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인 조1위 결정전이라 할 수 있는 아시안게임 야구 1차전 대만전에서 에이스 류현진의 호투와 메이저 리거 추신수의 연타석 홈런으로 6:1의 완승을 거두며 순조롭게 출발했습니다.

시즌 막판 다승왕 경쟁을 포기할 정도로 팔꿈치가 좋지 않았던 류현진은 2개월이 넘는 실전 공백을 딛고 6이닝 5피안타 4탈삼진 1실점으로 승리를 따냈습니다. 김광현이 안면 마비 증세로 엔트리에서 제외되어 류현진의 부담이 상당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운드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과시했습니다. 대만에도 익히 알려진 주무기 체인지업 대신 경기 초반 커브를 섞어 범타를 유도하는 투구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초반 승부를 가른 추신수의 연타석 2점 홈런은 왜 그가 메이저 리거인지 입증하고도 남는 것이었습니다. 대만 선발 린이하오를 상대로 터뜨린 2개의 홈런 모두 방망이에 공이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할 수 있는 완벽한 타구였습니다. 이미 추신수는 2009년 제2회 WBC 준결승 베네수엘라전과 결승 일본전에서도 홈런을 기록한 바 있는데, 그가 대표팀에 참가한 3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한 셈이 되었습니다.

▲ 정근우 선수ⓒ연합뉴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돋보인 것은 정근우입니다. 정근우는 3타수 3안타 2볼넷 1타점 2득점을 기록하며 5번의 타석에서 모두 살아나갔고, 앞선 두 타석의 출루는 추신수의 홈런과 연결되었습니다. 만일 정근우가 출루하지 못했다면 추신수의 연타석 홈런으로 한국 대표팀은 고작 2점밖에 얻지 못했을 것이며, 경기 내내 대만에 쫓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정근우가 특히 빛난 것은 6회말입니다. 대만의 두 번째 투수인 좌완 양야오쉰이 3회말 무사 1, 2루에서 등판해 실점하지 않으며, 5회말까지 3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호투했는데, 만일 양야오쉰이 무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면, 한국 대표팀이 결승전에서 양야오쉰과 다시 만날 경우 고전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6회말 정근우는 2사 1, 2루에서 우중간 적시타로 양야오쉰의 무실점 행진에 종지부를 찍었고, 대만 수비의 중계의 빈틈을 노려 2루에 안착했습니다. 이후 추신수의 타석에서 포수 가오즈강이 양야오쉰의 투구를 제대로 잡지 못한 사이, 3루 주자 손시헌이 홈으로 스타트하지 못했지만, 2루 주자 정근우가 3루로 향하자, 포수 가오즈강이 2루에 송구하는 사이 3루 주자 손시헌이 득점에 성공해 6:1 5점차로 벌리며 대만의 추격을 뿌리쳤습니다. 7회초 윤석민의 등판 직후 퇴장 해프닝과 몸을 제대로 풀지 못한 봉중근의 구위가 좋지 않아 위기를 맞았음을 감안하면 6회말 정근우의 적시타와 두 번의 기민한 주루 플레이는 결정적이었습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웠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대만의 예즈시엔 감독의 투수 기용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국제 경험이 부족한 약관의 린이하오를 선발로 기용하고, 4점이나 실점한 후 양야오쉰을 구원 등판시킨 것은 순서가 뒤바뀐 기용이었습니다. 만일 좌투수 양야오쉰이 선발로 기용되었다면 좌타자 추신수가 연타석 홈런을 기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며, 승부의 향방도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대만의 입장에서는 양야오쉰이 호투했을 때, 긴 이닝을 투구하며 한국 타자들의 눈에 익게 내버려두기보다, 눈에 익기 전에 빠르게 강판시켜 다음 경기에 대비시키는 편이 나았습니다. 도쿄돔에서 개최된 2009년 제2회 WBC 제1라운드 일본전에서 선발 김광현이 1.1이닝 동안 7피안타 2볼넷 8실점으로 무너져 승부가 초반에 갈렸지만, 구원 등판한 정현욱이 1.1이닝을 무실점으로 산뜻하게 처리했습니다. 김인식 감독은 정현욱이 일본 타자들의 눈에 익숙해지기 전에 강판시켰고, 이틀 후 제1라운드 결승전에 선발 봉중근의 뒤를 이어 다시 등판한 정현욱은 1.2이닝 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일본을 상대로 1:0 완봉승을 거두는데 기여한 바 있습니다. 이것이 국제 대회에서의 정상적인 투수 기용인데, 예즈시엔 감독은 선발 투수 기용에 실패하고, 중간에 올려 호투한 투수가 상대의 눈에 익도록 오래 출전시키는 두 가지 잘못을 범한 셈입니다. 아마도 대만은 오늘 한국전에서 패하더라도 B조 2위로 준결승에 진출한 후, 결승에서 다시 한국과 자웅을 겨뤄보겠다는 계산이었을 수도 있지만, 준결승에서 일본 혹은 중국에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 투수 기용이었습니다.

오늘 대만전의 승리로 한국은 실질적인 B조 1위를 확정짓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세 명의 투수로 대만 타선을 틀어막아, 정대현과 윤석민 등을 아끼고 전력 노출을 막은 것은 다행입니다. 선발 출장한 이종욱과 김현수의 타격이 부진했는데, 두 선수의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을 경우 홍콩전과 파키스탄전에서 다양한 기용을 통해 준결승 이후 다른 선수들을 선발 투입하는 것도 상정해야할 것입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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