다. 이미 지난 2008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세계선수권에서도 가능성을 보여준 젊은 선수들인 만큼 이번 대회를 통해 확실한 주축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대회 6연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달성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남자 핸드볼은 그야말로 명예회복에 나섭니다. 지난 도하 대회에서 어이없는 판정으로 눈물을 흘렸기에 이번만큼은 기필코 우승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1990년 베이징 대회부터 출전한 베테랑 윤경신의 마지막 아시안게임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모으는 이번 대회에서 남자 핸드볼은 쿠웨이트, 카타르 등 중동 팀의 텃세 없이 실력으로 아시아 최강의 면모를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이미 첫 경기 홍콩전에서 52-13이라는 엄청난 스코어 차로 화끈한 승리를 기록해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 2006년 한국과 중국간의 아시안게임 여자 하키 경기ⓒ연합뉴스

'전통적인 효자 종목'으로 꼽히는 남녀 하키도 이번 대회에서 동반 우승에 도전합니다. 사실 남녀 하키는 상위 클래스를 달리고도 열악한 환경과 관심 부족으로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요. 그러나 월드컵, 챔피언스트로피 등 각종 국제 대회에서 연달아 좋은 성적을 내면서 꾸준히 메달권을 노크했고, 여자팀은 1988년과 1996년, 남자팀은 2000년에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내며 구기 종목 가운데서도 핸드볼과 더불어 모범적인 효자 종목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현재도 세계 랭킹이 남자팀은 6위, 여자팀은 8위에 있어 언제든 세계 정상권을 노크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1986년부터 대회 4연패를 한 여자 하키, 2002년과 2006년에 2연패를 한 남자 하키가 이번에는 함께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전망은 아주 밝습니다. 남자팀은 파키스탄, 인도의 기세를 뿌리치고 수년 넘게 아시아 정상을 지키고 있으며 여자 역시 그동안 넘지 못했던 중국의 벽을 허물어내면서 최근 4연승을 달리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자팀에는 36살의 베테랑이자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은메달 주역인 여운곤이 버티고 있고, 딸 하나를 두고 있는 '아줌마 선수'이자 여자팀 주장인 이선옥이 주목할 만 한 선수로 꼽힙니다. 상승세 기세를 잘 이어가서 중국, 인도 같은 팀과 만났을 때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경기만 보여준다면 충분히 동반 우승 가능성은 높습니다.

1998년 방콕 대회에서 투혼의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IMF 구제금융 시대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 모범이 될 만 한 사례로 소개됐던 럭비도 눈여겨볼 구기 종목입니다. 2016년 리우 데 자네이루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더욱 눈길이 가는 럭비는 그동안 일본과 양 강 구도 체제를 유지하면서 아시아 강국의 면모를 보여줘왔습니다.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3개를 따낸 베테랑 전종만을 비롯해 20대 중후반의 선수들이 좋은 전력을 갖추고 있어 역시 메달 입상이 유력한 상황인데요. 다만 일본 외에 최근 홍콩의 전력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어 어느 때보다 거센 도전을 받으며 대회를 치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해 두 차례 열린 상하이 7인제 럭비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동아시아 경기대회에서는 홍콩에 뒤진 3위에 만족한 전력이 있었습니다. 일본, 홍콩, 그리고 역시 전력이 상승하고 있는 중국의 거센 도전을 잠재우고 또 한 번 감동과 투혼의 금메달을 목에 거는 럭비대표팀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 2010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여자축구 대표팀ⓒ연합뉴스

여기에 최근 기세가 오른 여자 축구의 선전도 주목 할 만합니다. U-20 여자월드컵 3위, U-17 여자월드컵 우승, 그리고 피스퀸컵 우승 등 각급 대표팀이 잇달아 좋은 성적을 내며 아시아 최강 수준을 거듭난 여자축구대표팀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올해 있었던 쾌거의 정점을 찍고 아시아 강국이라는 명함을 제대로 내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가을, 박희영 등 기존 선수들 뿐 아니라 지소연, 김나래, 문소리 등 U-20 여자월드컵 3위 주역들인 신예들의 조화가 상당히 잘 이뤄져 어느 때보다 입상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데요. 특히 최인철 감독 부임 이후 선수들의 하고자 하는 의지나 자신감이 최상이어서 북한, 일본 등의 벽을 잘 넘는다면 충분히 사상 첫 아시안게임 입상 그리고 우승도 내다볼 수 있지 않을까 전망해 봅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비인기 구기 종목 가운데 대부분은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세대교체의 장,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기회의 장으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꾸준하게 세대교체를 시도하고 발전을 모색하는 구기 종목들이 아시안게임 우승을 통해서 종목 발전에도 더 도움이 되고, 선수들 역시 큰 꿈을 이뤄내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관심 속에서 종목을 빛내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뛰고 또 뛴 비인기 구기 종목 선수들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프로 스포츠 못지않은 관심을 받고, 덩달아 꾸준한 관심과 진정성 어린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